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老子와 장자莊子
노자老子와 장자莊子
  • 황인술
  • 승인 2007.12.20 17: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Ⅰ. 생각확대하기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위왕이 나에게 큰 박씨를 주기에 그것을 심었더니 자라서 다섯 섬이나 들어갈 정도로 큰 박이 열리더군요. 물을 담자니 무거워서 혼자 들 수가 없고, 쪼개어 바가지를 만들자니 펑퍼짐하고 납작해서 쓸모가 없었습니다. 엄청나게 크기만 컸지 아무데도 소용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내 그것을 부숴 버리고 말았습니다그려.”
  장자가 말했다.
  “선생께서는 큰 것을 쓰는 방법에 대해 너무 서툴군요. 송나라에 손 안 트는 데 잘 듣는 약을 만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대대로 솜을 물에 빠는 일을 가업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한 나그네가 그 말을 듣고 그 처방을 백금에 사겠다고 제의하자, 그가 가족들을 모아 놓고 의논하였습니다. ‘우리가 대대로 솜을 빠는 일을 해 오고 있지만, 겨우 몇 푼이나 버는 데 불과했다. 이제 단번에 이 기술을 팔아 백금을 벌 수 있으니 그에게 팔도록 하자.’나그네는 그 처방을 얻어 가지고 오왕을 설득했습니다. 마침 월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해 왔을 때, 오왕은 그를 장수로 삼아, 겨울철에 월나라 군사와 수전을 벌여 월나라를 크게 패배시켰습니다. 오왕은 그의 공적을 치하하여 영지를 나누어 주고 제후로 삼았습니다. 손을 트지 않게 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어떤 이는 영지까지 나누어 받은 제후가 되었고, 어떤 이는 솜이나 빨면서 살아가게 된 이유는 그것을 쓰는 방법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대가 다섯 섬이나 들어가는 박을 가지고 있다면, 어째서 그것을 큰 술통 모양의 배로 만들어 강이나 호수에 띄울 생각은 않고 그것이 펑퍼짐하여 아무 것도 담을 수 없다는 걱정만 하는 것입니까? 그러니 선생의 마음은 앞뒤가 꽉 막혀 트이지 못한 것입니다.”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내가 있는 곳에 엄청나게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가죽나무라고 부릅니다. 그 큰 줄기는 혹 투성이어서 먹줄을 칠 수도 없고, 가지는 비비 꼬여서 자를 댈 수도 없기에, 길가에 서 있지만 목수들이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지금 그대의 말도 크기만 했지 아무 쓸모가 없어 사람들이 외면할 거요.”
  장자가 말했다.
  “선생은 살쾡이나 너구리를 보지 못했나요? 몸을 낮게 웅크리고 있다가 돌아다니는 작은 짐승을 노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높고 낮은 데를 가리지 않다가 결국 덫에 걸리거나 그물에 걸리어 죽게 됩니다. 그런데 태우?牛라는 들소는 그 크기가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아 큰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쥐는 잡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그대는 큰 나무가 있음에도 쓸모가 없다고 걱정하는 듯한데, 어째서 그것을 아무 것도 없는 곳, 드넓은 들판에 심어 놓고 하릴없이 그 곁에서 왔다 갔다 하거나 그 아래에서 노닐다가 드러누워 잠을 잔다거나 하지 않는 거요? 그 나무는 도끼에 베어질 염려도 없고, 어떤 사물도 그것을 위해하지 않을 것이니, 아무데도 쓸모가 없다는 것이 어째서 괴로움이 된다는 것인가요?
『장자』, 「소요유逍遙遊」

 
Ⅱ. 생각확대하기  

 
▲     © 독서신문
1. 장자의 생애
  중국의 사상가로 성은 장莊. 이름은 주周. 송宋의 몽읍(蒙邑:河南省商邱縣 근처) 출생(맹자와 비슷한 시기).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도가道家의 대표적 사상가. 장자는 노자의 유심주의를 계승 발전시켰으나 부분적으로 다르다. 노자는 미추美醜, 강약强弱 등은 구분 할 수 있고 이들은 대
립 관계에 있다고 보았지만 장자는 이러한 구분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대립관계도 없다고 했다. 즉 절대적 시비나 표준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본 것이다.
  어떤 대상을 절대적 시비나 표준으로 욕구하거나 사유하지 않는 것을 무위無爲라 하며 이는 도道로 도를 천지만물의 근본원리라고 보았다. 도는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생성시키며 스스로 움직이는 것으로 自然이된다. 이러한 생각은 범신론汎神論에 속하는 사유라 할 수 있다. 
  관영官營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으나, 평생 벼슬을 하지 않았으며 10여 만 자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하였다. 초楚의 위왕威王이 재상이 되어 줄 것을 요청했으나 고사固辭하였다.  그의 저서 『장자』는 52편篇이었지만 전해 내려오는 것은 진대晉代의 곽상郭象이 산수刪修한 33편(內篇 7, 外篇 15, 雜篇 11)뿐이다.
 
