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1632~1677)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1632~1677)
  • 황인술
  • 승인 2007.11.2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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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생각확대하기 

▲ 스피노자     © 독서신문
스피노자 (baruch de spinoza, 1632~1677)


 철학자. 스페인에서 네덜란드로 피난 온 유태인의 후예.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암스테르담 출생이다. 종교적 문제로 자신의 가족, 동료, 친척, 마을과 유태교로부터 파문 당하는 등 극적인 생애를 살았다. 온화하고 침착하며 조용해 보이지만 내적으로는‘존재했던 어떤 인간보다도 더한 고독을 맛본’사람이다. 데카르트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며, “모든 것이 신이다”라는 범신론(汎神論) 사상을 주장했지만 유물론자 무신론자였다. 스피노자에게 신이란 그리스도교적인 인격의 신이 아니고 자연이었다.  처음에 유대교단의 학교에서 헤브라이어와 성전(聖典)을 공부하였고, 카바라의 신비사상에도 접하였으나, 졸업 후에는 고전어를 공부하고 인문주의적인 교양을 쌓아 점차 이단적인 서구적 사상으로 기울어졌다. 수학 ·자연과학도 공부하였고, 데카르트 철학에서 결정적 영향을 받았으며, 이 학설에 의거하여 성전과 조상의 학문을 대담하게 비판하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비위를 거슬려 1656년 끝내 파문선고를 받았다. 유대교 광신자 중에는 그의 암살을 기도하는 자까지 출현하였으므로, 네덜란드인들 속에 피신하여 평생을 혼자 고독하게 살았다. 렌즈 가는 일을 주 수입으로 살았고, 결국 그 과정에서 생기는 먼지가루 때문에 요절했다는 스피노자의 생애는 그의 사상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신(神) ·인간 및 인간의 행복에 관한 짤막한 논문」 「지성 개선론 tractatus de intellectus emendatione」을 집필하였고, 「데카르트 철학 원리 renati de cartes principiorum philosophiae」(1663)를 출판하였다.
 
1. 神은 자연自然이다 :  神에 대한 해석은 그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아간 파문의 계기가 된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실체 개념에 영향을 받아 데카르트(descartes)가 말한 것처럼, 세계는 사유하는 사물(res cogitans)로서의 영혼에게서 분리되어 있는 연장되는 사물(res extensa), 곧 물질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이 세계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며, 인간에 의해 조정될 수 있다는 것, 즉 세계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의 기계와 같은 것으로 이 기계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그것의 미래는 정확히 계산될 수 있음을 받아 들였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19세기 기계론적(결정론적)세계관이라고 한다.
  여기서 스피노자에게 문제가 된 것은 결정론적 자연관에 의해 신도 결정론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신은 이성적 존재이고, 이성의 사유방식은 논리적, 인과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신은 논리적, 인과적, 이성적으로 사유하는 존재라 보았다. 더욱이 스피노자는 ‘범신론pantheism’인 신은 완전한 존재이고 보편적 존재이므로 온 우주와 함께, 하나인 존재라 보았다. 신과 자연은 구별할 수 없는 하나이다. 신은 ‘만들어내는 자연(natura naturans; 능산적 자연) ’이고 세계와 우주는 그런 신에 의해 ‘만들어진 자연(natura naturata; 소산적 자연)’이라는 차이만 있다. 그러나 이 둘은 구별되지 않는다. 신은 곧 자연이라는 이 주장은 신의 유일성과 초월성을 기본으로 삼는 유태교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독신(瀆神)적 사상이었다. 
 
2. 자유는 필연 : 스피노자는 신과 자연은 일체, 물질과 정신도 일체, 인간의 정신과 몸도 일체라고 본다. 정신과 육체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다른 실체를 가진 두 속성일 뿐이다. 스피노자는 자유와 필연의 문제도 같은 연장선에서 설명한다. 우리에게 자유와 선택의 문제는 실제로 선택이 아니며, 신의 눈인‘영원한 관점(sub specie aeternitatis)’에서 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필연의 결과(운명론적 사고)로 개인의 의지와 선택은 존재하지 않고 신적 관점에서 필연적인 결정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필연을 우연이라 착각하는 것은 무지라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이러한 생각은 견디기 힘든 절대 고독이라는 한계상황에서 마음의 위안을 찾을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스피노자가 생각한 자유와 필연의 관점은 위안을 줄 수 있었지만 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만다.
 
