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파산한 전과자인 막노동꾼 작가, 그의 글엔 ‘숙연한 고통’이 있다
[서평] 파산한 전과자인 막노동꾼 작가, 그의 글엔 ‘숙연한 고통’이 있다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6.06.06 10: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신문 엄정권 기자] 작가 이은대. 2월 마지막 날 그를 인터뷰했다. 대구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와 기자와 찻집에 마주 앉았었다. 막노동꾼 하루 품삯을 인터뷰 때문에 날리게 돼 미안했다. 그러나 이은대는 이런 게(결근하는 게) 막노동꾼(노가다)의 자유이며 특권이라고 짐짓 웃었다.

그가 쓴 『내가 글쓰는 이유』를 읽었기에 그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지금 어떻게 사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 지옥에서 살아 왔다고 해야 할까, 막장에서 탈출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울음의 터널에서 막 벗어났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안 돼 보였다’는 게 기자 첫 느낌이었다.

그런 그가 새로 책을 냈다고 전화했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여전히 진중한 저음이었지만 경쾌했다. 반가움에 다소 전화가 길어졌다. 단순한 안부만 느낀 것이 아닌 그의 삶이 조금씩 계단을 오르는 소리를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은대 작가의 새 책 『최고다 내 인생』은 이은대가 입버릇처럼 말한 글쓰기를 통한 인생 최고의 경지를 맛보고 있음을 만천하에 고하는 글이다. 그리고 나같이 산 사람도 글 쓰고 행복함을 느끼는데 왜 낙담하고 슬퍼하는가를 묻고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말로는 절대 설명 부족인 이은대다. 그에겐 고생이 현재진행형이다.

책 앞부분 막노동꾼과 양파 관계 부분을 읽고 좀 웃었다 (죄송). 양파 수확시기엔 일거리가 많아 막노동꾼은 기대가 크다. 그러나 양파 풍년으로 양파값이 폭락해 농민들이 밭을 갈아엎어 일거리가 없어졌다. 이건 약과다. 고생 이야기가 책 곳곳에 깔려 있다. 산꼭대기에서 철탑 세우는 데 아래서 쇠파이프 올려주는 작업으로 반 죽었다 살아난 이야기, 불에 타 죽은 돼지 백 몇십 마리를 치워 묻는 일(돼지 사체를 들어올리자 다리만 쑥 빠져 올라왔다. 사체 썩는 악취와 오물 속에서 속살이 벌겋게 드러났다, 상상이 되는가).

그는 철탑에서 일을 하면서, 아래쪽 삶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은 위쪽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 길이 없다. 아래쪽 삶을 바라보지 않았던 탓에 더 깊은 아래쪽으로 오고야 말았다고 말한다. 그는 다짐한다. 다시 위쪽으로 올라가게 된다면 그 때는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곳의 삶을 잊지 않으리라고.

그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공채로 입사해 적지 않은 연봉으로 아내와 자식을 두고 행복하게 산다. 그러나 돈 욕심이 일어 사업을 하다 6개월 만에 엄청난 빚만 지고 접는다. 이리저리 돌려막기를 했지만 바닥을 알 수 없는 빚더미였다. 10억까지 갚고는 두 손 들었다. 집은 경매에 넘어가고 법정에 서게 된다. 그리고 ‘세상 뒤편’(저자 표현)으로 보내진다. 그리고 얼마 뒤 세상의 빛을 보면서 막노동꾼으로 ‘거듭난다’. 막노동은 그에게 밥을 주고, 글쓰는 영혼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어 준다. 글쓰기는 영혼의 안식처가 되고 참행복의 인도자가 된다.

그의 말을 다시 옮긴다. ‘모든 성공한 이들이 그렇듯 나 또한 작가가 되겠다는 신념에 의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출판계약이 이루어지기도 전부터, 아니 초고가 완성되기도 훨씬 전부터 누군가를 만나면 나의 직업은 작가라고 말하고 다녔으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동기부여와 글쓰기에 관한 강의를 하는 내 모습을 눈에 보이듯 떠올리고 지냈다. 어떤 때에는 혼자서 길을 걷다가 사람들에게 강연하듯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바라는 바가 모두 이루어진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 그렇게 하면 머릿속의 신념에 품격과 교양까지 더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목표에 다가서고 있다는 현실감이 증가한다. 처음에는 너무나 신비로운 경험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습관이 되어 버렸다.’ (93쪽)

그는 성공에 이르기 위해서는 머릿속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행동력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자가 아버지에게 어린 시절 들었던 수수께끼를 소개한다. “통나무 위에 개구리 다섯 마리가 앉아 있었어. 그 중 네 마리가 뛰어 내리기로 마음먹었어. 그럼 남은 개구리는 모두 몇 마리일까?” “한 마리” 저자의 답에 아버지는 빙긋이 웃으며 “아니, 다섯 마리야. 왜냐고? 마음먹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지”

막노동은 뼈를 짓누르고 근육을 녹인다. 이은대도 집에 오면 벽을 짚지 않고는 신발을 벗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글쓰기 자체가 가져다주는 마음의 평온은 무엇보다 따뜻했지만, 육체노동을 마치고 늦은 밤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달콤한 잠과 휴식을 내려놓은 채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글을 쓰고 있다. 그가 세상을 향해 또 말한다. 뭘 하나 가지려면, 먼저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이은대는 직장인들에게 ‘감히’ 말한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그리고 충분한 준비를 갖추고 기회가 오면 한 번 더 심사숙고하고 결단을 내리라고. 마치 직장에 다니는 게 잘못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매스컴에 소개되곤 한다. 저자는 뼈저리게 후회한다. 회사 때려치우고 뭐해라 뭐해라 강요하는 사람들 말에 절대로 현혹되지 말라고 당부한다. 여차하면 내 꼴 난다.

■ 최고다 내인생
이은대 지음 │ 더로드 펴냄 │ 328쪽 │ 15,000원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