2. 장자의 철학
  인간의 성품은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 살아가는 시대와 지역, 교육이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따라 성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즉 성품은 내면보다는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들과 접촉하고 경험한 결과에 의해 각기 다른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얻어진 지식은 보편타당하고 객관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장자는 이러한 지식의 행위는 인위人爲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봤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하여 다리를 자른다면 결과적으로 학을 해치게 되듯이 인위는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장자는 노자老子와 같이 도道를 만물의 근본원리로 본다. 도는 하나(一)이며 완전히 갖추어져 있어 모자람이 없는(대전大全) 것으로 도의 대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도는 무위無爲로 자연이 된다. 도는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이 세상 모든 사물 속에 도는 존재한다. 도가 각각의 사물에 존재하며 드러나는 것을 덕德이라고 한다. 도가 천지만물의 존재하는 보편적 본성이라면 덕은 각각의 사물에 스며있는 본성이 되며, 인간 본성 또한 덕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덕을 회복하여 자유를 추구 하려면 마음과 성품을 갈고 닦아야 한다.(성수반덕性脩反德)
  성수반덕의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심재心齋와 좌망坐忘이다. 좌망은 조용히 앉아서 자신을 구속하는 모든 것들을 털어내는 것이며, 심재는 마음을 비워서 깨끗이 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 통해 자신과 사물이 하나 되어 물아일치의 경지에 이르면 지인至人, 신인神人, 진인眞人이 될 수 있으며, 심재와 좌망에 의해 덕을 가지게 되면 도와의 거리는 사라지게 되고 서로 구분 없이 만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물아일치의 경지에 이르러 도를 깨달아 하나가 되면 도의 위치에서 사물들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를 이도관지以道觀之라 한다. 물物의 방식에서 사물을 보면 자기는 귀한 존재이고 상대방은 천한 존재라고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나 도의 위치에서 사물을 바라보면 만물은 차이에 의한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안목을 가지게 된다. 인간은 이와 같이 도와 하나로 합일되면 자연의 섭리에 따라 자연과 같이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게 되며 이는 하늘이 부여한 자유 상태로 회귀이다. 자연과 같은 자연스런 자유는 천지만물과 자아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 지인至人이 되어야 누릴 수 있다. 지인이 되어야 비로소 모든 우주 만물과 조화를 이루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장자사상은 위진현학魏晉玄學과 남북조 시기 반야학般若學, 당나라의 선종禪宗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현종玄宗은 장자에게 남화진인南華眞人 호를 추증하였다.
  『장자』는 우언우화寓言寓話 형식으로 써진 책이며, 풍부한 상상과 표현으로 우주본체宇宙本體와 사물의 근원根源, 물화현상物化現象 등을 설명하고 있다. 실재계인 현실 세계를  교묘하고 약삭빠르게 살아가는 지자知者에 대한 경멸의 뜻이 담겨있는 책이다. 
 
▲     © 독서신문
3. 노자老子의 생애  

   초楚나라 고현(苦縣:허난성河南省  鹿邑縣)에서 출생한 중국 고대 철학자로 도가道家를 창시했다. 성은 李. 자는 담聃. 이름은 이耳로 노담老聃이라고도 한다. 노자를 찾아온 공자가 예禮에 대해 가르침을 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주나라가 쇠망해 감을 한탄하고 서방西方으로 떠나는 도중 관문지기의 요청으로 상하上下 2편의 책을 써 주었다고 한다. 이 책이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으로 「도편道篇」과 「덕편德篇」(2권)이다. 이 책은 도가사상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異見들이 있다.
 
