알아두면 쓸데 있는 신비한 『소비의 역사』
알아두면 쓸데 있는 신비한 『소비의 역사』
  • 정연심 기자
  • 승인 2017.09.1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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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백색신화는 흰 비누에서부터 

‘흑인이란 게 뭐야?... 아, 망할 놈의 피부색!’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서구 중심 제국주의를 비꼰다. 서구인들은 망할 피부색을 갖고 태어난 ‘더러운 흑인’에게 가장 먼저, 가장 널리 비누를 퍼뜨렸다. “흑인마저도 하얗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속였다.

1890년대, 나무 수액으로 머리를 감고, 식물껍질과 흙으로 치장하고, 동물 지방이나 피마자유로 몸을 닦던 아프리카인들은 비위생적이라는 이유로 인간 이하로 취급당했다. 제국주의는 더러운 흑인과 깨끗한 백인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만들었다. 이는 흑인을 통제해서 사회의 도덕성과 청결도를 강화해야한다는 순결 이데올로기로 일상을 지배했다.

가정은 개인과 사회의 순결을 책임져야할 기본 터전으로 떠올랐다. 위생, 위생, 위생! 위생이 신봉되었고, 비누가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19세기 말부터 남아프리카에는 서양 비누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난한 이들은 서구 사람들이 버린 비누 찌꺼기나 값 싼 비누를 썼다. 원료가 잘 섞이지 않은 이들 ‘푸른 점박이 비누’마저 비누의 선교사로 추앙받았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비누사용 습관을 보급했다는 이유에서다.

1940년대, 유니레버사는 남아프리카 비누회사들을 사들이고 “비누는 문명이다(Soap is Civilization)”라는 광고 슬로건을 내세웠다. 그러나 선교사가 가르친 대로 흰 비누로 성실히 세수를 한 아프리카 어린이는 백인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백인이고 우리는 아직도 흑인이잖아요.” <73~87쪽> 아이의 불평은 ‘하얗게, 깨끗하게’를 강조하는 광고 속에, 비욘세도 박근혜 전 대통령도 맞았다는 백옥주사의 신화 속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의학서라 쓰고 포르노라 읽는다

‘소녀들의 학교’ ‘부부생활의 묘사’ ‘아리스토텔레스의 걸작’ ‘아리스토텔레스의 조산술’ ‘아리스토텔레스의 마지막 유산’…. 1600년대에 나온 이들 책의 공통점은? 의학서의 탈을 쓴 외설서라는 점이다.

몰래 보고, 숨어서 보고, 보고 또 보고…. 과연 인기가 좋았다. 짐짓 의학이나 해부학으로 포장했으나 내용은 포르노였다.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성 흥분제 역할을 했다. 겉으로는 점잖은 의학서로 가장했기에 책은 잘 팔렸다. 

주제는 다양하고 과감해져갔다. 거세된 남자, 양성애자, 복장 도착자 문제가 논의되는가 하면, 채찍질, 결박 등 변태 행위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피터 와그너는 이런 장르의 책을 ‘은폐된 포르노그래피’로 해석한다. <207~219쪽>

아르헨티나는 키우고, 브라질은 줄이고

전 세계 여성들이 가장 많이 성형하는 신체 부위는 어디일까. 가슴이란다. 키우는 수술이 인기일까, 줄이는 게 많을까.

원래 유방 성형수술은 축소술로 시작됐다. 1880년대, 암이나 종양 수술 후 모양이 망가진 유방을 수정하는 재건성형이 행해진 것. 이는 1930년대에 이르러 미용성형으로 발전한다. 상아, 유리 공, 고무, 황소의 연골, 실리콘 등 다양한 보형물이 가슴미용을 위해 쓰였다.

가슴성형, 싸게 잘하는 나라는? 아르헨티나다. 높은 의료기술, 낮은 가격은 가성비 1위 가슴 수술국이라는 영예를 안겼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가슴 큰 여성에 대한 에로틱한 판타지가 널리 퍼져있다. 심지어 가슴성형을 성인식 의례 가운데 하나로 여길 정도란다.

반대로 가슴 크기를 잘 줄이는 나라는? 삼바의 여인들이 몸을 앞뒤로 흔들며 현란한 스텝을 밟는 곳, 브라질이 당첨됐다. ‘좀 사는’ 브라질 집안에서는 성년이 된 딸에게 유방 축소술을 선물하는 것이 관례다.

1888년까지 흑인 노예제가 유지돼온 브라질에서 풍만한 노예의 몸은 성적 대상이자 식민적 종속의 상징이었다. ‘가슴 큰 여자=하류층 여성’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브라인질인 대다수는 큰 가슴은 큰 약점이며, 일찌감치 없애야 사회 엘리트층에 속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인구 대비 성형수술 비율이 가장 높은 브라질은 수많은 인재들이 성형외과의사를 지망하고 유명 호텔에서는 성형관광 패키지를 안내한다. 브라질은 이제 거대한 성형 리조트로 불린다. <237~253쪽> / 정리=정연심 기자 
 
* 이 기사는 격주간 독서신문 1631호(2017년 9월 14일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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