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한강의 기적’ 엔지니어, 새로운 비전은 있는가
[서평] '한강의 기적’ 엔지니어, 새로운 비전은 있는가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6.05.13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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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엄정권 기자] 새삼 정약용의 선견지명을 본다. 실용과학을 강조한 다산은 백성의 나약함과 조정의 무능을 꾸짖는다. “우리는 왜 이렇게 게으르단 말인가. 과거에는 중국에서 수백가지 기술과 기예를 들여와 배웠지만, 수백 년이 지난 지금은 그것을 더 배울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다. 중국은 기계를 만드는 새로운 방법과 정교한 제작 기술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여기에 대해 논의하지도 않고 해묵은 낡은 방법을 그저 편하게만 여기고 있다” 정약용은 성리학에 더욱 새롭게 접근하고 궁극적으로 기술적인 작업을 통해 물질적 진보를 이루고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꿈꾸었던 것이다. 시대를 아주 앞선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조선말부터 최근 현대에 이르기까지 굴국은 다소 있지만 정약용의 ‘나약함과 무능’에 대한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기술적인 작업과 물질적인 진보’도 상당히 이루었다.

이 책 『엔지니어들의 한국사』는 근현대사에서 한국 엔지니어들의 변천사를 조명하면서 그들이 이룩한 한국사를 살피고 있다. 저자 한경희는 한국에서 엔지니어의 등장과 변화는 근대 산업 국가로써 한국의 탄생 과정, 그리고 엔지니어로써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분투해 온 개인적 조직적 과정들을 함께 연결할 때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알게 뙜다고 말한다.

한경희 얘기를 더 들어보자. 엔지니어는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열정과 부지런함, 그리고 발전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국가 전체로 확장된 이러한 지배적 상(이미지)은 이제 새로운 도전에 흔들리고 있다. 한강의 기적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가는 야심찬 기획에 우리(엔지니너든 아니든)가 참여할 수 있을까.

2002년 국가 전반적으로 과학기술계에서 ‘위기’에 대한 논쟁과 논란이 크게 일었다. 인문학계에서는 ‘위기’가 예견된 상황이라 했지만 엔지니어와 과학계는 돌발적 위협이라 여겼다. 그런데 엔지니어들 선후배는 위기라는 데는 동의했지만 원인 분석과 해법은 달랐다.

원로 엔지니어들은 1960~80년대 한국의 괄목할 산업적 팽창을 이룬 것에는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의 헌신과 열정이 있었다고 말하며 특히 강조한 게 ‘헝그리 정신’이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대표도 “엔지니어는 한국 근대화에 필수적 존재였다. 그때 우리는 학교에서 지금 학생들이 배우는 양의 10분의1 정도밖에 안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헝그리 정신과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지금 60대 70대인 이들은 산업화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 엔지니어 없이 이 결과가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한양대학교 권오경 부총장 역시 과학자와 기술자의 공헌을 기리며 이 용어를 활용한다. “20년 전만 해도 우리는 ‘헝그리 정신’을 갖고 있었다. 목표가 주어지면 어떻게든 해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아니 반전됐다. 두산인프라코어 이현순 부회장은 “30, 40대 엔지니어들은 헝그리 정신과 도전정신을 잃었다. 요즘 엔지니어들은 의지력이 약해졌다.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한다. 수학 물리학 능력이 예전만 못하다.”

또 2004년 한 실험실 연구원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가끔 헝그리 정신으로 밤낮없이 연구에 매진하는 모습을 최상의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생각이다. 어떻게 허드렛일 하는 일용직만큼의 봉급으로 십여년간 고생한 사람들의 피땀을 날로 먹으려 하는지” 2011년 한 엔지니어는 이런 얘기도 한다. “우리가 더 이상 굶주리지 않는데 어째서 우리에게 헝그리 정신을 기대하는가? 당신들의 방식이 성공을 거두었다 해도 그것이 성공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더 적합한 대안을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책의 중심 논지의 하나는 어쨌든 한국 엔지니어는 박정희 정부가 산업발전을 통해 국가적 진보를 이루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무게 중심은 박정희 시대에 있다.

책 내용을 보자. 쿠데타 이후 박정희는 경제기획원을 설립해 경제 개발과 계획을 위한 중앙기구로 삼는다. 1년 만에 한국 기술 인력 현황을 포괄적으로 조사한다. 단지 직업 분류가 아닌 사람들이 하는 일에 대해 특정 기능과 지위를 부여하고 그게 어떻게 국가에 속하고 기여하는 것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일이다. 이 조사는 기술직이 정당한 직업인으로 인식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기능공 기술공 기술자라는 세 수준으로 범주화했다.

그런데 박정희는 1963년 법을 통해 기술자 명칭을 기술사로 바꾼다. 사(士)라는 명칭을 통해 역량있는 엔지니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1967년 과학기술처를 만들며 기술자에 과학이라는 글자가 덧붙여졌다. 이제 엔지니어는 과학기술자로서 창의적 활동을 수행하고 이끄는 기술지식인이 됐다.

박정희 정부는 1973년 중화학공업육성, 특히 철강 중장비 화학공장 건설 등 추진을 선언했다. 앞서 박 정권은 현대그룹이 조선소 건설을 맡도록 했다. 정부는 금융지원 등을 아끼지 않으며 재벌을 도왔고 재벌은 설비를 들여오고 공장을 바로 가동하는 등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저자는 말한다. 미국 정부가 방위산업의 확장과 우주 탐사를 추진하며 공산주의와 경쟁을 벌이는 동안, 박정희 정부 또한 방법은 달랐지만 공산주의와 경쟁하고 있었다. 한국의 연간 수출 성장률을 40%까지 높이면서 말이다.

1993년 삼성그룹 비서실은 임원교육을 위해 ‘신세대의 가치관 변화와 인사정책 방향’이라는 지침서를 제작한다. 이 지침서에 따르면 신세대는 국가는 타인을 위해 희생하기를 기피하고 직접 연관이 없는 정치 사회 이슈에는 거의 무관심하다.

앞서 1980년대 동안 민주화 진전과 함께 산업발전의 리더십이 정부에서 대기업으로 이전됐다. 박정희 프로그램들도 유물로 잊혀지고 공학과 기술 인력을 양성하려는 정부 업무는 힘을 잃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엔지니어나 관련 조직은 희망을 찾기 어렵다. 기술고시 공무원은 아직 극소수이고 대기업 안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박정희 시대의 엔지니어들은 다 퇴직했거나 퇴직 연령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누가 이들을 대체할 수 있단 말인가. 헝그리 정신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인가.

■ 엔지니어들의 한국사
한경희 , 게리 리 다우니 지음 | 김아림 옮김 | 휴머니스트 | 289쪽 |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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