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경운기를 타고도 밝게 웃어줘서 정말 고마워"
<89> "경운기를 타고도 밝게 웃어줘서 정말 고마워"
  • 독서신문
  • 승인 2015.07.1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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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영의 풀 향기

▲  황태영 수필가
[독서신문]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흙은 정직하다. 스스로 정직하니 주위 모두를 정직하게 만든다. 흙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 또한 소박하고 정직하다. 꾸밈이 없어도 맑고 아름답다. 그러나 막상 농사를 주업으로 한다는 것은 보기보다 힘들고 어렵다. 아빠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틈틈이 밥을 짓고 빨래와 청소까지 하셨다.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난 엄마를 대신해 4남매와 거동을 잘 못하시는 할머니까지 돌보셔야만 했다. 그러나 아빠는 늘 행복했다. 늦은 나이에 필리핀 여성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고, 보물보다 귀한 자녀들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현실이 아무리 고되도 힘든 줄을 몰랐고 즐겁기만 했다.

맏딸은 집에서 4Km 정도 떨어진 중학교에 다녔다. 기말시험으로 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되면 언제나 아빠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꺼이 경운기를 몰아 딸을 데리러 갔다. 아빠가 딸에게 말했다. "좋은 부모 만났었다면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녔을텐데 경운기만 태워줘서 미안해." 딸이 말했다. "아빠는 내 보물 1호야. 억만금을 주어도 아빠와 바꿀 수 없기에 아빠만 있으면 이미 나는 억만장자보다도 더 부자야. 이 세상 어떤 고급승용차도 아빠의 경운기보다 아늑하고 편안한 차는 없어. 그러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어요. 하하~" 딸의 웃음은 감미로운 노래가 되어 아빠의 피로를 날렸다. 달과 별밖에 없는 고즈넉한 시골길이었지만 아빠와 딸은 그 시간이 최고로 즐겁고 행복했다. 맏딸은 엄마 대신 세 동생들을 매일 돌보아야 하는 힘든 상황이었지만 늘 밝고 성실했다.

돈이 많고 지위가 높아져야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들 중에도 우울증과 자살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행복은 부와 지위가 아니라 마음의 평화에서 온다. 경제적 부보다는 마음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 아빠와 딸은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가졌었기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수 있었다.

가정을 꾸린지 15년이 되는 2015년 6월 30일. 그날도 어김 없이 아빠는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던 딸을 데리러 갔다. 딸과 도란도란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갑자기 음주운전 화물차가 경운기를 덮쳤다. 아빠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딸은 중환자실로 긴급 후송됐다. 딸은 의식이 들자 자신의 아픔은 잊은 채 아빠를 먼저 찾았다. 아빠는 자녀들의 고된 뒷바라지도 즐거움으로 여기며 흙의 정직함으로 곱게 사셨다. 운명은 참으로 가혹했다. 봄날은 늘 짧고, 아름다운 꽃은 꼭 일찍 지고야 만다. 길지만 짧은 것이 있고 짧지만 긴 것이 있다. 추한 것은 길어도 쉬 잊혀지지만 아름다운 것은 짧아도 아쉬움과 그리움이 오래고 영원하다.

아무리 저승길이 꽃길이라 해도 어머니와 자녀를 생각하면 아빠의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빠와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세상의 그 어떤 돈과 지위를 가졌던 사람의 죽음도 저 아빠의 죽음만큼 안타까운 마음이 든 적이 없다. 일상의 삶이 매 순간 흙처럼 순결했고 죽은 후에도 그리움을 남길 수 있는 삶은 참으로 아름답고 위대하다. 아빠는 갔지만 아빠의 절절한 사랑은 세상에 남을 것이다. "딸아, 무거운 짐만 남겨두고 미리 와서 미안해. 경운기를 타고도 승용차 탄 것보다 밝게 웃어줘서 정말 고마워. 사랑한다…. 사랑한다…. 이별 없고 상처 없는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 꼭…. 꼭…."

아빠와 딸은 만났던 날보다 더 사랑했고, 사랑했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상처 없는 사랑은 없다. 그러나 지우고픈 추한 상처가 아니라 새살을 돋게 하는 상처라면 상처 또한 곱고 아름답다.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 '삼일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가 되고, 백년 탐낸 재물은 하루아침의 티끌이 된다'. 부귀영화가 삶을 아름답게 하는 듯하지만 지나고 보면 순결한 마음이 삶을 아름답게 한다. 딸은 비행기보다 경운기가 더 그립고 타고 싶을 것이다. 재물을 남기는 삶보다 그리움을 남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흙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죽어서도 시가 되고 노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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