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또 다른 바다가 있음을 안다
바다는 또 다른 바다가 있음을 안다
  • 독서신문
  • 승인 2015.12.2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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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향기'

▲ 황태영 희여골 대표
[독서신문] 평소 눈인사만 하고 지내던 지인이 있었다. 어느 날 식사와 반주를 할 기회가 있어 많은 대화를 나누다가 깜짝 놀랐다. 그분은 지난 20년간 저울 4천여 점을 수집했고 강릉에 국내 단 하나뿐인 저울박물관을 개관했다고 했다.

저울의 숫자도 놀라웠지만 그 진귀함이 더욱 놀라웠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만든 루이14세 때 만들어진 저울, 영국 최초로 만들어졌던 양팔저울, 이탈리아 크리스탈 저울, 나폴레옹 3세 때 궁에서 사용한 저울, 동인도회사를 부흥시켰던 우편저울 등은 역사적으로도 가치 있는 저울로 평가받고 있다. 신석기 시대 돌추를 비롯해 유럽 귀족들이 보유했던 금추, 은추, 황동추, 상아저울, 금저울, 은화, 금화 등 평소 들어보기도 어려웠던 진귀한 것들이 많았다. 평범해 보이는 분들과도 대화를 하다보면 놀라운 한 시대를 만나게 된다.

책도 그렇다. 저자의 사고의 깊이나 다양한 경험을 접하다 보면 자신이 얼마나 작은 세계에 머물러 있었는지 깨닫게 된다. 사람이나 책을 만난다는 것은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세상에는 내가 살던 마을 못지않게 아름답고 특색 있는 마을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간혹 재력, 권력을 가지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우쭐해하는 경우를 본다. 경험이 적어 우물만 보았지 바다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은 물줄기만 보던 우물은 늘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다는 또 다른 바다가 있음을 알고 스스로를 낮춘다. 장관이나 사장을 할 사람은 많아도 저울박물관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찾기가 어렵다.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긴 넘버원보다는 창의적인 꿈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온리원을 만나는 것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 그 만남에는 빛나는 설렘이 있다. 우쭐해하는 친구와 양주를 먹기보다 꿈을 만들어 가는 친구와 포장마차에서 먹는 소주가 더 감치고 향이 깊다. 여름만 얘기하는 매미는 되지 말아야 한다.

후한서(後漢書) 주부전(朱浮傳)에 보면 요동지시(遙東之豕)란 말이 있다. '요동의 돼지'라는 뜻으로 견문이 좁고 오만한 탓에 자기를 대단하게 생각하여 자랑하지만 남이 보기에는 하찮은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후한 광무제 때 어양태수 팽총은 광무제 유수가 반군을 토벌하기 위해 하북에 포진하고 있을 때에 3,000여 보병을 이끌고 달려와 가세했다. 또 광무제가 옛 조나라의 도읍 한단을 포위 공격했을 때에는 군량 보급의 중책을 맡아 차질 없이 완수하는 등 여러 번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좌명지신의 한 사람이 되었지만 자신의 대단한 업적을 제대로 예우해 주지 않는다고 불만이 많았다. 마침내 팽총이 역모를 꾀하려 하자 이를 눈치 챈 대장군 주부가 그의 잘못을 조정에 보고했다. 이에 분노한 팽총이 주부를 공격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키자 주부는 팽총에게 편지를 보내 이렇게 꾸짖었다.

"그대는 자신의 공이 하늘만큼 높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옛날에 요동 사람의 돼지가 머리가 흰 새끼를 낳았다. 그는 이를 진귀하게 여겨 왕에게 바치기 위해 하동까지 갔는데 그곳의 돼지는 모두 머리가 흰색이었다. 그는 자신의 좁은 견문과 세상의 너름을 깨닫고 부끄러운 나머지 얼른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 조정에서 그대의 공을 논한다면 저 요동의 돼지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주부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팽총은 스스로 연왕(燕王)이라 일컬으며 조정에 반란을 꾀하였다가 2년 만에 토벌당하고 말았다. 대국을 통치하는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을 논하자면 각 분야별로 수천, 수만 명은 될 것이다. 자신이 볼 적에는 대단하고 큰 공적 같았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평범할 따름이었던 것이다.

가끔 누구나 요동의 돼지가 되어 본다. 또 요동의 돼지들을 많이 만나 보기도 한다. 그러나 깊은 물은 메아리가 없고 메아리가 있는 물은 깊지가 않다. 매는 조는 듯 날개를 접고 있지만 짹짹대는 참새보다 무서운 법이고 호랑이는 병든듯 느릿느릿 걷지만 사납게 짖어대는 개보다 무서운 법이다.

죽기 직전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돈을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음을 절감했고 진시황과 엘리자베스1세는 권력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세상은 넓고 세속적 잣대를 넘어서는 숨은 고수들은 많다. 늘 배움의 자세를 가지고 경험을 쌓아 가야 한다. 우물을 떠나 바다를 만날 때 비로소 삶은 발효된 깊은 맛을 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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