 
Ⅱ. 생각확대하기  
 
1. 코나투스
  ‘양태’로 모든 개체들이 자신의 존재를 지속시키려는 노력을 말한다. 3부의 ‘각각의 사물은 자신 안에 존재하는 한에서 자신의 존재 안에 남아 있으려고 한다.’ ‘각 사물이 자신의 존재 안에서 지속하고자 하는 노력은 그 사물의 현실적 본질일 뿐이다.’에서 알 수 있다. 즉 모든 양태들의 본질이 코나투스이다. 이것이 정신과 육체에 동시에 작용할 때, 이를 욕망이라 부르며, 인간의 경우는 이런 성향을 의식할 수 있으므로 의식적인 욕망은 ‘욕구’라 불린다. 이런 자기 보존은 더 높은 상태로나 낮은 상태로 이행할 수 있는데, 큰 완전성의 상태로의 이행이 의식을 통해 반영된 것을 ‘기쁨laetitia’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보다 낮은 완전성의 상태로의 이행이 의식을 통해서 반영된 것을 ‘슬픔trisitia’이다. 기쁨은 인간의 마음에 좀 더 높은 덕 또는 완전성으로 향상 될 때에 수반하는 만족감이며, 슬픔은 그와 반대되는 것으로 인격의 도덕적 발전에 있어서의 후퇴 또는 성숙된 힘의 감퇴에 따르는 무능과 열등의 느낌이다. 이 세 가지 기본 정념, 즉 욕구, 기쁨, 슬픔으로부터 다양한 감정들을 논리적으로 연역해 내려고 했다.
 
