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곤 실레(Egon Schiele)
1. 에곤 실레(Egon Schiele)
  • 독서신문
  • 승인 2015.07.2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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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자화상과 정체성

Ⅰ. 개념 생각해보기

▲ 에곤 실레 (Egon Schiele, 1890~ 1918)
Egon Schiele(1890~ 1918)

에곤 실레 (Egon Schiele, 1890~ 1918)는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이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친구이자 그의 법률 대리인이었던 실레는 클림트의 표현주의적인 선들을 더욱 발전시켜 공포와 불안에 떠는 인간육체를 묘사하였다. 특히 자신이 지니고 있는 성 욕망을 주제로 작품화 하였으며 이로 인해 20세기 초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1906년 열여섯 살에 빈 미술 아카데미에 들어가지만, 그곳 교육이 그리 쓸모가 없고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습관적인 교육이라고 생각하여 그만두었다. 이후 몇몇 친구들과 ‘새로운 예술가 그룹’을 결성한다. 
‘새로운 예술가 그룹’ 결성 후  모델이자 동거녀었던 발레리 ‘발리’ 노이칠과 자유분방한 생활과 미성년자들을 모델로 그린 그림들 때문에 크루마우에서 추방당하게 되었다. 노이렝바흐에서는 더욱 이해받지 못했다. 1912년 실레는 그곳에서 어린 모델들을 데려다가 부도덕적인 그림을 그렸다는 죄목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빈 공간을 배경으로 툭툭 튀어나온 뼈와 앙상하게 마른 몸, 고통스런 모습으로 표현된 자화상은 고뇌하는 미술가 신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것은 그의 작품의 한 모습일 뿐이다. 
실레의 도시 풍경화 구성은 역동적이며 북적이는 사람들로 표현된 도시의 긴장감이 감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실레가 그린 장인의 초상에서 알 수 있듯 그가 그린 초상화들은 감정이입과 표현이 훌륭하며 가장 뛰어난 초상화 작품이라 평가된다.
1915년 실레는 발리와 동거 생활을 청산하고 에디트 하름스와 결혼했다. 1918년 에디트는 임신한 상태였다. 실레는 빈 분리파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해 사망한 클림트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실레는 아버지가 된다는 기대감으로 <가족>(1918)을 완성했다. 새롭게 발견한 희망을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실레와 아내, 아이는 모두 나체로 묘사되어 있으며 특히 인물들의 행복한 표정이 눈에 띈다. 10월, 실레의 아내 스페인 독감에 의해 사망하고 만다. 아내와 뱃속의 아기를 잃고 슬퍼하던 실레도 스페인 독감으로 3일 뒤 세상을 떠났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Ⅱ. 개념과 생각확대하기

라캉의 소외

라캉은 주체는 상징계에서 기표에 의해 분열되어 있으며 주체가 상징계에 나타날 때 자신의 존재를 상실하고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때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리며 무의식이 발생한다. 라캉은 이와 관련된 주체와 대타자 관계를 두 단계로 설명한다. 
첫 단계는 사라지는 것을 뜻하는 아파니시스(aphanisis, 그리스어)이다. 아파니시스는 사라져 없어짐, 욕망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주체가 상징계인 대타자 속에 태어나면서 기표에 딸려 붙어 종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기표가 대타자 영역에 나타나면서 주체는 태어난다. 그러나 태어남에 의해 -생겨나는 주체가 아니라면 이전에 없었던- 주체는 기표로 굳어진다. …주체는 본래 없는 것이었지만 나타나자마자 기표로 굳어져 나타나 보임이다.”(]acques Lacan, The Four Fundamental Concepts of Psychoanalysis, trans. Alan Sheridan, New York: Norton 1978, 199쪽)고 했다.

▲ 에곤 실레, '이중 자화상', 구아슈, 수채, 연필, 35×49.4cm, 개인소장, 1915.

주체가 ‘기표에 의한 효과’로 인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는 기표가 대타자 영역에 나타나기 이전에는 주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주체는 온전히 기표에 의지하는 존재이며 기표에 의해 비로소 생겨나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주체는 없는 것이었지만 나타나자마자 기표로 굳어져 나타나 보임”이란 “주체는 그가 되어버리는 기표 밑에서 사라지기 전에는 조건과 제약이 따르지 않는 절대적인 없음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타자의 장소에서 생겨난 기표는 표현하지 못하는 존재로부터 주체를 나타나게 하지만 이는 주체를 묶어놓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존재하여 말하고 표현하게 될 것은 사라지고 단지 기표가 되어버린 것이다. 
기표의 사슬인 대타자와 만남을 통해 없는 것으로부터 기표에 의하여 분열된 주체가 태어나는 것을 라캉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도표에서 SS'의 그래프는 의미사슬의 대타자를 나타내고 $△의 그래프는 주체가 생겨나는 과정을 나타낸다. 즉 $는 대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기표에 의해 분열된 주체이며 △는 주체가 상징계의 대타자와 만나기 전 임시로 인정된 존재이다. 
기표의 사슬인 언어세계의 상징계에서 태어나 기표를 받고 기표를 말하게 되면서 인간은 주체로 태어나지만 또한 기표에 의해 다른 것으로 바뀌게 되고 사라져 없어진다. 
라캉은 이러한 주체의 사라져 없어짐 또는 분명하지 못하고 어렴풋해짐을 죽을 지경에 이를 수 있는 “치명적”인 것으로 설명한다. 

