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맛의 사계를 요리하다
[리뷰] 맛의 사계를 요리하다
  • 이정윤 기자
  • 승인 2016.03.2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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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이정윤 기자] 일본 문단 최고의 미식가로 알려진 단 가즈오. 그는 『이 집의 성격』 『장한가』 『불난 집 사람』 『미식 방랑기』 등 꾸준하게 소설과 시를 발표하며 나오키상, 요미우리 문학상을 받은 문학가지만, 그와 동시에 ‘가끔씩 소설도 쓴 요리 선생’이라 불린다. 그만큼 단 가즈오의 인생에는 항상 요리가 함께했고, 그 또한 세계 곳곳을 두루 다니며 맛보고 체험한 요리를 손수 만들어 지인에게 대접하는 것을 좋아했다.

요리 에세이 『백미진수 : 맛의 사계를 요리하다』에는 단 가즈오의 요리 사랑이 가득 담겨있다. 읽고 있으면 슬슬 배가 고파지는 책이 진짜 요리책이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 책이 그렇다. 가즈오는 봄 향기 가득한 산나물과 무럭무럭 연기 오르는 양고기를 글맛으로 활짝 펼쳐 보인다. “진짜 백미진수는 식탁의 흥취를 돋우는 그의 문장인지도 모른다”라는 말이 그의 표현력을 대변하고 있다.

가즈오는 비교적 일찍 요리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열 살도 되기 전에 어머니가 집을 나가 버리는 바람에 ‘자기가 먹을 음식은 자기 스스로 만드는 요리 인생’을 시작해야 했고, 그렇게 세 여동생을 포함한 가족의 식사를 담당하게 됐다. 물론 아내가 생기고 자유로이 외식할 수 있는 돈이 생겼을 때도 그는 여전히 누군가를 위해 부엌에 섰다. ‘누군가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싶다’는 욕망이 그 무엇보다도 강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식 방랑을 떠난다. 오키나와, 후쿠오카, 야마구치, 돗토리, 교토 등 일본 구석구석은 물론이고 유럽, 미국, 중국, 러시아, 호주, 뉴질랜드까지 작은 등산용 도마와 식칼, 휘발유 풍로만을 들고 여행한 것. 여행지에서도 요리는 멈추지 않았다. “먹고 마시고 만드는 즐거움을 모르면 여행은 생각 외로 따분한 법”이라며 그 나라의 음식을 복원해보고 그곳의 식재료를 활용해 자신만의 요리를 시도했다.

▲ 단 가즈오(1912~1976)

아들 단 다로가 쓴 후기에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아버지는 한 곳에 안주할 땅을 찾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했다. 그는 전쟁 전이나 전쟁 후나 한결같이 중국, 만주, 러시아, 유럽, 아메리카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저마다의 토지에 동화하듯 그 토지의 기후와 풍토가 낳은 음식을 아무런 주저 없이 입에 넣었다. 그리고 요리가 끝나면 여행지에서 알게 된 요리를 자기 식으로 음미해서 재현했다. 이것이 세계를 두루 돌아다닌 ‘단(檀)식’ 요리다.”

이처럼 가즈오는 전 세계의 음식을 접하고, 자신이 재현한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대접하며 일생을 살았다. 다자이 오사무, 사카구치 안고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문인 중에 가즈오의 음식을 먹어보지 않은 이는 찾기 힘들었고 때로는 그와 함께 미식 방랑을 떠나기도 했다.

그가 알려주는 ‘값싸고 맛난 안주 만들기’ 팁을 들으며 우리도 그의 음식을 맛보자. “닭 날개를 위스키 안주로 만드는 방법 또한 아주 쉽다. 우선, 닭 날개에 소금과 후추로 밑간하고 냄비에 넣는다. 마늘을 한두 쪽 다져 넣고 파나 당근 꼬리도 넣는다. 이제 포도주를 조금, 버터를 조금, 물을 닭 날개의 반 정도 붓는다. (중략) 입에서 살살 녹는 술안주가 되리라고 보장한다.” 어떠한가. 손쉽게 만드는 호화스러운 술안주의 맛이 느껴지는가.

■ 백미진수
단 가즈오 지음 | 심정명 옮김 | 한빛비즈 펴냄 | 252쪽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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