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美信)
미신(美信)
  • 독서신문
  • 승인 2015.06.3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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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진의 『한국 현대문학과 관상학』을 읽고

▲ 김혜식 수필가
여성의 미를 칭찬하는 말도 시대에 따라 달랐다. 필자도 젊은 시절엔 피부가 희고 몸매가 날씬했다. 이에 반해 얼굴이 유독 통통했던지라, 나를 두고 주위에서 "부잣집 맏며느리감 같다"며 서로 자신들의 며느리로 삼고 싶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었다. 당시엔 그 말이 별 흠이 안됐지만 요즘엔 왠지 이 말이 그다지 달갑지 않게 들리는 게 사실이다. 현대인은 얼굴이 작고 마른 인형처럼 날씬한 몸매의 소유자가 미인에 속한다. 만약 젊은 여성에게 '부잣집 맏며느리감'이라는 표현을 한다면 간접적으로 상대방의 비만을 의미하기에 매우 불쾌해 할 것이다. 더구나 요즘은 외모지향시대 아니던가.

사람의 외양은 제각기 다르다. 천태만상의 외모를 지닌 게 인간이다. 그 탓에 사람의 얼굴 생김새를 일컬어 호상(好相)과 악상(惡相)이란 말로 관상학에선 일컫고 있다. 그러나 어찌 사람의 됨됨이를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 판단할 수 있으랴. 어느 경우엔 첫인상은 아주 좋으나 겪을수록 첫인상과 다른 언행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첫인상은 별 호감을 주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진국인 사람도 있다. 얼굴만으로 사람의 속마음을 짐작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형체도 냄새도 무게도 없는 사람의 마음은 하느님만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인생사를 다루는 문학작품에선 관상학을 매우 중시하고 있는 듯 하다. 정종진의 『한국현대문학과 관상학』만 보더라도 그렇다. 정종진 교수는 이 책에서 '문학작품 속에서 관상학은 미신(迷信)이 아니라 미신(美信)'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작가의 최대목표이며, 감동은 믿음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그러기 위해선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진폭력 있게 탐구하는 과정을 통하여 믿음을 안겨주려면 네 귀가 꼭 맞도록 해야 하는데 이때 작가는 관상학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관상학은 인간 경험의 통계치이기에 문학작품에서 묘사된 작중 인물의 외양은 작품 전체를 이끌어 가는 벼리가 된다"고 했다. 또한 관상학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확인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통해 인간의 운명까지 유추해낸단다.

특히 이 책의 「작중인물의 외양 묘사는 왜 필요한가」에서 채만식의 『태평 천하』17쪽과 조정래의 『아리랑』제8권 83쪽의 인물 외양 묘사가 눈길을 끈다. 이 묘사를 통해 정종진 교수는 "문학 속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외양 묘사는 인물의 형상이 마음에 새겨지면서 작품과의 친밀감을 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감을 느끼게 된다"며 "만약 이런 외양 묘사가 없으면 독자들은 작품에 대한 신뢰감이나 친화력이 덜해질 것"이라는 말에 필자 또한 학창시절 김동인 작 『붉은 산』을 감명 깊게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삵'이라는 별명을 가진 정익호라는 인물에 대한 작중인물 묘사와 그가 보여준 감동적인 민족애 때문에 훗날 이런 깊은 울림을 주는 소설을 쓰고 싶었던 꿈이 있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익호는 마을에서 암종 취급을 받던 인물이다. '얼굴 생김생김이 쥐와 같고, 날카로운 이빨이 있으며, 눈에는 교활함과 독한 기운이 늘 담겨 있으며, 발록한 코에는 코털이 밖에까지 나왔으며, 몸집은 작으나 민첩하였다'라는 인물 묘사에서 익호에게 삵이라는 별명이 어울린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그런 익호가 돌발적인 행동을 보였다. 마을 주민 송첨지라는 사람이 만주인 지주에게 소출을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적다고 흠씬 매를 맞고 죽어서 나귀에 실려왔다. 이를 보고 의분을 느낀 삵이 만주인 지주에게 항변하다가 죽음에 이를 때 "붉은 산과 흰 옷이 보고 싶다"며 "애국가를 불러달라"고 하여 그 노래를 들으며 죽음을 맞이한 장면은 참으로 감명 깊었었다.

이로 보아 문학 속 특히 소설 속 주인공의 외양 묘사가 얼마나 그 작품의 성패를 가름하는 가를 『한국 현대문학과 관상학』을 통해 새삼 느낀다. 그러함에도 나는 아직도 아름다운 심상이 밖으로 드러나는 밝고 푸근한 인상에 호감을 갖는다. 이는 '지천명을 넘겨 살고도 세상 물정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소리만은 아니라고 감히 장담해 본다.

/ 수필가, 청주 드림작은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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