▲ 욕망에 대한 도식
인간은 언어세계로 들어가 주체로 태어나지만 동시에 기표가 주체를 대신하게 되면 주체는 사라져 없어지고 만다. 
라캉은 “글자가 살해한다”거나 “기표가 …죽음의 대리인을 몸으로 또는 몸에서 나타나게 한다”는 것을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다.  대타자 속에 존재하는 주체는 사라져 없어졌지만 자신이 사라져 없어진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라캉은 주체가 말을 하기 위해서는 사라져 없어짐과 따돌림 당해 멀어진 소외(alienation)라 부르고 이를 두 원(주체의 영역과 대타자의 영역)이 교차하는 도해로 설명한다. 주체와 대타자가 맺는 관계의 첫 번째 단계인 주체의 사라져 없어짐은 주체가 기표로 나타나면서 반드시 겪는 소외이고 이런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을 라캉은 영어로 or의 의미를 지닌 라틴어 벨(vel)이라 이름 짓는다.

▲ 벨(vel)에 대한 도식
주체 쪽에는 존재 being이 있고 대타자 쪽에는 의미 meaning -언어, 제도, 문화, 그리고 개인이 태어나는 세계를 규정하는 그 밖의 모든 것- 이 있다. 
주체의 원과 대타자의 원이 겹치는 부분은 비의미 non-meaning의 영역이다. 그런데 주체는 비어있는 교집합 부분에 있어야하며 달리 다른 영역을 선택할 수 없다. 주체는 확실한 의미를 가질 수 없고 주체가 자신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주체는 언제나 자신이 속한 문화 속에서 이해되고 이해되는 것에 의해 의미를 추측하여야 한다. 라캉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소외의 ‘벨vel’은 하나의 선택에 의해 규정됩니다. 그리고 이런 선택의 속성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근거 합니다. 
합집합 속에는 어떤 선택을 하든 결과적으로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것이지만 깊은 의미성을 지닌 어떤 것이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 경우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반드시 한쪽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에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한쪽이라도 건질 생각이 있는지와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라캉은 이 선택을 강도가 나타나 ‘돈 아니면 목숨’을 요구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 것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돈을 선택하면 목숨을 잃고 기 때문이다. 목숨을 선택하면 돈을 잃고 만다. 주체에게 자기 자신은 누구인지를 규정하기 위해 라캉은 ‘과거 시제’가 아니라 ‘前미래 시제’인 future anterior를 강조한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가 아니라 ‘나는 내 스스로 선택한 것을 통해 현재의 내가 존재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과거에 의해 현재가 결정된다고 하지만 과거를 버리고 현재를 대응하는 방법으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선택’이 주체의 방어에 의해 강제된 선택을 할 수 있고 이 선택이 사라져 없어지지만 텅 빈 공간을 연어 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할 것이다. 강제된 선택으로 상징계에 진입하게 되면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먼저 존재했던 무엇, 곧 존재하지 않은 과거가 생산된다. 강제된 선택 행위를 통해 우리는 결코 가진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상실하게 되어 있는 어떤 것을 빼앗기는 것이다.

Ⅲ. 개념과 생각찾아보기

‘자아를 끊임없이 변하는 비영구적인 과정으로 본다는 것은 죽음이 그것의 일부임을 인식한다는 의미’이다. ‘내가 유한한 존재이며, 나의 속성이 거침없이 종말을 향해 달리는 무엇이라는 개념을 배제하고는 나라는 존재를 이해할 수 없’으며 ‘온전하고 충실한 삶이란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모든 순간을 기회로, 아주 귀중한 어떤 것으로,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는 삶이다’.(줄리언 바지니, 강혜정 옮김, 『에고 트릭』, 미래인, 2012) 
이에 대한 의미를 에곤 실레의 자화상에서 찾아보고 라캉의 vel 도표를 해석하여 non-meaning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쓰시오.

 

▲ 황인술 / 논설위원인문학당 아르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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