4. 노자의 도가 철학
  노자의 사상은 도道의 개념을 중심으로 무無이며, 무위자연으로 요약된다. 노자는 일체 사물과 사건들은 그들 자신과 상반하는 대립자들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있는 것으로 유有가 있으면 없는 것으로 무無가 있고 앞이 있으면 반드시 뒤가 있게 마련이다. 이들 대립물들은 서로 바뀌면서 다른 것으로 변화된다. 즉 화는 복이 되고 흥한 것은 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대립전화對立轉化의 법칙을 알고 유柔를 지키면 강剛을 이길 수 있다. 이를 귀유貴柔사상이라고 한다.
  노자老子가 창시한 철학사상으로 장자가 계승 발전시키게 되나 한 무제는 동중서董仲舒의 ‘독존유술獨尊儒術’(백가를 배척하고 오직 유교의 학술만 존중 罷黜百家, 獨尊儒術)을 받아들이게 된다. 아울러 법술法術과 형명刑名(독존법가獨尊法家)을 채용하여 통치를 강화한 이후 도가는 영향력을 잃게 된다.
  부정적 현실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된 도가 철학은 형이상학적 측면에서 개념화시킨 보편성을 지닌 철학사상으로 현명하게 난세를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노자의 사상은 자연스럽게 정치사상으로 연결되었다.
  노자에게 중요했던 것은 형이상의 도에 관한 것이 아니라, 도를 어떠한 방법으로 체득할 것인가와 체득된 도를 국가 사회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있다. 이러한 면에서 살펴보면    『노자』에 나타난 사상은 정치적 실천 방법에 대한 정치철학사상서라고 볼 수 있다. 노자 정치사상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군주에게 무위에 의한 통치철학을 이야기 하지만 노자 사상의 출발이자 마지막 목표는 오직 백성의 안녕에 있기 때문이다.
  노자는 백성의 입장에 서서 평화로운 나라와 행복한 세상을 위해 통치자들에게 통치에 대한 잘못을 고발하고 이상적인 국가정치를 행하도록 촉구했다. 백성에게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며, 위선과 일신의 안위에 대한 이기심으로 가득 찬 통치자들에게, 우주의 운행질서인 도를 회복하고 이상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의 포악한 악정은 중단되어야 하고 사라져야 한다고 요구했던 것이다. 따라서 노자의 철학은 당시 혼란한 시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노자 사상을 국가 경영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모든 사물의 존재론으로 시야를 넓혀 이해해야 한다. 인간이 만물을 지배하기 위한 얼마나 많은 탐욕과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 반성하고 물욕에서 벗어나 본래 가지고 있었던 자연성을 회복하여 만물 세계와 평등하게 조화하고 상생해야 함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통치와 함께 모든 백성과 사물에게 적용되는 행위와 가치로 해석할 때 노자 사상은 국가 통치론을 뛰어넘어 인생론과 환경론으로까지 확대 해석하여 이해될 수 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노자 철학사상은 현대 문명에게 반성과 함께 새로운 자세를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노자 사상은 중국인을 비롯하여 동양인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도가는 학파 이름이며 도교는 종교단체를 말한다. 도교를 오두미도五斗米道라고 부르는데 이는 도교에 입교하는 신도들이 쌀 다섯 말을 냈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다. 이러한 도가 사상은 우리나라도 많은 영향을 주며, 신선과 풍류를 숭상하는 선도仙道라는 이름으로 유 ? 불 ? 선 3교 가운데 하나로 정착하게 된다. 이후 우리나라 전통사상의 골격이 된다.
 
5. 『노자』
1) 『노자』 제 48장 망지忘知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取天下, 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위학일익, 위도일손, 손지우손, 이지어무위, 무위이무부위, 취천하, 상이무사, 급기유사, 부족이취천하
  배움(학문 함)爲學은 매일매일 불어나고, 터득(도를 추구함)爲道은 매일매일 줄어든다. 줄이고 또 줄여 무위에 이르게 되므로, 무위는 억지로 하지 않을 뿐 하지 못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천하를 얻은 자는 항상 억지로 만들어 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 억지로 만들어 하는 일이 있게 되면, 천하를 얻어 다스린들 만족할 수가 없다.
  노자는 학문 함爲學과 도를 추구함爲道을 구분하였다. 지식은 배움을 통해 광범위하게 쌓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노자는 천지만물의 근원을 道라고 보았다. 도는 내면으로부터 터득할 수 있다. 일상의 자아를 가지고 있는 보통사람이 도에 가까이 가려면, 먼저 마음속으로부터 도와 통할 수 있도록 방해 되는 것들을 모두 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덜어내고 또 덜어내서 무위(도의 작용)에 이르러야 한다.
 
