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사회와 인간성 실현-인문학의 새로운 지평
디지털사회와 인간성 실현-인문학의 새로운 지평
  • 독서신문
  • 승인 2015.09.1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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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의> 사람과 생명, 그리고 사회-인간 삶의 철학으로서 인문학
최근 대학의 상아탑 안에 머물던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강의하는 기관이 늘어나고 있다. 본지는 이 같은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지속시키고 인문학 열풍을 더욱 확산시키고자 유명 석학들의 강연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 편집자 註

 

 

[독서신문] I. 왜 디지털사회에서도 인문학적 사유인가

-인간의 삶과 사유

디지털사회에서도 사람은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생각하지 않고는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삶에서도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지 않으면 바르게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그때마다 이성적으로 혹은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옳게 생각해야 한다. 옳게 생각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회 그리고 세계의 근원을 조망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누구이고 너는 누구이며,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가를 물음으로써 나와 너의 사회적 관계와 우리 모두의 세계적 연관성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은 과학적 보편타당성의 판단 그 이상을 요구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의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이미 시민사회가 과학기술의 산업사회로 넘어오면서, 특히 후기자본주의 사회를 거치면서 가정은 이미 해체됐고 춘부장이나 자당이라는 말도 사라져 갔다.

덩달아 포스트모던 시대가 큰 역사를 작은 이야깃거리로 바꿔 놓았고, 드디어 디지털사회가 우리의 현실적 삶을 가상의 세상으로 바꿔 놓았다. 정보의 양이 너무 많아 우리의 지식이 날로 축적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우리 스스로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나날이 사라져만 가고 있다.

너무나 많은 사회적 정보가 우리 스스로의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 더욱 위험한 것은 사회 전체나 세계 전체를 디지털사회의 새로운 극단적 실증주의의 경향성으로 치닫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지식정보의 사회가 ‘안다’는 것만을 앞세우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소홀히 여기는 데서 온다.

II. 디지털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생각 없는 사회

-전통사회와 산업사회, 그리고 디지털사회

우리는 주체적 인간으로서의 자기 기반을 상실하게 되고 우리 자신의 전통을 잃게 됨으로써 고향 없는 나그네와 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고향 잃은 사람들이 이제 과학기술의 첨단사회인 정보사회를 맞이해 새로운 형태의 지식기반사회로 급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이것은 마치 오늘날의 우리가 과거와 미래의 지평을 포기한 채 자기 없는 현재에만 집착해 만끽하면서 우리 자신을 상실해도 좋다는 것이고, 더욱이 모든 감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상상력마저 저버려도 좋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정보사회에서는 인문학적 논리성은 물론이고 회의도, 비판도, 아예 사유 자체도 용납하지 않는다. 생각도 없고 머리도 없으나 오직 손가락 끝만 밤낮으로 살아있다. 이런 사회에서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언제 어디서나 비현실적인 사람으로 취급되고 만다.

물론 정보사회의 강점은 디지털미디어로 정보를 분석하고 종합해 가공처리를 순식간에 해냄으로써 고도의 정보를 동시에 생산 전파할 수 있고, 문자나 음성 또한 영상정보까지도 종합 처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산업사회에서까지도 그 핵심적인 역할을 하던 인문학적 사유나 철학적 개념들이 속수무책으로 전락하더라도 정보는 언제 어디서나 주고받을 수 있고 재구성이 가능하며, 또한 그 품질마저 보장받을 수 있는 디지털미디어가 현대사회는 물론 현대의 모든 문화현상까지도 이제 ‘자판기’ 하나로 승부수를 가리게 됐다.

그러나 오늘날 디지털기술로 인해 정보가 비약적으로 가공할 만한 위력을 발휘함으로써 인간생활의 모든 영역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IT의 한 방향으로만 치닫고 있다. 산업사회의 문화가 지역성과 통시성을 아날로그화해 표현만 했다면, 정보사회의 문화는 동일선상에서 세계성과 공시성을 초고속 초정밀로 디지털화해 전 세계를 한꺼번에 사이버공간으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와중에 가치의 척도, 즉 진리의 척도도 달라지게 된다.

 

-디지털사회에서의 문화비판

디지털사회에서는 인간 상호 간의 의사소통양상도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인간의 주체의식마저 가상공간 속에서 해체되고 만다. 이런 가상공간에서 이뤄지는 오늘날의 디지털사회를 우리가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정보사회를 하나의 실체로 보느냐 혹은 하나의 허구로 보느냐, 또한 그런 사회를 존재론적 관점에서 보느냐 혹은 생성론적 관점에서 보느냐, 나아가 인간학적 해석학적 관점에서 중심은 무엇이고 주변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들은 대단히 중요하다.

오늘날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텔레마틱 사회를 철저하게 구성하고 나섬으로써 문자시대 자체가 또한 위기를 맞이했다. 현재의 이 정보사회가 이제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실체라고 해도, 혹은 정보사회가 철학에서의 존재론과 같은 튼튼한 틀을 마련했다고 해도, 나아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체제로 통용될 것이라 해도 그런 존재론적 체제와 연관된 보이지 않는, 혹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부분의 직간접적인 해석에 대한 우리 의식의 각성은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숫자를 문자로 해독해내는 일이나 문자를 새로운 의미, 새로운 의식으로 해석해내는 일은 오늘날의 디지털사회에서도 철학 내지 인문학이 해야 할 고유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수백 년 동안 불변의 명제로서 주역을 담당한 시간 공간이라는 철학적 범주들도 이 디지털사회에서는 세계통신, 원격회의, 전자문서교환, 전자상거래 등으로 판을 바꿔 정보고속도로를 마련했다. 문화적으로도 지역사회의 전통문화 내지 지역문화 대신에 세계문화가 등장해 단숨에 전자정보사회의 감성적 인간생활양식을 새로운 디지털문화로 확 바꿔버리고 만다.

이런 정보사회에서 우리는 진정한 나 자신을 유지할 수가 없다. 자기 자신의 존엄성도 망각하고 기술적 익명성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마저도 인식하지 못한다. 끝내는 자기 자신마저도 상실하고 만다. 오늘날 디지털사회가 정보기술만을 전면에다 내세움으로써 철학의 운신 폭도 점점 사라지게 됐고, 마침내 철학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가 도래하게 됐다.

이럴수록 인간존재의 혼란은 더욱 커지게 되나,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가상의 공간 확대로 인해 인간 자신의 정체성과 자기반성의 영역이 사라지고 있음을 우리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완벽한 가상공간의 시스템 속에서라도 철학이 비판적 자기성찰과 자기반성을 통해 금단의 것까지를 사유할 수 있을 때 인간의 삶 전체를 위한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된다.

문학은 인간의 상상력과 미적 정서를 가다듬어야 하고, 역사는 우리의 아픈 흔적을 역사의식으로 승화시켜야 하며, 철학은 인간의 심연을 드러내 주는 무(無)를 응시해야 한다. 그리고 문화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그 이면에서 발굴하고 채굴하는 인문학적 자기성찰을 통해 정보사회의 한계를 극복도록 해야 한다.

이런 디지털사회가 우리의 삶과 함께 인문학으로서 철학적 내용을 수용할 때 문화비판에서는 사람이 어떤 사회현상이나 문화현상에서 위기의식을 가지게 되는가를 되묻게 된다. 이런 위기의식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고, 따라서 새로운 시작도 할 수 있다.

/ 정리= 한지은 기자

*본고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인문강좌’(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서초구민회관)에서 백승균 계명대 목요철학원장이 ‘사람과 생명, 그리고 사회-인간 삶의 철학으로서 인문학’을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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