2. 아펙투스
  인간이 환경 속의 사물들과 교섭을 갖는 동안에 주위로부터 닥쳐오는 자극의 힘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 그 반응의 모든 방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육체적 현상과 정신적 현상은 상응하므로 사람의 몸에 일어난 변화와 마음에 일어난 변화가 동시에 아펙투스에 포함된다. 만약 사람의 힘을 크게 증대시키며 그 사람 자신의 본성에 의거하여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경우에는 능동이라 하며, 이와 반대되는 경우에는 수동이라 표현된다. 사람이 자기가 하는 행동의 충분한 원인일 경우에 그의 행동을 능동, 자기가 하는 행동의 불충분하고 부분적인 원인일 경우에 그의 행동은 수동이다. 전자의 경우는 자신의 본성과 힘을 나타내며, 후자의 경우는 밖으로부터 작용하는 힘의 노예가 된다.
  스피노자는 좀 더 큰 완전성을 얻기 위해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이에 의해 공동의 행복을 추구함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덕을 말하려 했다. 덕은 외적 원인의 공격에 대한 인간의 자기보존이며, 작용하려는 인간의 힘이며, 오직 자기 본성의 법칙으로부터만 설명될 수 있는 어떤 것을 산출하려는 힘이다. 무엇이 좋고 나쁜가와 이롭고 해로운가는 덕의 개념을 통해 규정되는데, 사물 자체의 긍정적인 것이나 부정적인 것이란 없고 우리와의 관계를 통해 드러난다. 즉 음악은 우울한 사람에게는 좋을 것이고, 초상을 당한 사람에게는 나쁠 것이며, 귀먹은 사람에게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 스피노자는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내린다. 수동적인 정념을 지배하게 해주는 것, 타당한 인식에 기여하는 것, 적대적인 외적 원인에도 불구하고 자기보존에 기여하는 것, 작용하는 힘에 기여하는 것, 타당한 관념을 자유롭게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좋은 것으로 선이며 이와 반대되는 것으로 악을 말한다. 이에 따라면 어떤 것을 선이라 판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향하여 노력하고 의지하며 충동을 느끼고 욕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노력하고 의지하며 충동을 느끼고 욕구하기 때문에 선이라고 판단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정념을 극복하고 자기 보존의 본질에 따른 기쁨으로의 이행, 완전성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은 신체의 모든 변화와 사물의 모든 형상을 신의 관념으로 연관시켜 볼 수가 있다.’(5부, 명제14) 예를 들어 우리가 받는 육체적 고통이 자연계 안의 유한적 존재인 우리로서 피할 방법이 없는 것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그 고통에 대해 분노하는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순간순간 상황들이 인과율적 체계의 한 부분으로 이해되지 못한 단편적 경험들은 인생을 순조롭지 못하게 하는 불안의 원인이 된다. 모든 것이 신에 의한 것이며 신이 모든 것의 원인임을 이해할 때, 우리 고통의 원인도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이에 대해서 ‘고통의 원인을 이해하는 한 그것은 더 이상 정념이기를, 즉 고통이기를 멈추게 된다. 따라서 신을 고통의 원인으로 인식하는 한 우리는 기쁨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정념을 극복하고 삶의 무상성으로부터 벗어나서 지복에 이르는 것은 결국 신에 대한 사랑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은 앞에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세 번째 종류의 인식인 직관지에 의해 생긴다. 정신은 이 신적 사랑을 누리면 누릴수록 더 많이 인식하며, 정서에 대해 더 큰 힘을 가지게 되고 결국 나쁜 정서의 작용을 덜 받게 된다. 스피노자의 에티카 5부 정리 42의 주석에 ‘무지한 자는 외적 원인에 따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동요되어 결코 영혼의 참다운 만족을 갖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과 신과 사물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살며, 작용 받는 것을 멈추자마자 존재하는 것도 멈추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현자는 현재로서 고찰되는 한에서 거의 영혼이 흔들리지 않고 자신과 신과 사물을 어떤 영원한 필연성에 의해서 인식하며, 존재하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고 언제나 영혼의 참다운 만족을 소유한다.’고 했다.
   “수동적인 감정은 우리가 그 감정에 대한 명료, 분명한 관념을 형성하면 순식간에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게 된다.”고 말한다. 어떤 관념을 소유한 개인이 관념의 타당한 원인을 파악하게 된다면 자기 보존을 위한 이 개인의 노력은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사유와 연장성의 두 가지로 파악될 수 있는 한 코나투스 또한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두 가지가 존재한다. 이러한 노력이 오직 정서와 관련될 때 이를 의지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노력이 정신과 육체 모두와 관련될 때 그것은 욕망이라고 불린다. 이러한 욕망은 바로 인간의 본질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욕망의 본성으로부터 자신을 보존하여야 한다는 욕구가 필연적으로 도출된다고 스피노자는 결론짓는다. 또한 스피노자는 욕망을 의식할 때 욕구를 가지게 되며 그것이 인간 본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함으로써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의 비이성적인 요소를 인정하고 있다. 거꾸로 여기에서 이성의 중요성 또한 역설된다.
 

Ⅲ. 생각 정리하기 
 
1. 대륙의 합리론
 
                왜 파문당했는가?
                           ↓
                신은 곧 자연이다.
                           ↓
     자유와 필연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
        참된 행복은 신의 관점에서
     이성적으로 세계를 보는 것이다.

  근대철학은 17세기 대륙의 합리론으로 시작된다. 합리론이란 이성을 존중하는 입장으로 르네상스를 거치며 감각을 통한 경험의 힘이거나 순수사유를 통한 이성의 힘만을 진리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을 말한다. 합리론이 지향하는 사유와 인식의 목표는 필연성과 보편성을 지닌 합리성이기 때문에 합리론자들은 수학을 학문의 전형으로 보고 수학적 방법론을 학문 연구방법의 모범으로 삼았다. 이는 자연현상을 양화한 갈릴레이의 전통을 이어받은 데카르트가 해석기하학의 원리를 제시했고, 스피노자가 기하학적 방법에 따라서 자기의 철학을 서술했으며 라이프니츠가 미적분학의 선구적 존재였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합리론에서 중요한 개념은 실체인데, 실체에 대한 생각은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에 따라 다르다. 실체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에 대해 데카르트는‘그것이 존재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데카르트 실체사상