2) 道
  흔히 『노자』를 『老子道德經노자도덕경』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본 이름이 아니다. 『노자』는 도와 덕을 중심으로「도편道篇」과 「덕편德篇」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둘을 합쳐 『老子道德經』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노자』 첫머리에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명가명, 비상명名可名, 非常名’의 말이 나온다. 이 문장은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로 풀이할 수 있다. 여기서‘늘 그러할 常’을 영혼불멸이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러함’으로 도는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변할 줄 모르는 우리의 생각 속으로 도가 들어오면 도는 변하지 않게 되는데 이는 도가 아니라는 뜻이다. 
  노자는 도는 눈이나 귀의 감각기관으로는 알 수 없다고 봤다. 인간의 감각기관으로 감각할 수 없는 도는 시시각각 변하는 무無라 할 수 있다. 무에서 나오는 도는 천지만물 어디나 어느 곳이나 통하면서 천지만물의 존재와 생멸하고 변화하는 중심축에 해당되는 실체인 것이다. 천지만물의 근본이 도라면 사람의 본성 또한 덕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된다. 덕은 도에서 얻어진다. 따라서 인간의 근원을 이루고 있는 덕을 회복한다면 천지만물의 근원인 도와 막힘없이 통할 수 있는 것이다.
 
3) 무위자연無爲自然
  nature는 자연으로 번역된 말로 객관성을 가지고 있는 물질을 나타내지만 본래 자연의 정의는 스스로 태어나서 자라고 스스로 죽어가는 것을 말한다. 또한 자연이란 본래의 모습, 처음 그대로의 모습이나 상태를 뜻하지만 노자가 말한 자연은 그 안에 주체성을 가지고 있는 정신이며 그 넓이는 크고 깊은 것이다. 즉 자연이란 만물의 본래의 성질이나 모습에 어긋남이 없는 것으로 처음 있었던 그대로의 것으로 있는 상태를 자연이라고 한다. 이 자연 상태를 거스르지 않는 것을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 하며 도에 의해 천지만물이 생겨나지만 도는 다른 사물들을 간섭하거나 지배하지 않는다. 때문에
  “도는 항상 무위하지만 그에 의하여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라고 말한다. 도는 무불위無不爲하기 때문에 천지만물은 도 없이 존재하거나 움직일 수 없다. 그렇다고 도는 어떤 목적이나 의지나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면에서 도는 무위無爲한 것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으며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이와 같이 노자는 사람, 하늘, 땅, 道 등 모든 것들은 자연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자연은 노자철학의 최고개념이다.
 

Ⅲ. 생각 정리하기 
 
 1. 스스로 태어나 자라고 스스로 멸하는 자연
  장자는 자연의 법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며 이를 도라고 했다. 일상의 자아를 가지고 있는 보통사람이 도에 가까이 가려면, 먼저 마음속으로부터 도와 통할 수 있도록 방해 되는 것들을 모두 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덜어내고 또 덜어내서 무위(도의 작용)에 이르러야 한다고 했다. 또한 장자는 획일주의를 반대하고 다양한 사물들의 근원을 살리면서 인간이 자연과 함께 공생공존 할 수 있는 세계관을 제시하였다.
  장자가 추구한 이상적인 삶의 목표는 정신의 자유이다. 인간 세상사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갈등과 분쟁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도와 덕이다. 그 중 덕은 인간의 본성이다. 이 덕을 적극적으로 살려내고 덕에 맡겨 살아감으로써 마음을 속세俗世 밖에 두고 한가로이 지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오늘날 자연을 파괴하여 생태계 위기에 직면해 있는 인류에게 등불을 보여주고 있다. 장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볼 시점이다.
 
2. 이도관지以道觀之
  지인至人은 사물들을 물物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도道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이물관지以物觀之는 물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고 이도관지以道觀之는 도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도는 사물들 사이에 일어나는 시비是非,  대소大小, 선악善惡 등이 서로 갈등과 대립하여 투쟁하지 않는 상태로 전체적이며 근원적인 원리이다.
  도의 입장에서 보면 물건에는 귀천貴賤의 구별이 없고. 물건 자체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고 서로 남을 천하게 여긴다는 존재론적 사유로 물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면, 이쪽에서 보면 저쪽은 타자他者요, 저쪽에서 보면 이쪽이 타자他者가 된다는 것이다. 또 생生에서 바라보면 멸滅은 멸이지만, 멸에서 바라보면, 멸은 생이 되고 생은 도리어 멸이 된다. 장자는 사물들이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변하고 흐른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생멸에 집착하는 것은 물의 관점에서 본 이유요, 도의 관점에서 보면 생은 곧 멸에로 멸은 곧 생에로 변화하는 생멸의 구별이 무의미 하다는 것이다.
  인관념因觀念은 이도지관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작용한다. 인因이라는 것은 자신의 사욕을 버리고 사물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장자가 말하는 인이란 주관을 버리고 객관 자체의 원리에 맡겨 임의대로 사물을 헤아리지 않는 것이다.
 
