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몽골로 끌어들인 위대한 영웅 자나바자(1)
나를 몽골로 끌어들인 위대한 영웅 자나바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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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3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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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빛' 몽골 이야기 _ <7>
 

[독서신문] '몽골에서 반드시 가보아야 할 가장 중요한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망설임 없이 'Zanabazar Fine Art Museum' 과 'Choijing Lama Temple Museum'을 추천할 것이다.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두 박물관에 가는 것이 고비사막이나 나담축제에 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울란바타르의 중심에 있음에도 한국인들은 잘 가지 않는 이 두 박물관은 외관은 작고 초라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미술관에 속한다. 자나바자가 직접 제작한 금동 불상들과 자나바자 스타일의 몽골불화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몽골인들 사이에는 '일부 금동불이 입을 열어 말을 하고 눈동자나 손과 발이 움직였다'는 많은 목격담이 있다.

▲ 자나바자 작(作) 금강살타부동여래(金剛薩不動如來) [사진발췌=MONGOLIAN SCULPTURE]

그러나 이런 신비한 초상현상을 모르는 외국인들도 미술품에 대한 안목이나 감성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자나바자의 위대한 영성을 체험한다. '금동 만다라 5불을 대하는 순간 영혼이 흔들리는 전율을 느꼈다'거나 '눈물을 흘렸다'는 경험들을 통적으로 이야기한다. '두 미술관을 50번도 넘게 방문했다'는 외국인들도 있다. 정신과 육체가 최상으로 진화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형상화한 자나바자의 금동불상들은 종교적인 신앙물로서가 아닌 순수한 미술품으로서 보편적인 세계인을 깊게 감동시키는 것이다. 작품을 제작한 금동주물의 기술 역시 장인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의 끝을 보여준다.

필자는 인도에서 티베트 미술을 공부하던 중 이 미술관들이 소장한 자나바자 작품의 화보집을 도서관도 아닌 쉐르파 린포체의 개인 서재에서 처음 접했다. 그 책을 펼치면서 시작된 충격과 감동이 결국은 몽골에 와서 살면서 미술학교를 설립한 단초가 되었다. 그때 나는 이미 아시아의 불교 국가들과 티베트를 여행했고, 인도에서 간다라 미술지역인 파키스탄 북부와 이란 터키를 거쳐 육로로 유럽을 여행한 후였다. 그런데 자나바자의 작품들은 내가 보아온 인체미술품들 중에 최고였다. 야만성조차 연상되던 척박한 몽골에서 그런 수준 높은 미술품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불가사의했다.

몽골은 한국 여권으로는 갈 수 없던 공산국가였지만 반드시 한번은 가서 자나바자의 작품들을 보고 싶었다. 몽골로 갈 수 있는 인연의 공덕을 짓기 위해서 티베트 스님들이 몽골로 갈 때마다 당시 내게는 거금이던 두 달치 생활비로 쓸 수 있는 100불을 보시금으로 보내곤 했다.

▲ 머리털이 자라고 있는 자나바자 토불(土佛). 둡쿵사에서 푸레바트 라마(가운데)가 들고 있다. 공산 시절에는 다니는 사람이 없어 무인지대나 다름 없던 오르콘산의 둡쿵사를 지켜온 샥다쑤렝 스님과 함께.

그렇게 아득히 멀었던 몽골로 필자를 끌어들인 자나바자는 몽골 역사상 가장 경이롭고 신비로운 인물이다. 1635년에 징기스칸의 직계인 압후태쎈칸의 증손자로 태어나서 출가하여 비구계를 받고 스님이 되었다. 스님이 된 왕자는 회화와 조각을 아우른 미술가이고 시인이고 음악가였다. 철학, 논리학, 수사학, 의학, 천문, 지리, 역학 등 모든 밀교학문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티베트어와 산스크리트어를 정확하게 몽골어로 음사할 수 있는 쏘욤보라는 문자도 창제했다. 쏘욤보의 첫 문자는 민족을 말살해온 70년의 공산 통치를 겪고도 죽지 않는 몽골의 혼을 상징하듯 국장(國章)으로 살아남아 현재까지 몽골의 국기에 사용되고 있다.

▲ 몽골 국기에 새겨진 국장(國章) 쏘욤보의 첫 문자

티베트나 네팔 중국 등 주변국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불상과 불화들을 제작하면서 몽골의 전통 가옥재인 팰트로 몽골의 기후와 자연조건에 잘 어울리는 조립식 법당을 만들었다. 승려들의 복식도 몽골의 풍토에 맞게 다시 디자인했다. 백성들에게는 불교의 가르침을 담은 시와 노래들을 만들어서 부르게 하고, 불교적인 인사법과 놀이와 풍습 등을 만들어서 백성들이 덜 고통스럽고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했다. 밀교의학에도 통달했던 왕자 스님은 양을 고통 없이 도살하는 방법도 가르쳤다. 지금도 몽골서 유목민의 양들은 잠들 듯이 평화롭게 죽는다.

오르콘산 둡쿵사에는 머리에 사람의 머리털이 자라고 있는 신비한 토불(土佛)이 있다. 이 토불은 자나바자가 청나라 강희대제의 부름을 받고 살아서는 다시 올 수 없는 길을 떠나게 되자 슬퍼하는 제자들을 위해 흙으로 빚어서 점안을 해주고 떠나며 "내가 보고 싶거든 이 토불에 인사를 해라. 그러면 나를 만난 것과 같다"고 했다. 자나바자가 청나라에서 암살 당한 후에 토불에서 머리털이 자라기 시작했다. 신비한 토불은 공산통치 중에도 둡쿵사의 한 동굴 속에 숨겨졌다가 지난 2008년에 권위있는 스님들과 학자들의 조사와 사실 확인을 거쳐 몽골 국가 보물로 지정되었다.

/ 김선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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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2015-10-18 17:24:27
안녕하세요, 잘 읽고 있습니다.

지난 추석기간에 가족들과 함께 오르헝 계곡에 있는 둡쿵(투흥 히드)에 다녀왔습니다. 딸이 세살이 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업고 안고 해서 사원까지 올랐는데 그 위로는 더 못 가봤습니다. 몽골에 8년 살면서, 몽골에 처음 왔을 때 부터 꼭 가고보고 싶었던 곳인데 ... 이렇게 선생님의 글로 다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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