무한실체

신 

유한실체

 정     신

 물     체

속    성

 사     유

 연     장

양    태

 의심, 판단 상상, 의욕

 위치, 운동, 수모양, 행태

 
  데카르트는 유한실체로서 정신과 물체는 사유하는 자와 연장하는 것으로 상호 독립적인 존재로 구별된다. 정신의 속성은 사유함이요 물체의 속성은 연장함이다. 결국 세계는 비연장적 존재인 정신과 비사유적 존재인 물체로 구별되어 이분법으로 파악되게 된다. 또한 물체는 기계론적인 운동을 할 수 있을 뿐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연장적 존재인 자연은 더 이상 목적활동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단지 죽어있는 거대한 기계덩어리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근대 자연과학이 요구하는 주장과 같은 것이 된다. 근대 자연과학은 중세의 목적론적 자연관과는 달리 기계론적 자연관 위에서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2. 스피노자 범신론적 일원론
  데카르트 이분법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은 실체를 하나로 제한하든가 또는 무한히 늘리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전자는 스피노자에 해당되며, 후자는 라이프니츠이다. 한편 스피노자는 데카르트 이원론을 일원론 체계로 바꾸지만 데카르트의 실체 개념에서 출발한다. 스피노자는 실체를‘그 자체에 의해 이해되는 것’으로 ‘자기원인(causa sui)’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실체란 신밖에 없게 되며, 정신과 물체는 더 이상 데카르트식의 실체가 아닌 것이다. 정신과 물체는 신이 가지고 있는 많은 속성 중 두 가지만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신은 무한히 많은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두 가지 속성인 사유와 연장만이 알려진다. 연장은 물체로 드러나고 사유는 정신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때문에 정신과 물체는 더 이상 실체인 것이 아니라 유일한 실체인 신의 두 가지 모습인 양태로 된다.
 


스피노자 형이상학적 체계

단독실체

(무한한 속성을 지닌)

신 

두 개의 알려진 속성들

 사     유

 연     장

일반적 무한 양태들   a) 직접적인 무한양태  b) 간접적인 무한양태

무한지성 전 우주의 유형

운동과 정지

 특수 유한 양태들

정신들

물체들


 
  스피노자는 이 세계 모든 정신적 현상과 물리적 현상은 신의 속성인 사유와 연장의 표현인 양태로 본다. 이 정신적 현상과 물리적 현상들은 우연적이고 가변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이것은 단독 실체인 신의 속성의 표현인 만큼 신의 본질과 필연적 연관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스피노자에 있어서는 정신적 현상과 물리적 현상은 신의 속성을 나타내는 양면이며, 신은 바로 자연이라는 범신론적 사상이 가능하게 된다. 신은 자연과 결코 분리할 수 없다. 그것은 자연이란 바로 신의 속성을 나타내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신은 능산적 자연(natura naturans)이고 물리적 세계는 소산적 자연(natura naturata)일 뿐이다. 결국 신은 원인으로서의 자연이고 자연은 결과로서의 신일 뿐인 것이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실체에 관한 견해로  ?신은 자연?이라는 범신론에 도달했다.
 
