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자연 이상으로 보는 철학-탈중심성의 생물학적 사유(1)
사람을 자연 이상으로 보는 철학-탈중심성의 생물학적 사유(1)
  • 독서신문
  • 승인 2015.07.1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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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의> 사람과 생명, 그리고 사회-인간 삶의 철학으로서 인문학
최근 대학의 상아탑 안에 머물던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강의하는 기관이 늘어나고 있다. 본지는 이 같은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지속시키고 인문학 열풍을 더욱 확산시키고자 유명 석학들의 강연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 편집자 註

 

[독서신문] ■ 신화에서는 사람을 어떻게 보는가

(1) 마오리족과 손가락 3개

▲ 마오리족의 수호신 티키

뉴질랜드 원주민인 Maori족의 수호신 티키는 사람의 형상을 손가락 3개로만 표현하고 있다. 첫 번째의 검지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생(生)을 의미하고, 두 번째의 중지는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평생을 온갖 역경 가운데서도 살아간다는 삶을 의미하며, 그리고 세 번째의 무명지는 한평생의 삶을 다 살고 언젠가는 이승을 떠난다는 죽음(死)을 의미한다.

이는 다시 말하면 본래의 인간에 대한 가장 적나라한 원초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분명 생과 사는 인간 삶의 양극으로서 생은 탄생이어서 기쁨이고, 사는 이별이어서 슬픔이다. 사실 인간의 삶이 몸통으로서 중심축을 이루고, 그 양극에서 생과 사가 쉼 없이 출렁이고 있을 뿐이다.

수호신 티키는 자신의 품에다 생과 사를 동시에 함께 품고 있다. 이런 생과 사의 진폭에서 자유로울 삶이 없다면 인간의 삶에는 생과 사의 연속성만이 있을 뿐이다. 생사의 이어짐 속에서 삶의 희로애락이 교차한다. 생사가 교차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쁨도, 절대적은 슬픔도 존재하지 않는다. 슬픔도 가고 기쁨도 간다. 그러나 기쁨과 슬픔 속에 남아 이어지는 매듭은 언제나 삶으로서 존재한다.

삶은 자신의 생사를 스스로 재생산한다. 삶치고 고단하지 않는 삶도 없고, 삶치고 고단하기만 한 삶도 없다. 삶 자체야말로 생과 사를 둘로 가지나 생과 사는 그 자체로서는 하나이다. 이렇게 존재하는 생이 존엄하다면 사도 존엄하지 않을 수 없고, 삶 역시 존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곧 인간존재 전체의 존엄성이 되고, 소위 인권으로서의 사회화도 된다.

(2) 남미 잉카인들의 신화

신화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신이나 신을 중심으로 한 전래적인 인간의 설화로서 세계의 발생이나 인간의 탄생을 상징적으로 말한다.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사람의 삶은 왜 이렇게 고되고 힘이 드는가? 남미 잉카 문명권에서 인간의 신화는 아주 직접적이고 적나라하다.

신들은 인간을 세 번씩이나 애를 써서 어렵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진흙인간은 텁텁하고 둔하며 게으르기까지 했다. 그래서 신들은 다시 두 번째로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가지고 아주 늘씬하고 매끈한 나무인간을 만들었다. 그러나 만들어 놓고 보니 거칠고 딱딱해 심술궂게까지 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모여 모두 없애버리기로 의논한 후 나무인간들을 마구 부셔버리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민첩한 몇몇의 나무인간들은 급히 숲으로 도망해 현재의 원숭이가 됐다.

지친 신들은 하는 수 없이 세 번째로 정성을 들여 섬세하게 반죽으로 인간을 만들었다. 아주 부드럽고 유연했을 뿐만 아니라 영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영리해도 너무나 영리해 교활하고 민첩할 뿐만 아니라 간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신들은 이제 인간을 더 이상 새로 만들기에는 너무 피곤하고 귀찮아서 그냥 제멋대로 살도록 내둬버렸다. 그러면서도 간사한 반죽인간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 걱정이 돼 그들의 두뇌활동을 무한정하게 풀어주지 않고 불투명하게 했다는 것이다.

