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소리를 들으려면 먼저 나무가 되어야 한다
나무의 소리를 들으려면 먼저 나무가 되어야 한다
  • 독서신문
  • 승인 2015.10.2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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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향기'
▲ 황태영 희여골 대표

[독서신문] 얼마 전 미술 관련 출판업을 하는 고향의 선배님과 식사를 하게 되었다. 선배님께서 식사를 하시다가는 물을 흘리시더니 넋두리를 하셨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즈음은 뭘 먹으면 자꾸 흘리게 된다. 와인을 마시다가 잔을 깨는 경우도 있고 조심을 하는데도 자꾸만 실수를 하게 된다.” 그러면서 젊은 시절 얘기를 이어갔다.

“십 수 년 전만해도 모임에 나갔을 때 연세 드신 분들이 ‘어이, 자네’하고 부르시면 몹시 기분이 나빴다. 이름이 있고 인격이 있는데 나이 좀 드셨다고 너무한 것 아닌가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나이가 들어보니 자주 보던 후배도 순간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순간 나 또한 ‘어이, 자네’라고 부르게 된다.

그래서 요즈음은 선배님들이 ‘어이,’ 자네‘라고 부르면 기분나빠하지 않고 얼른 달려가 ’예, 선배님. 저 박 아무개입니다.‘라고 이름을 알려준다. 그러면 선배님께서 ’어이, 자네‘하지 않고 박 대표라고 부르신다.” 흔히들 자신의 판단만으로 상대방을 오해하고 몹쓸 사람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모든 행위에는 사연이 있다. 서운하거나 기분 나쁜 일이 있다면 비난하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려 해야 한다.

풍문이나 사소한 다툼으로 원수처럼 지내는 경우도 있다. 마음으로 교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으로 말하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 다는 아니다. 마음 깊이 위하는 마음만 있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가 않다.

고향친구들을 만나면 입으로는 욕만 하고 있지만 연신 웃음이 그치질 않는다. 곧 싸움이 날 것 같지만 마음속으로는 서로를 위하는 끈끈한 정이 넘친다. 이간이나 비난의 소리가 들려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이해하려 한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면 흔들림이 없다 진정한 교류는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미국에 사업을 크게 해서 성공한 남편을 둔 여류 문학가가 있었다. 여인은 성격이 괴팍했고 늘 집에서 글만 썼다. 말벗은 외아들뿐이었고 아들은 그녀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 귀한 아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여행을 갔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녀는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고 더욱 고립되어져 갔다. 좋다는 약은 다 써보고 병원에도 다녀보고 여행도 다녀 보았지만 우울증과 슬픔은 깊어만 갔다. 더 이상 글쓰기조차도 할 수가 없어졌다.

그런데 자기 아들과 같이 여행하다가 죽은 친구의 어머니를 만난 후 기적처럼 그녀의 병이 고쳐졌다. 누군가 궁금해서 그녀에게 물었다. “그분이 어떻게 격려를 했기에 당신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까?” 그녀가 답했다. “그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저를 보더니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저도 같이 울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껴안고 크게 울었을 뿐입니다.” 나무의 소리를 들으려면 먼저 나무가 되어야 하고 아이의 소리를 들으려면 먼저 아이가 되어야 한다. 마음이 통하면 보고 듣고 말하지 않아도 울림이 있고 치유가 있다.

한때 어려움을 겪었던 친구가 모친상을 당했던 친구에게 문병 갔던 얘기를 했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려운 시절이라 문상은 갔지만 사실 부조를 하지 못했다. 참 미안했다.” 친구가 답했다. “마음써주고 와준 것만 해도 고맙고 반가웠다.”

지금 그 친구는 어려움에서 벗어났고 주위 친구들에게 많이 베풀며 살고 있다. 마음을 주고받는 친구는 서운함이 있어도 그 친구가 그리 한 것은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라고 이해해 준다. 부조도 안한 친구라고 떠들고 다니지도 않는다. 진정한 사귐은 서운함도 변명도 오해도 험담도 없다. 말하지 않아도 부조를 못해 미안해 한다는 것을 안다. 또 부조를 못해도 탓하지 않고 내가 빨리 성공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안다. 마음이 통하기에 서로 이해하고 기다려 준다.

이청득심(以聽得心), 마음을 얻으려면 입을 닫고 귀를 열어야 한다. 진정한 친구는 상대의 얘기를 듣고 그의 입장을 이해하려 한다. 시시콜콜 따지지도 않고 공치사도 섭섭함도 없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도록 애쓸 뿐이다. 그래서 진정한 친구는 꽃과 같다. 바라만 보아도 기쁨을 준다. 나무와 같다. 곁에 있기만 해도 든든하고 고맙다. 웃음 하나로 모든 시비를 끝낼 수 있는 친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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