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마를 때까지 기다리도록 해라”
“침이 마를 때까지 기다리도록 해라”
  • 독서신문
  • 승인 2015.12.09 10: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풀향기'

▲ 황태영 희여골 대표
[독서신문] 한자를 파자해 보면 묘미가 있고 숨겨진 깊이가 놀랍다. 왕이 신분을 감추고 점을 보았다. 왕(王)자가 점괘로 나오자 점쟁이는 "왕(王)은 곧 땅(土) 위에 오직 한 사람(一)만이 있는 형국이니 임금이 될 운세“라고 했다. 다음에는 거지가 같은 글자를 짚자 점쟁이가 말했다. "길(土) 위에 한 일(一)자로 길게 엎드려 평생 구걸할 팔자”라고 했다. 이성계도 위화도에서 이와 비슷한 점을 본 적이 있었다. 이성계가 뽑은 점괘는 물을 문(問)자였다. 그러자 점쟁이는 갑자기 큰 절을 하면서 “왼쪽도 임금 군(君)자고 오른쪽도 임금 군(君)자니 장차 왕중의 왕이 되실 것”이라고 경의를 표했다. 이성계는 기분은 좋았지만 점쟁이를 믿을 수가 없어서 거지를 귀인으로 변장시켜 문(問)자를 뽑도록 했다. 그러자 점쟁이는 “문(門) 앞에서 입(口)을 벌리고 있으니 평생 빌어먹을 운명”이라고 했다.

‘쉴 휴(休)'는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어 쉰다는 것을 뜻하고, ‘이름 명(名)‘은 저녁(夕)에는 어두워서 서로 알아 볼 수 없으므로 입(口)으로 내가 누구인가를 알려주는 이름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 복(福)’은 보일 시(示), 한 일(一), 입 구(口), 밭 전(田)으로 되어 있다. 밭으로 여러 입이 아니라 한입만 채워도 되니 흐뭇하고 배부르다. 그 밭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복 받은 일이다. 밭을 소유하라는 것이 아니라 바라만 보라는 시(示)자의 의미가 새삼 깊게 다가온다. 성인 성(聖)은 귀(耳)와 입(口)을 잘 다스리는 왕(王)이 성인이라는 뜻이다.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을 잘해야 한다. 특히 귀(耳)를 입(口) 앞에 두어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강조한 번뜩이는 지혜가 경이롭다.

파자의 오묘함은 ‘참을 인(忍)’자에서 깊이 깨우칠 수 있다. ‘참을 인(忍)’자는 칼날 인(刃)과 마음심(心)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슴에 칼을 얹고 있다는 뜻이다. 가만히 누워 있는데 시퍼런 칼이 내 가슴 위에 놓여있다. 칼이 가슴에 바짝 겨누어져 있으니 참을 수밖에 없다. 누가 건드린다고 해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화나고 힘들어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 참을 인(忍)자에는 또 다른 가르침이 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때로 미움, 증오, 분노, 탐욕들이 죽순처럼 솟아오른다. 이런 것이 싹틀 때마다 마음속에 담겨있는 칼로 잘라 버리라는 것이다.

중국의 유일무이한 여황제인 측천무후가 가장 신뢰한 인물이 명재상 적인걸이었다. 천리마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걸출했고 강직했던 그를 추천한 것은 누사덕이었다. 이를 모르던 적인걸은 늘 누사덕을 업신여기고 경멸했다. 웬만하면 “내가 당신을 추천했는데 이럴 수 있느냐”며 생색을 낼 법도 했지만 누사덕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침내 측천무후가 적인걸에게 물었다. "누사덕이 유능하다고 보시오?" "성품이 온후하고 관대하지만 유능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측천무후가 다시 물었다. "누사덕이 사람은 잘 본다고 생각하시오?" 적인걸은 매정하게 답했다. "저는 지금껏 그가 인재를 잘 알아본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비로소 측천무후가 말했다. "내가 그대를 중용한 건 계속되는 누사덕의 추천 때문이었소. 그는 사람을 잘 알아보는 것 같소." 적인걸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 후부터 그는 누사덕을 본받아 명재상이 되었다. 능멸을 받으면서도 업적을 자랑하지 않고 담담히 감내해 내었기에 누사덕의 격이 더욱 높아 보인다. 누사덕은 타면자건(唾面自乾)이란 말을 남겼다.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면 그것이 저절로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이다. 누사덕의 동생이 대주자사로 임명되어 부임하게 되자 그가 동생을 불러 말했다. “내가 재주가 없는 데도 재상자리에 있는데 너까지 장관이 되었다. 우리 형제가 분이 넘친다고 사람들이 미워할 터인데 너는 어떻게 몸을 보전할 생각이냐?" 동생이 답했다. "누가 제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화내지 않고 잠자코 닦겠습니다. 이런 각오로 사람들을 대할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누사덕이 훈계했다. "내가 염려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어떤 사람이 침을 뱉는다면 그것은 크게 화가 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침을 닦아버린다면 상대는 더 크게 화를 내게 될 것이다. 침은 닦지 않아도 마르게 되는 것이니 그런 때는 그냥 웃으면서 가만히 있도록 해라."

층간 소음이나 자동차의 끼어들기에서 보듯 모두 작은 순간의 분노가 큰 화를 불러 온다. 보복을 자랑 말고 참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참는 자는 바보로 보이지만 실은 참는 자에게 복이 온다. 하루를 참으면 백일이 편하고(忍一日則便百日), 인삼자면살인(忍三字免殺人), 세 번 참으면 살인도 면한다. 죽은 물고기는 짠물에 절면 짠맛만 내지만 살아있는 물고기는 짠물을 먹고 단맛을 낸다. 참을 줄 아는 사람만이 숙성된 최고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 자신을 다스릴 줄 알기 때문이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