3. 자유인自由人
  지인은 도道를 통해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자로 외형적인 물에 구속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인간을 말한다. 지인은 물에 미혹되어 삶을 살아가는 보통사람과는 달리 물로부터 스스로 벗어나 자연의 이치와 본성本性에 따라 살아가는 자유인을 말한다.
  어느 날 장주莊周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였다. 마음껏 하늘을 날아다니며 자기가 장주임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문득 눈을 떠 보니 자기는 틀림없는 인간 장주였다. 장주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장주의 꿈을 꾸는 것인가.
  그 모양으로 볼 때 장주와 나비는 분명히 별개의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만물의 무한한 변화 곳에서는 한 양상樣相에 불과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장자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현실세계의 가치들은 한낱 꿈에 불과한 것을 나타낸 이야기로 우리 인생은 결국 꿈에 불과한 환상임을 시사하고 있다. 장주가 나비가 되면 어떠하고, 나비가 장주가 되면 또 어떠한가. 인간의 행복이란 외형이나 욕구의 충족에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내면세계에는 장주와 나비라는 분별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이것을 물화物化라 부른다.
  인간은 꿈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인간은 일체의 꿈에서 깨어나 삶이 꿈이었음을 깨닫고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무지로부터 벗어나 크게 깨닫는 것을 말하며, 이를 통해 아我와 물物의 구별이 없어지는 경지를 말한다.
  물화物化는 사물들 사이에 있는 차별을 없애고 아와 물이 동화同化하는 경지境地를 말한다. 우주의 본성本性은 무분無分이며, 차별을 떠나 우주본성宇宙本性인 도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제일齊一하게 바라봄으로써 집착하지 않고 구속받지 않고 절대적絶對的인 정신적 자유精神的 自由를 누리게 된다. 따라서 자아自我는 대자연大自然과 한 몸이 되어 자연에 따라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유인의 경지는 무대無待를 통해서 이루게 된다.
 
  물질적 풍요만을 위해 인간성까지 버린 인간에게 가치 있는 참된 삶이 무엇인지, 자신의 본성本性은 무엇인지 깨닫게 하여 그 본성에 있는 덕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깨우쳐 준다. 현대인들은 자본과 물질의 욕망을 위해 인간성을 버리고 말았다. 욕망은 줄어야만 해결된다고 프로이트는 말했다. 끝없는 욕망은 언제나 새로운 문제를 발생하게 한다. 물物에 대한 끝없는 추구보다는 자신의 내면속에 있는 본성本性을 탐구하여 참된 가치를 회복해야 함을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란 다른 것에 기대지 않는 삶이라는 것을 장자는 주장하고 있다.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에게 의지하려 하지 말라고 말한다. 주체적인 삶이 진정한 자유를 위한 기본이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인간은 근대를 열면서 이성으로 세상을 지배하여 물신숭배 사회를 만들었다. 이후 인류 문명은 야만의 20세기를 지나오면서 자연을 철저히 파괴하였고 이제 자연과 함께 공멸의 길로 접어든 위기의 세기를 맞이하고 있다. 최첨단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고대의 철학자 장자가 던지는 충고는,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이며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임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Ⅳ. 논제 찾아보기 

장자는 외물外物에 기대어 살아가는 이러한 방식은 모두 부질없다고 지적한다. 자연과 더불어 소통하고 스스로 뽐내어 다른 사물을 경시하지 않으며,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산다면 천지를 만든 자와 함께 노닐 수 있고, 삶과 죽음, 처음과 끝을 넘어서는 존재로 자연과 벗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와 같이 노장자老莊子는 자신의 사욕을 버리고 자연의 도에 합일하는 것이 이상理想이라고 하였다. 그 길은 만물을 만들어 내는 본질로 실재임과 동시에 현실세계의 온갖 잡다한 현상들을 관통하여 만물을 그 자체로 존재하게 하는 법칙이기도 하다. 세계의 진리는 도에 있고 현상은 도가 발현함으로 뜻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1. 노장자가 말하는 도道의 뜻을 정리하고, 유가 사상과 비교해 보시오.
2. 자연스러움의 의미는 무엇이며 물질문명이 가져온 인간성상실과 인간성 파괴에 대한 치유책으로 노장 사상이 가지는 의미를 논술하시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