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민족시인 고은이 지쳤다. ‘민족시인’이라는 말을 하도 많이 들으니까 이제는 지친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이름은 내려놔야지… 했다. 모 신문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망구(望九)의 고은 시에는 흔히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삶을 아우르는 우주적 상상력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는 한국을 ‘죽음이 너무 많은 나라’(시 「두메」에서)라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 낸 시집 제목도 『초혼』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그는 「자화상에 대하여」 시에서 ‘나는 8·15였다 / 나는 6·25였다 / 나는 4·19 가야산중이었다 / 나는 곧 5·16이었다 / 그 뒤 / 나는 5·18이었다 // 나는 6·15였다 / 그뒤 나는 무엇이었다 무엇이었다 무엇이 아니었다 // 이제 나는 도로 0이다 피투성이 0의 앞과 0의 뒤 사이 여기’(전문).
그렇다, 그는 8·15라는 강을 건넜고 6·25의 거친 산을 넘었고 4·19와 5·16이라는 폭풍우 속을 지나야 했다. 그러면서 목도한 많은 죽음(임진왜란 정유재란까지 그는 말한다)을 숙연하게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줄곧 그는 민족시인의 자리를 잃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지치고 그 이름을 내려놓는다는 것이다.
평론가처럼 현학적 말을 쓸 재주는 없다. ‘민족시인’에 대한 찬사든 헌사든 어떤 수식어도 그에게 바칠 능력도 없다. 다만, 나이 탓인가 하는 게 첫 느낌이었다. 지쳤다는 말이 그런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하면 ‘민족시인’이라는 옷이 이젠 힘에 겨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세상은 변했다. 그가 말한 ‘죽음이 너무 많은 나라’ 이 땅은 이제 더 이상 6·25, 4·19, 5·18에 머물러 있지 않다. 더구나 젊은이들은 기억도 못하는 물리적 시간의 격차를 갖고 있고 정서적으로 어른들처럼 뜨겁지도 않다. 그러기에 시인의 더욱 옹골차지는 시적 자아도, 과거를 보는 측은지심의 눈도 현재와 미래를 담보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젊은 독자에게 더 이상 ‘민족’의 비분강개를 토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고은은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다. (단골이라는 표현이 좀 가볍기는 하다). 인류 보편 정신에 충실하다는 것이기에 후보까지 오를 수 있다. 고은에 대해 외국에선 ‘민족시인’이라는 말은 않는다.(본인의 말이다). 모든 것이 세계화를 외치는 마당에 문학도 ‘민족’에만 머물러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 45세 한강이 이를 실증했다.
고은이 ‘민족시인’ 옷을 벗다니, 우리는 뭔가 하나를 잃은 것 같다. 그러나 뭔가 하나를 얻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