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현 교수의 영미문학 산책
남정현 교수의 영미문학 산책
  • 노익희 기자
  • 승인 2016.01.16 2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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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암 카를로스 윌리암스의 To a Poor Old Woman

[이뉴스투데이 울산취재본부 노익희 기자]

최근 이른 새벽 화재 진압을 끝내고 검은 재와 땀이 온몸에 범벅이 된 채, 라면 먹는 소방관의 한 장의 사진은 화제이다. 어디선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고 있는 우리 시대의 작은 영웅의 모습을 비추어 주면서 잔잔한 울림이 되고 있다. 그 사진 속 소방관은 반쯤 머리를 숙이고 라면에 온통 집중하며 폭풍 흡입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불현듯 윌리암 카를로스 윌리암스(William Carlos Williams)의 시가 생각이 났다. 윌리암스는 시인이면서 동시에 소아과 의사였다. 인간을 구체적 과학적 관찰의 대상으로 바라봤던 의사로서의 경험은 그의 여러 시 속에 많이 나타난다. 그래서 그가 주로 시 속에서 담고자 했던 주제나 대상물은 신화적이거나 상상력이 넘치는 방식이 아닌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중심으로 면밀한 관찰을 통하여 사변적 설명 없이 일상어로 편안하게 표현하는 작품들을 썼다.

 

   
▲ 숭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남정현 겸임교수

화재 진압 후 라면 먹는 소방관 사진에서 연상된 그의 시는 “가난한 늙은 여인에게 (To a Poor Old Woman)”이다. 시를 한참 읽어 내려가면서 독자들은 이 시 속의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를 거의 찾을 수 가 없다. 단지 그녀(she)라는 시어 속에서 한 여인이 등장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대신 시 제목을 통해 시 속의 주인공은 나이든 가난한 여성임을 인지한다. 시인 윌리암스는 객관적인 관찰자로서 의연하게 떨어져 한 늙은 여인을 바라본다. 자두를 먹는 모습을 “우적우적 먹으면서 (munching)” 라는 다소 생기 넘치면서 거친 시어로 우리의 일상사를 생생하게 드러내었다.

munching a plum on 거리에서 자두를
the street a paper bag 우적우적 먹으면서
of them in her hand 종이 봉지를 손에 들고

They taste good to her 자두는 그녀에게 맛있다
They taste good 자두는 맛있다
to her. They taste 그녀에게. 자두는
good to her 그녀에게 맛있다

You can see it by 그녀가 반쯤 자신의 몸이
the way she gives herself 손에 든 자두에
to the one half 빨려 들어간
sucked out in her hand 모습을 그대는 본다.

Comforted 대기에 가득 채워진 듯한
a solace of ripe plums 잘 익은 자두의 위로로
seeming to fill the air 위안을 받으며
They taste good to her 자두는 그녀에게 맛있다.

자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과일이다. 달콤한 맛과 신맛이 어우러진 맛과 향을 상상만 해도 침이 입 안 가득 고이는 그런 매력을 지닌 과일이다. 그래서 이 시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본능 중에 하나인 맛의 즐거움을 노래한다.

하지만 늙은 여인이 느껴내는 즐거움은 미각과 후각과 촉각 등과 같은 단순한 감각적 즐거움이 아니다. 그녀의 인생은 오랜 세월의 굴곡으로 파란 만장한 사연으로 점철되어 있을 것이다. 그녀의 지난 과거 이야기를 듣노라면 하루 밤으로는 부족할 것 같은 그런 굴곡진 파노라마 같은 인생이 드러나리라. 인생의 수많은 희로애락을 겪은 이에게 자두는 즐거움 그 이상이다. 시인은 이러한 상황을 자두 먹는 늙은 여인이 아니라, 자두한테 맛에 온통 빠져 오히려 자두에게 반쯤 삼켜져 있는 존재로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입 안에 음식이 한 입 들어오면, 그 음식에 온 몸이 녹아내리는 느낌을 주면서, 현실의 어려움은 거뜬히 잊게 해주는 천상의 음식 즉, 위안과 위로의 음식으로 말이다.

허기지고 지친 몸을 이끌고 먹는 컵라면에 온통 하루의 피곤함이 눈 녹듯이 사그라지는 경험을 한 이는 알리라. 라면 국물이 내 목구멍을 지나는 순간, 온 존재가 라면 국물에 송두리째 녹아내리면서 형언할 수 없는 안식을 갖는 그런 경험, 그래서 화재 진압 후 “우적우적 먹으면서 (munching)” 얼큰한 국물 라면에서 치열했던 하루의 노고에 위로를 받는 소방관의 경험을 함께 느낄 것이다.

남정현 숭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겸임교수
티처메카 전공영어 담당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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