(3) 그리스-로마인들의 신화

어느 날 근심의 여신인 cura(cure, care)가 조용히 흘러내리는 시냇물 가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맥 놓고 앉아 자신의 손가락 끝으로 진흙덩이를 모아 하나의 형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형상은 그냥 흙 그대로 있을 뿐 움직일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아예 처음부터 숨은 쉬지도 않았다.

스스로 숨도 쉬면서 살아 움직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하던 차에 jupiter가 쿠라에게 다가와서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쿠라가 그에게 이놈의 코에다 생명을 불어넣어 주기를 간청하자 그는 기꺼이 청을 들어 그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살아 움직이게 했다. 그를 살려놓고 주피터는 내가 그에게 생명을 줘 살아있는 생명체로 만들었으니 자신의 것이라고 우겼다. 쿠라도 자기 손으로 공들여 만든 형상이라면서 거칠게 항의했다. 두 신들의 다툼을 옆에서 보고 있던 tellus(땅의 여신)가 달려와서 하는 말이 아니 바로 그는 내 품속(대지: 흙)에서 태어났으니 자네들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라고 주장했다.

싸움판이 벌어지자 주피터는 자기 쪽으로 다가오는 판정관인 saturnus(시간의 신)에게로 가 판결을 내려주도록 간청했다. 그가 판결해 가로되 “모두 공평하게 제 몫을 찾도록 해주겠소. 주피터 당신은 그가 죽어 생명을 다하면 그의 영혼을 가져가면 될 것이고, 텔루스 당신은 그가 죽으면 그의 해골(시체)을 다시 찾아 가져가면 당신의 몫을 다가지는 것이 될 것이요. 그러나 그의 어미인 cura는 그의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그를 맡아 돌볼 것이나 그놈이 무덤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매일매일 당신처럼 늘 근심걱정 속에서 지내야 할 것”이라고 판결했다.

이로써 운명의 법정싸움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끝이 났다. ‘흙’(humus)으로 만들어진 이 형상물은 이로부터 ‘인간’(homo)으로 불리게 됐다. 그 이후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한 살아생전에는 근심걱정 속에 살아야하며, 죽어서는 다시 대지의 흙으로 되돌아가야 하고,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영혼으로 남아 살아야 한다.

(4) 우리의 단군신화

우리의 신화는 건국신화로서 단군신화, 고구려의 주몽신화, 신라의 박혁거세신화, 가락국의 김수로왕신화, 고려의 왕건신화 등이 있으나, 이중 단군신화가 으뜸이다. 천제 환인(桓因)의 서자인 환웅(桓雄)이 천하를 다스리려 천부인 3개(단검·거울·옥)와 무리 3천을 데리고 태백산정 신단수(神檀樹) 아래 내려와 나라를 열고 다스렸다.

이때 곰과 호랑이가 한 굴속에 살면서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주기를 빌었다. 환웅이 그들에게 쑥 한줌과 마늘 20알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백일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되리라고 했다. 곰은 37일을 기해 여자가 됐으나 호랑이는 기하지 못했다. 여자가 된 곰은 혼인할 짝을 찾기 위해 신단수 아래서 잉태하기를 빌어 환웅이 화해서 아들을 낳으니 그 이름이 단군왕검(檀君王儉)이었다.

그는 평양성에 도읍하고,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해 1500년 동안 홍익인간의 이념을 가지고 경천애인하면서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天地人)을 다스리다가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산신이 됐다. 그는 ‘삶다운 삶’과 ‘사람다운 사람’을 다 갖췄다.

여기에서 한국인의 생사관이 나타난다. 사람다운 사람과 삶다운 삶을 1908년 동안이나 산 단군은 죽어서도 하늘로 올라가 천신(天神)이 되지 아니하고, 산으로 들어가 산신(山神)이 돼 지금도 살아있다고 함으로써 영원히 죽지 않고, 아니 죽어서도 살아가는 한국인의 성육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우리가 천손(天孫)이기는 하지만, 웅녀로 태어난 인간이기 때문에 유한해 고통하면서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죽음이란 그냥 헛된 허무가 아니고 또 다른 하나의 삶의 형태임으로 죽음 역시 삶처럼 존귀하고 존엄하게 된다.

/ 정리= 한지은 기자

*본고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인문강좌’(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서초구민회관)에서 백승균 계명대 목요철학원장이 ‘사람과 생명, 그리고 사회-인간 삶의 철학으로서 인문학’을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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