3. 스피노자와 홉스
  스피노자는 욕망을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삶의 힘을 생성하는 원천이라 생각하면서‘왜 인간은 예속을 욕망하는가?’에 대한 문제와 함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예속을 의미하는 수동적인 슬픈 정념을 넘어설 수 있는 능동적인 기쁜 정념으로 가득 찬 변용의 능력과 공통관념의 능력을 갖고 있는 ‘자유인’이라는 개념을 찾아내게 된다.
  ‘자유인’은 자기보존의 욕구가 충만한 신체로 무한하게 생성되는 긍정적 욕망을 가지고 있는 신체를 의미한다. 여기서 신체에 대한 의미는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스피노자의 생각으로 스스로 소통하고 연결될 수 있는 능동적인 역량을 갖고 있는 신체는 민주주의를 수행할 수 있는 신체이다. 이는 긍정적이고 생성하는 욕망의 해방을 위한 신체의 변용역량은 신체가 갖고 있는 소통과 민주주의의 능력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홉스의 견해로 수동적이고 야만적인 소유욕으로 인해 주권자라는 인공두뇌에 의해서 통제되어야 하는 무능력하면서도 탐욕스러운 신체이다. 자본주의는‘욕망하는 생산’을 도구로 자유인(스피노자)의 신체에서 욕망을 추출하여 기계적이고 자동적인 욕망으로 코드화시킴을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스피노자의 시각은 사회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복종이었다. 스피노자 시대는 부정적인 생각이 지배적인 시기였기 때문에 생성하는 욕망의 힘으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 증오와 죄의식이 없는 삶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으며, 이는 곧 인간에게 자유와 해방을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스피노자는 절대적인 민주주의 정치형태를, 홉스는 절대주의 국가 정치형태를 요구했음을 알 수 있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왕당파와 독재로 변모된 공화제라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 주권의 양도를 통한 절대주의 체제의 구축이 인민이 평화를 보장받을 수 있는 방도라고 주장한다. 스피노자와는 달리 국가 체제에 대한 자발적이고도 완전한 복속을 가장 바람직한 사회체제로 본 것이다.
 
4. 스피노자와 홉스의 conatus(자기보존 욕구)
  스피노자는 욕망은 긍정적이고 생성하는 자기보존의 욕구의 전개과정이라 봤고, 홉스는 ‘자기보존 욕구는 이기적이고 죽음에 이를 때까지 권력을 추구하는 욕망이다.’고 본다.  즉 홉스는 사물과 신체의 직접적인 공통성의 구성이란 불가능하며,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상태’속에 존재한다고 본 것이다. ‘이 전쟁 상태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만들어내며, 그러한 정념이 평화를 위한 자연법을 만든다.’여기서 자연법은‘평화의 원칙에 따를 것’과 ‘평화를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이 이성에 의해 구축된 자연법은 계약에 의해 자연인으로서가 아니라 인공인인 새로운 대리인을 형성한다. 이제 인공인artificial person이 행위의 주체이고 자연인은 여기에 예속된 주체이다.’그것은‘계약을 통해 양도된 권리가 집중되어 형성된 공동의 권력을 의미하며, 새로운 초월성을 갖게 된 근대의 국민국가를 의미한다. 홉스에 따르면 제국의 신민으로 규정되는 자유인은 예속과 권리포기를 통해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그리고 국가를 통해서만 공통성이 구성될 수 있다. 홉스의 이러한 사고는 ‘초월적이고 필연적이고 능동적인 신과 우연적이고 수동적인 사물’을 분리시켰던 영육이원론이 새롭게 만들어진 초월적인 유한-신인 국가를 통해 재-작동되며, 계승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여기서 파편화된 신체는 인공두뇌인 국가이성의 구성능력 하에서만 공통성을 획득할 수 있으며, 그것은 각 신체의 외부에 존재하는 능력이며, 신체에서 분리된 능력이다.

홉스의 합리성 :‘인간에게서 분리된 자연법의 영원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 국민국가라는 입법자의 권력이 자유인들에게서 위임받은 권력을 영원히 행사할 수 있다는 인식.

스피노자의 합리성 : 사물을 영원성의 확실한 상 아래에서 파악한다는 것은 이성에 속한다.’스피노자의 합리성은 다중(多衆)이 스스로 공통성을 구성해 나가는 영원한 과정에 대한 인식.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는 “자기 존재를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이 정신적으로는 의지voluntas이며, 정신과 신체 모두에게 관계하면 충동appetitus이다.
 
5. 스피노자의 욕망 : 자기보존으로서의 욕구는 ‘자기긍정’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능동적인 역능’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피노자는 이 욕구가 “주어진 어떤 정서에 따라 어떤 것을 행할 수 있도록 결정되는 한에서 인간의 본질”이라고 본다. 스피노자는 욕망을 외부와의 만남에서 새로운 것을 생성시킬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인간의 본질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욕망은 생성으로서 욕망이자 창조로서의 욕망이며, 인간이 욕망을 통해 ‘역능potentia’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피노자에게 인간의 신체에 내재된 자기원인으로서의 ‘신’적 본성은 다름 아닌 ‘자기보존으로서의 욕구’로 일컬어지는 욕망인 것이다.
 
