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읽기 좋은 책 ‘메트로 북’] 『섬마을 산책』
[지하철에서 읽기 좋은 책 ‘메트로 북’] 『섬마을 산책』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8.25 15: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신문] 섬이 뭍사람들에게 물었다. 저를 아시나요, 라고. 뭍사람들이 섬에 가는 건 대부분 여름 나들이다. 그래서 섬은 뭍사람들이 지난여름에 한 일을 다 안다. 그렇게 섬은 뭍사람들에게 시달리고 술에 취하고 흔들리며 바다와 이웃한다.

섬이 주는 아스라한 이미지는 그러나 뭍사람들에겐 동경의 대상이다. 밤새 바다에 포박돼 있다 안개가 걷히면서 햇살 속에 떠오르는 섬(김훈은 이를 부풀어 오른다 했다)은, 본 사람만이 아는 절경이다. 그래서 섬에 이끌린다.
 
이 책은 뭍사람들에게 노출된 섬과 동경 속 섬의 경계에 있다. 저자의 소박한 걸음을 그래서 『섬마을 산책』이라 했다. 행여 다칠세라 깊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따스한 시선은 섬 전체를 고루 담고 있어 푸근하다. 많은 수사를 동원해 쓴 글은 아닌데도 읽을수록 은근히 몰입된다.

젊은이(저자)의 순수함을 보여주는 대목도 있어 심심찮다. “바닷물이 드나들면서 갯벌이 드러나는 것은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사실 심정적으로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정말 밀물 때면 이 진흙탕은 다시 바다가 되는 것일까”<124쪽>라는 대목은 웃음을 짓게 하면서도 한편으론 독자를 잠시 갯벌 위에 서 있는 어린아이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곧 저자는 언젠가 인생의 밀물 때가 올 것이고 멋지게 바다 위를 항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희망을 대신한다.

등대같은 위안의 ‘섬’파도 닮은 용기 주고…
섬에 대한 따스한 시선, 담백 슴슴한 ‘산책’

저자는 섬을 ‘어슬렁어슬렁’<10쪽> 돌아본다. 그래서 청산도에선 연둣빛 논밭의 야들야들한 볏모를 보는 여유로움을 보여주고, 한여름 백아도에선 몸뻬(민박집 주인 아주머니가 준 것) 입고 뱀도 많다는 산을 오르고, 한겨울 눈 내린 어청도에선 뽀드득 뽀드득, 온 섬이 다 울리도록 소리 내며 걷기도 했다. 섬은 모퉁이나 골목을 돌 때마다 마을 풍경이 확 달라진다는 사실도 그 ‘어슬렁’ 덕분에 알게 됐다.

섬은 참 무뚝뚝하면서 순박한 정이 있다. 저자가 들려준다. “내도 선착장에 내려 두리번거릴 때 예약한 민박집 아저씨가 나타났다. ‘3시 배 타고 온다 캐놓고는 전화가 없어 가지고 기다렸다 아이가. 온다 만다 전화를 해 주야 방에 보일러를 틀어 놓든지 하제’ 그러면서 배낭을 보더니 ‘짐은 그게 다가?’”에서는 서울서 볼 수 없는 배려가 묻어난다. 그 마을을 관청에선 명품마을로 지정하고 나무 계단과 모노레일을 만들었다. 나무 계단은 공산품이다. 여기저기 있는 돌길이 더 좋았다고 그 아저씨는 말한다.

내도에서 편백숲을 걸을 때 저자는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내 20대는 오롯이 방황의 나날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 당시 나는 세상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 겁났다. 세상과 마주한다는 것은 날 것의 나와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니까, 무서웠다. (…) 피하고 싶어서 자꾸만 도망쳤다”<106쪽>

저자의 지금은 어떤가? 여전히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바람이 머리채를 휘어잡는다고도 했다. 그러나 도망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그 편백숲은 길 없는 숲이었고 바람은 비정했다. 20대의 방황은 그 편백숲을 벗어나면서 끝이 났고 바람은 풍향이 바뀐 듯 이젠 무심해졌다.

『섬마을 산책』
노인향  지음 | 자연과생태 펴냄 | 184쪽 | 12,000원

이 책은 뭍사람들에게 노출된 섬과 동경의 섬 경계에 있다고 했지만, 사실 저자는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와 포말이 부서지는 섬의 경계에 있다. 아니 좀 더 섬에 한 발 짝 들어선 것 같다. “그리고 다시 휘익, 바람이 분다. 시인 폴 발레리가 노래한 것처럼 바람이 부니 나도 살아야겠다”<115쪽>. 이쯤되면 저자의 성장통도 아물어 가는 것 같다. 겨울밤 등대 불빛 같은 위안이 있어 섬이 좋고, 파도처럼 일렁이는 용기를 가르쳐주기에 섬을 더 사랑할 것이다. 저자 노인향은.  / 엄정권 기자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