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어리석은 희극
[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어리석은 희극
  • 독서신문
  • 승인 2016.08.3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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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다 카즈히코 지음 『섹슈얼리티 성 문화사』를 읽고

▲ 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한 때는 아침 드라마를 시청하기가 주저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불륜 일색이어서 막장드라마라는 명칭까지 붙었다. 요즘은 드라마 주제가 다소 달라졌다. 대신 스스로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남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이야기가 많아졌다. 주인공이 벌이는 복수극의 모습에서 악에 대한 경각심마저 흐려질 때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는 인생사에 일어남직한 일들을 배우의 연기를 통하여 관객이나 시청자들에게 실감 있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내심 관객이나 시청자는 영화나 드라마 내용에 공감 하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이른바 카타르시스를 공유하게 되는 셈이다. 나쁜 현상은 아니다.

인간사에 있어서 불륜행각은 배우자와의 성적 갈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주변에 숙박 목적이 아닌 러브 모텔을 두고 산다. 좋은 현상이 못된다. 지방 어느 도시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도시 입구에 난립한 모텔의 현란한 간판 불빛이 미관상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모 잡지사 설문에 대한 반감이 머리에 남아 있어서 그랬나보다.

성인 남성 절반 이상이 외도를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다. 1천 90명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성생활 관련 설문조사를 해본 결과 50.8%가 ‘외도 경험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여성의 경우는 9.3%가 이에 해당된단다. 특히 40대에 이르러서 외도가 최고조에 달한다고 했다. 이는 갱년기에 이른 남성들이 심리적 공허감과 신체적 위축감에 어딘가에 있을 신기루 같은 다른 여성을 찾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배우자 외에 신기루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 이것은 인간 탐욕에 기인된 헛된 망상일 뿐이다. 인간 욕심은 바다 속과 같다고 했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으니 이를 바다에 비유한 것이리라. 쾌락은 추구할수록 갈증을 느끼는 속성이 있다고 한다.

킨제이 보고서에 따르면 19세기에 살았던 월터란 사나이는 약 2천 명 정도의 여자들과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자고로 예술인은 여성편력의 대명사이다. 문호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문장가 빅토르 위고는 하루에 4시간만 잠자고 나머지 시간 글을 쓰고 성적 유희를 즐기는데 보냈다고 한다. 20세에 결혼한 그는 첫날밤에 신부와 9번 사랑을 나눴단다. 또 83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죽기 전 4개월 동안 젊은 여자와 수시로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후쿠다 카즈히코 지음『섹슈얼리티 성 문화사』를 읽어보면 인류 역사, 문화, 사회 발전 과정에서 성만큼 쾌락과 파멸의 길을 오가게 하고 고뇌하게 한 문제는 없다고 일렀다. 사람이 사정하는 시간은 10초 정도라고 한다. 돼지의 10분에 비하면 극히 찰나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찰나적 시간 쾌락을 얻자고 일생을 망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섹스란 정녕 신비의 세계인가보다.

동성애, 수음, 집단 혼음, 마조히즘, 사디즘 등 그야말로 변태성 취미도 고대 벽화나 신화(神話)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차라리 이걸 저주하고 기피할 것이 아니라 숙명처럼 곁에 두고 살아야 할 것 같다. 하여 “성기는 아직도 원시적이다” 라고 정의한 프로이드의 주장은 명언이다.

분명 성은 인간을 열락의 세계로 인도하기도 하고, 파멸의 길로 빠져 들게 하기도 한다. 이 책 중「음탕의 광기, 네로의 생애」를 살펴보면 성정이 포악하고 음탕한 로마의 네 번째 황제 네로는 자신의 처와 어머니를 살해하고, 절세 미녀 폽페아를 왕비로 맞이한다.

그러나 네로는 임신 중인 그녀 복부를 걷어차서 그녀를 절명케 한다. 그가 얼마나 음탕의 밑바닥으로 떨어졌는지는 로마의 대역사가 타키투스(55~115)가 저술한『연대기』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아그립피나 지천이라는 연못에서 향연을 펼친 네로는 연못에 뗏목을 띄워 그 위에 주안상을 차리게 하고 수척의 배로 끌게 하였다고 한다. 뗏목은 황금과 상아로 장식되었고, 여러 나라에서 주문한 새와 짐승들을 모았다. 연못 제방 한곳엔 창가(娼家)를 세우고 이도 모자라 여자들의 나체를 볼 수 있게 하는 등 외설적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고 하였다.

이를 보다 못한 군대가 변태적 황제인 네로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결국 네로는 산 채로 무덤에 갇혀 공포에 떨면서 검으로 자신의 목을 찔러 목숨을 끊었다.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

네로가 자신의 행동을 이성으로 통제 할 수 있었더라면 뒷날 성군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은 인간이 지녀야 할 덕목으로 지혜, 용기, 절제, 정의를 들었다고 하니, 절제야 말로 동양의 수분지족(守分知足)과 맥이 닿아 있는 듯하다. 끊임없는 인간의 욕망을 이성이라는 말뚝에 잡아매어 둘 수만 있다면 불륜천국의 오명도 러브호텔도 우리 곁에서 사라질 터이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 행위가 무한 저주받을 일도 아니다. 오늘날 인류 생존 뿐 만이 아니라, 현 고령화시대에 단연 절실한 것도 청춘남녀의 건전한 사랑이 아니던가. 요즘 같은 저출산시대에 아기의 탄생만큼 기쁜 일도 없는 듯하다.

성은 사랑의 감미로운 꽃이라고 말한다. 인간 본능을 절제하는 일은 ‘양심막어과욕(養心莫於寡慾)’이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폐단과 불행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진정한 신기루는 존재의 불변한 질서에서 찾는 일이지 허황된 착각에서 찾을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탐욕의 어리석은 희극에 불과하다.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진정한 신기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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