6. 스피노자와 홉스의 신체관 
  스피노자는 심신평행론자로 신체의 능력과 정신의 능력 모두가 내재적인 역능의 능동적인 힘을 두 양상으로 분배받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신체는 다양한 양태로 변용능력을 갖고 있고 정신 또한 공통관념을 형성할 능력을 갖고 있다. 때문에 정신과 신체는 자신의 역량을 능동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이 신체에, 역으로 신체가 정신에 작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스피노자의‘신체’개념 - 인간의 신체는 각 부분이 매우 복잡한, 본성이 다른 매우 많은 개체로 조직되어 있다. 인간의 신체를 조직하는 개체 중에서 어떤 것은 유동적이고, 어떤 것은 연약하며, 마지막으로 어떤 것은 단단하다.
① 인간의 신체를 조직하는 개체 즉, 인간의 신체 자체는 외부의 물체에서 극히 다양한 방식으로 자극받는다.
② 인간의 신체는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대단히 많은 다른 물체를 필요로 하며, 이들 물체에 의하여 계속해서 재생된다.
③ 인간의 신체의 유동적 부분이 다른 연한 부분에 자주 부딪치게끔 외부의 물체에 의해 결정된다면, 유동적 부분은 연한 부분의 표면을 변화시키고 동시에 외부의 물체에 의해서 야기된 흔적을 연한 부분에 각인시킨다.
⑤ 인간의 신체는 외부의 물체를 많은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으며 또한 많은 방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
  스피노자에게 능동적인 운동의 힘은 내부에 있으며, 주체를 변용시켜낸다. 홉스가 ‘결정론’의 인과법칙을 강조했다면, 스피노자는 결정론을 거부하면서 자유인들의 자기-결정self-determination의 내재적 역능을 강조한다. 스피노자는 우발성을 일으키는 수동이 변용에 따라 능동-작용의 기쁨이 될 수도, 수동-작용의 슬픔이 될 수도 있으며, 이러한 변용역량의 자기-결정이 예속의 힘에 가로막히지 않는다면, 늘 자기-결정력을 갖고 있는 자유인의 승리로 귀결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홉스의 ‘신체’개념 - ‘운동 중의 신체’를 대상으로 삼는다. 운동이란 시-공간적인 점유의 형태이고 ‘시공간은 유한성의 공간’이므로 양으로 환원될 수 있다. 이 유한성의 공간에서 모든 신체가 그는 모든 시-공간들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허공vaccum이란 존재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운동의 원인은 늘 한 신체 외부의 다른 신체에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신체 외부에 대한 승인이 우발성에 대한 승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홉스의 우발성은 운동하는 다른 사물이 한 사물에게 만들어내는 인과적인 과정 즉, 단지 연장을 의미할 뿐이다.
  홉스에게 능동적인 힘은 권력power에 있다. 그 신체는 권력의 능동적active 힘에 반응reaction할 뿐이다. 홉스의 우발성은 늘 미리 결정되어 있는 ‘수동’에 대한 수동-작용의 공식으로 규정할 수 있다. 홉스는 “우발성이란 존재의 내-외부에는 있지만 신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이 “우발성이 그것의 주체를 변하게 만들지는 못한다.”라고 말한다.
- 참고자료 : 申承澈,「들뢰즈/가타리의 욕망론과 신체론에 대한 고찰」,
 http://blog.naver.com/redshand?redirect=log&logno=150012169739.
 
 
Ⅴ. 논제 찾아보기 

 스피노자는 『에티카(ethica)』에서 욕망이란 conatus(자기보존 욕구)라 했다. 욕망이 가지는 이기성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대화되며 자본주의 사회 매스미디어는 비합리적 방법으로 충동하고, 거짓의 욕망을 부추긴다. 또한 욕망을 욕망하도록 끊임없이 우리를 유도한다. conatus가 의미하는 욕망의 단계를 넘어 이기적 욕망의 시대는 모든 것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욕망의 이기성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쓰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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