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말하다
얼굴이 말하다
  • 독서신문
  • 승인 2015.09.1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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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택의 『얼굴이 말하다』를 읽고

[독서신문] 요즘의 일과는 틈 날 때마다 운동이다. 헬스장에서 산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용품을 챙겨 밖을 나가면 어느 땐 뿌연 안개가 앞을 가린다. 안개 속에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과 마주치곤 한다. 아파트 경비원들과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미명 속에서 대면한다. 그러면 어느 쪽에서 먼저랄 것 없이 먼저 보는 쪽이 인사를 건넨다. 나는 허리를 최대한 숙여서 인사를 한다.

이들의 일과를 처음 확인한 것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말복 무렵이다. 아파트의 새벽은 경비원이 열어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날 이후 경비원 아저씨들에 대한 마음이 달라졌다. 그날도 새벽 운동을 위해 집을 나섰다. 동이 트기 전 마당을 비질하고 있는 연세가 지긋한 경비원과 처음 마주쳤다. 나를 알아보고 그가 먼저 인사를 하는 터였다. 얼결에 답례를 하고보니, 그의 얼굴에는 구슬땀이 흐르고, 상의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는 운동 때 먹기 위해서 챙겨온 얼음물을 권했다. 사양하더니 마지못해 받아서 단숨에 한 병을 들이킨다. 보기에 안쓰러웠다. 그런 경비원의 모습에서 문득 박영택이 지은 『얼굴이 말하다』에 담긴 판화가 떠올랐다.「밥 한 그릇의 희망」이란 글 속 오윤의 작품인 '국밥과 희망'(17×15㎝)이라는 1984년 작품의 판화를 말한다.

오윤은 소박한 칼 하나로 가난한 서민들의 애환과 고통을 공유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하고 있는 그런 예술을 창작했다. 박영택은 이런 오윤의 작품을 두고 “그는 칼 하나로 이미지를 일으켜 세웠다.” 라고 칭송했다. 박영택의 말처럼 이 판화에서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앞에 놓고 손깍지를 낀 남자의 부릅뜬 눈은 그 국밥 한 그릇을 지키려는 의지가 역력히 돋보인다.

 “아저씨! 이른 새벽부터 청소를 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이렇게 불쑥 인사말을 건넸었다.
 그런데 의외의 답변을 접할 수 있었다.
 “밥 먹고 사는 일이 어디 그리 수월한가요? 이렇게 새벽부터 일을 해도 전 행복합니다. 일할 곳이 있다는 게 제 나이에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몰라요. 안 그러면 가족들 밥 굶길 뻔했는데 이런 일쯤이야 감지덕지 해야지요. 저는 어제 저녁 밤새워 아파트 경비를 돌았습니다. 이따가 다른 경비들이 오면 집으로 퇴근합니다. 밤새 잠을 제대로 못자도 제겐 일이 있다는 게 참으로 즐겁습니다.”
 

▲ 김혜식 수필가
경비원 아저씨의 말을 듣고 보니 날마다 무심코 먹어 온 밥 한 그릇 먹는 일이 실은 삶의 전쟁터에서 얻은 수확물이 아닐까 싶었다. 그날 헬스장에서 돌아와 아침 밥상을 대하자 왠지 경건한 마음이 일었다.

남편 역시 이 밥을 우리 가족에게 먹이기 위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만난 경비원과 처지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다. 사업이란 때론 바람 앞에 등불 같기에 늘 노심초사 하지 않는가. 그러고 보니 인간이 산다는 게 결국은 이 책에서 말했듯 그 어떤 화려한 수식어가 필요 없을 성 싶다. 결국은 따뜻한 밥 한 그릇 목에 넘기기 위해 오늘도 우린 인생 무대의 배우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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