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스타 배우 양성소’ 쓰릴 미, 10주년 맞이 선물 같은 캐스팅
[공연리뷰] ‘스타 배우 양성소’ 쓰릴 미, 10주년 맞이 선물 같은 캐스팅
  • 이정윤 기자
  • 승인 2017.04.0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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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클립서비스>

[리더스뉴스/독서신문 이정윤 기자] 감옥의 가석방 심의위원회에서 수감자 ‘나’의 일곱 번째 가석방 심의가 진행 중이다. 나를 심문하는 목소리들은 34년 전, 나와 ‘그’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묻는다. 교외 숲속에 버려진 어린아이의 시체, 그리고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된 안경에 대해 얘기하며, 나는 그와 함께 12세 어린이를 유괴해서 처참하게 살해하기까지의 상황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어린 나이에 법대를 졸업할 정도로 명석한 두뇌를 지닌 나와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와 그가 피로 맺은 계약의 내용은 무엇이며, 그들은 12세 소년을 왜 죽여야 했을까? 과연, 누가 누구를 조종한 것일까? 뮤지컬 ‘쓰릴 미’는 가슴을 적시고 이성을 마비시키는 전대미문 사건의 진실을 찾아간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뮤지컬 ‘쓰릴 미’는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리차드 알버트 로브(Richard Albert Loeb, 1905~1936)와 네이슨 에프 레오폴드 주니어(Nathan F Leopold. JR, 1904~1971) 두 사람의 유괴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단 한 대의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탄탄한 음악과 심리 게임을 방불케 하는 명확한 갈등 구조가 돋보여 매 시즌 뮤지컬 마니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박용호 프로듀서의 말처럼 “최신형 트렌드 뮤지컬도 아니고, 피아노 한 대에 배우 두 명, 그리고 두 사람의 엎치락뒤치락하는 심리를 90분 내내 지켜본다는 것은 뮤지컬 취향으로는 돈 아까운 시간낭비”일 수 있다. 그럼에도 ‘쓰릴 미’ 하면 1924년 시카고, 두 천재 소년의 두뇌싸움, 희대의 살인마, 사이코패스, 안경, 타자기, 심리전 등 떠오르는 단어들이 많다. 그만큼 관객들을 작품에 몰입시켜 흡입력 있는 스토리를 이끌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배우들의 열연도 빛난다. ‘쓰릴 미’는 ‘스타 배우 양성소’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수많은 스타 뮤지컬 배우들을 탄생시켰다. 10주년 공연에는 남성 2인극의 돌풍을 이끌었던 2007년 멤버 최재웅, 김무열, 강필석, 이율을 필두로 김재범, 에녹, 정상윤, 송원근, 정동화, 이창용, 정욱진이 함께한다. 각 페어들은 6가지 색깔을 뿜어내며, 관객들을 여러 번 극장으로 이끈다. 두 인물 간의 관계와 감정이 어느 공연보다 밀도 높게 표현되는 만큼 관람 때마다 전혀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중 김무열-최재웅 페어의 공연은 모두 매진이 됐을 정도로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5월 28일까지 백암아트홀에서 90분간 만나볼 수 있다.

‘나’ 역의 이창용

◆ 나 “널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부유한 가정에서 잘 자란 ‘나’는 19세에 시카고 법대를 졸업하고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 예정인 천재다. 머리가 비상하지만 섬세하고 부드러운 면을 가지고 있어 ‘그’와는 다르게 인기 있는 소년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모두 너만을 원해. 하지만 나만큼은 아냐”라며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그가 자신만을 바라봐줄 것을 바란다. 

이 절실한 마음이 통했을까. 그는 나의 성품, 개성, 태도가 자신과 잘 부합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고, 그의 범죄적인 환상을 채워줄 것을 요구한다. 나는 단순한 방화 사건에서 살인 사건까지 점차 범행의 강도를 높여가는 그를 바라볼 뿐 말릴 수 없다. 이미 피의 계약을 맺었기 때문. 결국, 끔찍한 살인 사건의 피의자로 발각된 나는 감옥에서 34년을 복역하기에 이른다. 

나의 실제 인물인 네이슨은 가석방 진술서에 자신의 심정을 이처럼 표현했다. “여러분, 양심 한구석에 살인의 기억을 갖고 남은 생을 살아가는 건 너무나 비참한 일입니다. 살인을 직접 저지르지 않았다는 양심의 가책을 더는 데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감옥에서 보낸 시간 동안 깨달은 단 한 가지는 타인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조용한 어딘가에서 내가 저지른 죄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으며 살고 싶습니다”

‘그’ 역의 송원근

◆ 그 “너는 나만 믿고 따라 오면 돼”

‘그’는 아버지의 사랑에 목말라하고 친동생을 증오하는 19세 청년이다. 미시건대 역사학 전공을 최연소로 졸업하고 시카고대 로스쿨에 입학 예정인 그는 타고난 외모와 언변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또한, 니체의 초인론에 빠져 스스로를 초인, 뛰어난 인간으로 여기고 있다. 이 생각은 변질돼 ‘뛰어난 인간이 벌이는 완벽한 범행’으로 이어진다. 

그는 나와의 육체적인 관계를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만약 자신이 호모섹슈얼이라는 사실이 폭로된다면 자살을 택하겠다고 말할 정도다. 이런 그의 일방적인 태도에도 나는 크게 반발하지 못한다. 그저 그의 ‘친구’가 되어 함께 비행을 저지른다. 경찰에게 범행이 발각될 위기에 처했을 때도 그는 당당하게 나의 알리바이를 만들어주고, 자신은 이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실제 인물인 리차드는 어린 시절 가족이 아무도 자신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느껴 이웃집이나 가게에서 물건을 훔쳤다. 또한, 엄격한 가정교육 탓에 자신이 감옥에 갇혀 타인으로부터 학대당하고 조롱거리가 되어 감시당하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비뚤어진 환상은 금기에 대한 욕구로 표출됐고, 이는 곧 완전 범죄에 대한 환상으로 변모했다. 실제로 리차드는 어느날 감옥 샤워실에서 동료에게 살해당하며 삶을 허망하게 마무리했다. 

* 이 기사는 격주간 독서신문 1621호 (2017년 4월 10일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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