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혼밥족'의 에리히 프롬
[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혼밥족'의 에리히 프롬
  • 독서신문
  • 승인 2016.09.2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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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문예』 가을호 송명화의 「사랑학 개론」을 읽고
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정녕 인간은 행동을 약속할 수 있지만, 감정은 약속할 수 없나보다. 니체의 이 언술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며칠 전 있었다.

친구가 하소연을 해왔다. 친구 딸이 실연의 아픔으로 상심에 젖어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고 있단다. 딸과 헤어진 젊은이는 사업가란다. 그 청년이 딸의 이상형은 아니었지만 성격이 솔직하고 성실하여 결혼까지 계획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인연이 될 수 없었다. 그 청년이 그동안 여자 둘을 놓고, 이를테면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던 것이다.

결혼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는 듯하다. 그야말로 두 사람이 예식장 안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사랑의 유효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말이 실감난다. 용광로 속 같이 뜨거웠던 사랑도 그만큼 끝까지 지키기가 힘들다는 의미다. 허나 아무리 각박한 세상이라고 하지만 사랑만큼은 진실이 담겨있어야 한다.
 
흔히 결혼의 요건으로서 직업, 재산 유무, 외모도 아닌 사랑의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긴 배우자는 인생행로를 함께 할 운명체여서 그럴 것이다. 삶의 긴 행로를 통과하는 사이 무슨 일이 어떻게 닥칠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이 난관을 해쳐나가려면 서로 뜻이 맞아야 된다고 주문한다. 그 뜻이 바로 사랑이다.
 
그러나 우리는 평소 ‘사랑 한다’는 말을 너무 헤프게 쓴다. 사랑의 참의미를 모르고 하는 말 같다. 사랑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재확인한다면 이 말을 아낄까.
 
송명화 수필가는 《에세이 문예》가을호에 수필 「사랑학 개론」을 투고했다. 그는 길거리에 걸린 포스터 속에도, 텔레비전 화면 속에도, 공원 벤치에도, 성당 성모상 앞에도 사랑은 존재한다고 했다. 사랑이 지닌 양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사랑의 모습은 같다고 했다. 사랑이 꼭 희열과 기쁨만이 전부는 아니다. 사랑이 익어 부부라는 이름으로 일심동체가 되지만 각자가 살아온 조건이 다르기에 한마음 한 몸을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완전한 결합체라고 할 수는 없다.

오죽하면 송명화는 자신의 글에서 ‘부부일심동체’라는 말에서 눈물의 냄새가 느껴진다고 했을까. 참으로 냉철한 인식이다.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란 논리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죽고 못 살아’ 결혼을 했다고 하지만, 막상 결혼 그 자체는 장밋빛 환상과 거리가 멀다는 소리다. 아직도 가부장적이고 유교사상이 잔존하는 우리사회엔 결혼의 굴레가 너무나 무겁다. 이 수필 내용처럼 결혼으로 말미암아 한 집안의 장손, 아들, 며느리, 어머니로서 책무와 역할에 따른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1+1=1이다. 이 계산은 수사학이 아니다. 부부는 분명 1+1=1이어야 한다. 그러나 일심동체가 되었다고 해서 둘이 하나이듯 행복이 보장될 수 있을까? 작가 송명화는 이에 찬동하지 않는다. 한편 사랑에 대해 다소 비관적인 면이 없지도 않다. 소리를 질러대며 여자를 윽박지르는 남편, 남자의 약점을 콕콕 찔러대는 부인, 신분상승의 기회로 남자를 잡으려는 여자, 여자를 이용하여 자신의 목표를 달성해 보려는 비겁한 사랑은 그저 저속한 숨바꼭질 일뿐이라고 송명화는 말한다.
 
이처럼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란 말인가. 그렇다하여 꼭 결혼이 두 사람의 사랑을 희석시킨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랑과 결혼 등식이 부조리하다는 사실에 대하여 부정할 논리는 빈약하다는 뜻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혼놀족’, ‘혼밥족’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어 결혼을 기피하는 방패로 삼고 있다. 독신 가구 수가 무려 520만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홀로 사는 이들을 위해 생필품은 물론 먹거리마저 가볍고 아주 작게 포장한 것이 인기란다.

인간이 견디기 힘든 게 고독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요즘 젊은이들은 고독과 외로움을 오히려 즐기며 산다고 하니, 젊은이들의 고령화 시대에는 생판 별천지 세상이 되리라 여겨진다. 젊은이들이 결혼도 싫고, 아이도 필요치 않다면 언젠가는 대한민국이 지도상에서 없어질 수도 있다는 기우마저 든다. 어쨌거나 이 책 내용에도 밝혔듯 에리히 프롬의 주창처럼 인간이 지니는 관계 욕구는 이성이고 사랑이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하지만 독신으로 사는 것보다는 1+1이 3도 되고, 4도 되는 게 바람직한 삶이다.

이 가을엔 선남선녀들이 사랑에 눈이 멀어 예식장마다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지고, 그들이 탄 자동차가 꽃과 풍선을 매달고 거리를 아름답게 수놓는 모습을 자주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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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생각 2016-09-27 07:54:58
사랑에 대한 개인의 인식은 다르겠지만 김 작가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어린이들의 고운 웃음이 울려 퍼지는 삶. 사회. 나라가 희망이 있지요. 사랑으로 1+1=3이 되고 4가 되는 젊은이들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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