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필수요건
남성의 필수요건
  • 독서신문
  • 승인 2015.08.2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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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수 수필집 『개똥 모자에 핀 구름꽃』을 읽고
▲ 김혜식 수필가

[독서신문] 서울의 어느 지역 아파트 단지 내에 집안 수준이 비슷한 환경의 주민끼리 의견을 나누자는 공지문이 붙었다. 이른바 ‘맘 매칭’(mom matching: 엄마끼리 대리 맞선 모임) 모임 알림 문이었다. 젊은 세대의 만혼(晩婚)·비혼(非婚)에 대한 부모들의 자구책인 것이다.

부모들은 맞선을 주선했다가 퇴짜를 맞기도 한다. ‘좀 더 혼자 지내고 싶다’ , ‘직장 일에 바쁘다’ 이것이 그들의 이유다. ‘부모 세대가 자녀 결혼에 개입하고 나선 풍조는 젊은 세대의 결혼 포기 자가 느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중매 전문 업체의 주장도 있다.

나는 과년한 세 딸을 두고 있다. 지금부터 딸 앞에서 벙어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사윗감 고를 일이 캄캄하다. 요즘 젊은이들이 우리 세대와 달라 결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급변해서야 우리 기성세대가 살 수 있겠느냐는 자탄이다. 막말로 애가 탄다.

얼마 전 나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를 만났는데 그 역시 나의 경우와 사정이 같았다. 그러나 그 친구의 큰 딸은 결혼을 포기한(?) 상태는 아니라고 했다. 이웃의 주선으로 선을 몇 번 보였다고 했다. 상대는 건실하고 직장도 남부럽지 않은 신랑감이 건만 마음에 차지 않는다며 퇴짜를 놨다고 한다. 이유인즉 첫인상이 너무 이기적이거나 성격이 무뚝뚝하여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게 핑계라고 했다. 또 한 사람의 경우는 인상은 좋았지만 언행이 경박하여 깊이가 없어 보인다고 하더란다.

예로부터 결혼 상대자를 고를 때 회자 되어온 말이 있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없다.’ 참으로 적절한 표현임을 몸소 느끼고 있는 터다.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사람 만나기가 쉽겠는가. 불완전한 게 인간이거늘 더구나 결혼할 상대를 물색하는 일임에 서랴. 그래서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란 말이 생겼나보다.

딸아이들의 속마음은 결혼 상대자로 외모보다 아무래도 성격을 중시하는 것 같다. 말 없고 무뚝뚝한 남성이 우리 세대엔 인기였다. 언행이 가볍지 않아 믿음직스러운 남성의 표상이었다. 그런데 요즘의 경우는 정 반대다. 재미가 없어 무미건조하다는 결론이다. 결혼 생활이 무슨 코미디인가. 연속극처럼 재미와 흥미로 인생이 영위 되는 게 아닐 터인즉 결혼관을 바꾸어 보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매사 재치 있고 유머가 풍부한 남성이 여성들에게 인기라니 격세지감마저 든다. 아마도 젊은이들의 정신건강을 해치는 스트레스가 원인인 것 같다.

인생의 삶이 풍요로울 수 있는 만큼 그 여정 또한 험난한 법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유머도 풍부하고, 인물도 준수하고, 법도 있는 집안에서 제대로 자라 정신건강이 올바른 청년이라면 사윗감으로 일등이라 여긴다. 두 딸의 어머니인 그 친구를 만나면 이야기가 길다. 이심전심 통하는 데가 있나보다. 재언하거니와 여기에 더하여 사고가 건전하고, 따뜻한 가슴을 지닌 인간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젊은이라면 선 안보고 딸을 맡길 각오가 되어 있다.

『개똥 모자에 핀 구름꽃』이란 박영수의 수필집에 「웃자고 하는 말」이란 작품이 있다. 제목처럼 퍽 재미있는 글이다. ‘사람이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산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이렇게 시작되는 수필이다. 글머리에 매료되어 단숨에 읽었다.

아기가 태어나서 하루에 백번이상 웃는데, 이렇게 타고난 천품의 웃음이 자라면서 점점 줄어드는 것은 각박한 세상만 탓할게 아니라고 했다. 웃음은 현대 의학을 젖힐 만큼 신통한 묘약이라서 알프스 산기슭의 한 건강센터에서는 환자들에게 약을 먹이는 대신 웃음 요법을 쓴다고 하였다. 또한 웃음은 암세포까지 파괴시키는 놀라운 힘까지 지녔다는 작가 박영수의 주장에 새삼 웃음의 중요성을 생각해 본다.

박영수 작가는 평소 주변으로부터 ‘싱거운 사람’이란 소리를 자주 듣는다. 이는 그가 타고난 천성이 아니라, 중년 이후에 고혈압을 얻었는데 그 압을 이겨내기 위하여 생긴 후천성이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슬픔을 안은 부친상을 당한 상가에 문상을 갔다가 상주에게 건넨 한마디로 말미암아 백년지기처럼 가까워졌다는 내용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근엄한 표정으로 조문객을 맞고 있는 굴건제복의 상주가 안쓰러워 ‘얼마나 망극하십니까?’ 라는 의례적인 인사 대신 귀엣말로 “세종대왕 같은데!” 했더니 상주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었는데, 그날의 일이 결례가 아닌 슬픔에 젖은 상주에게 큰 위안을 되었다는 내용이 퍽이나 해학적이어서 호감이 갔다.

요즘의 젊은이들이 왜 유머가 넘치는 남성을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낭만과는 거리가 먼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고 대화에 소통이 안 된다면 어찌 백년가약을 맺을 수 있겠는가.

남편 자랑하는 사람 팔불출 이라는데 의도적인 선택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경상도 사나이련만 매사 다정다감하고 유머가 넘치는 내 남편이 오늘따라 무척 멋있어 보인다.

/ 수필가, 청주 드림작은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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