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생명의 해방을 위해 다시 살아나야 할 나가(龍)
지구생명의 해방을 위해 다시 살아나야 할 나가(龍)
  • 독서신문
  • 승인 2015.06.1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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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빛' 몽골 이야기 _ <6>
 

[독서신문] ■ 몽골과 티벳에는 아직도 살아있는 나가

몽골과 티벳의 유목민들은 모든 자연현상을 지배하며 인간의 생존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가에게 많은 것을 의지한다. 나가를 기쁘게 하는 여러 가지 의식을 행하고 금기들을 지켜서 안녕 되고 풍요로운 삶을 기원하는 것이다. 호수나 강을 비롯한 큰물가나 샘터에는 나가를 모시는 작은 신당이나 표시들이 있기 마련이나, 나가는 물을 더럽히는 것뿐만 아니라 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몽골과 티벳 사람들에게 나가들이 깃들어 사는 맑은 물을 더럽히지 않도록 대단히 조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활의 습관이다. 흙 한 삽을 뜨고 나무 한 구루를 자를 때조차도 나가와 지신(地神)의 허락을 구하는 의식들을 행한다.

나가들에게 모래 만다라를 지었던 모래 한 알이 인간들의 황금 천냥만큼이나 값진 것이다. 나가들도 어쩌다 병이 드는데 이 만다라 가루가 나가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약이기 때문이다.그래서 몽골과 티벳의 스님들은 모래 만다라를 지어서 불공의식을 할 때 마지막으로 만다라를 지었던 모래가루를 항아리에 담아 불음을 연주하며 물가로 가지고 가서 염불을 하고 뿌리는 의식을 행한다.

나가가 특별히 싫어하는 피는 물론이고 흐르는 물이나 호수에는 배설물을 비롯한 어떤 더러운 것도 넣어서는 안 된다. 물을 더럽히거나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면 나가의 분노를 사서 질병이 돌고 재앙이 닥친다고 믿는다. 물고기들도 나가의 권속들이기 때문에 잡아먹거나 괴롭히지 않았다. 티벳이나 몽골의 물고기들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물에 손을 넣어 등을 쓸어줄 수 있었다는 기록들이 있는 것은 바로 이 '나가신앙' 때문이었다.

나가가 성이 나면 정말 무시무시하다. 몸이 10배에서 100배까지 커지고 얼굴빛이 검푸르게 변하면서 눈은 빨갛게 확장된다. 입에서는 온갖 불행과 질병이 든 검은 바람과 안개를 내뿜고 천둥번개를 치면서 폭우를 내린다. 열 손가락 끝에서는 독사들이 솟구쳐 나오고 아래쪽의 항문과 성기로는 붉은 안개와 함께 독두꺼비 지네 거머리 등 온갖 더럽고 흉한 독충들이 쏟아져 나온다.

몽골사람들은 지금도 빨래를 강이나 냇물 등에 직접 넣어서 빨지 않는다. 반드시 떠내어서 최대한 적은 물을 이용하여 빨거나 씻는다. 노인들은 여름날 시내나 호수에서 노는 개구쟁이들이 물고기를 잡거나 놀래키지 않도록 조심시키고 단속한다. 물고기를 함부로 잡으면 나가의 분노를 사서 가축의 눈병이 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과 가축의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다양한 나가신앙의 주술과 의식들이 여전히 큰 효력을 내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 나가를 상실하면서 한국이 잃어버린 것들?

내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에서도 예전엔 모든 사람들이 몽골의 나가에 해당하는 용(龍)이 자연에 깃들어 산다고 믿었다. 지방마다 마을마다 용을 섬기는 여러 가지 민속과 행사와 금기들이 있었고, 용에 관련된 수많은 전설과 당(堂)집들과 성지와 문화재들이 풍성하였다. 그러나 현대화라는 이름의 서구문화와 종교가 범람해 들어오면서 그 오래된 민속과 문화들이 '비과학적이며 시대에 뒤떨어진 어리석은 미신'이라고 멸시 당하면서 한국이 이룬 현대화의 속도만큼이나 급속히 사라져 갔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풍습과 문화재들을 자료로서조차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마을사람들이 경외하는 신당과 숭배물들을 용감하게 불지르고 파괴하면서 급속하게 서구화를 추구했다. 그리고 지금 몽골사람들이 부러워할만큼 부자가 되어 잘 살게 되었다. 잘산다는 건 서구식으로 산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서양사람만큼 잘살지는 못하기 때문에 서양을 너무 부러워하다보니 자긍심과 주체성이 없다. 자긍심과 주체성을 상실하면서까지 서양과 비슷하게 살게 된 대가로 한국인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수천 년을 전해 내려온 전통과 정신문화를 잃어버렸으니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몰라서 불안하고 괴롭다.

이제 와서 돌이킬 수도 없는 가장 안타까운 것은 용에 대한 경외심을 상실한 우리 한국인들은 발전해서 잘살아보려고 자연을 너무나 함부로 파괴해왔다는 것이다. 그렇게도 아름답던 한국의 금수강산은 지금 여기 몽골처럼 하늘은 푸르고 물이 맑은 나라였다. 그런데 이제는 시골 구석구석, 심지어는 지하까지 오염된 물이 흐르고 쓰레기로 덮여서 마음 놓고 물 한 모금을 마실 수가 없다. 기형아의 출산이나 중금속의 중독이 두려워서 수돗물을 마시지 못한다. 무리를 해서라도 플라스틱병에 든 물을 사서 마신다. 부자들은 한국에서 파는 물은 믿지 못한다고 굉장히 비싼 외국의 물을 사다가 마시기도 한다.

■ 병든 지구를 위해서 다시 살아나야 할 나가신앙

오래 살다보니 갈수록 몽골을 나의 조국처럼 사랑하게 된다. 오염되지 않은 이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과 찌들지 않은 몽골사람들의 넓은 마음을 나는 너무나 사랑한다. 몽골을 사랑하는 그만큼 불안해지는 마음으로 나는 서구화를 서두르는 요즘의 몽골을 바라보고 있다. 러시아가 버리고 간 험상궂은 시설 폐기물들, 아무 땅이나 파 헤집으며 늘어가는 광산들, 흉칙한 시멘트 건물들, 쓰레기들, 갈수록 짙어지는 도시의 매연 속에 포르노를 비롯한 각종의 저질성 대중문화!

빈곤으로 인한 고단함을 몽골사람들과 함께 체험하고 있는 나로서는 몽골인들이 풍족하고 편안하게 잘 살기를 어떤 외국인보다도 간절히 바란다.그러나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서둘지 말기를 바란다. 제발이지 몽골이 한국의 과오를 따라서 반복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몽골사람들이 조금만 더 침착하게 인내심을 가진다면,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자연과 사람의 심성이 파괴하지 않고도 발전해서 잘살 수 있는 방법들이 얼마든지 있다.

이제 지구상에는 이렇게 파괴되지 않은 자연이 아주 조금밖에 남아있지 않다. 몽골이 파괴되지 않은 자연과 사람들의 맑고 넉넉한 심성을 이렇게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그 혹독한 공산주의도 근절할 수 없었던 '나가신앙'이 지켜졌기 때문이다. 나가신앙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의 모든 생명과 더불어서 함께 살도록 하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몽골인들의 가슴에 나가신앙이 더욱 힘차게 살아나서 파괴되지 않은 이 자연을 오래도록 지킬 수만 있다면 앞으로 몽골은 지구상에서 가장 복된 민족의 하나로 살 수가 있다.

그리고 나가신앙은 몽골사람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병든 지구와 인간을 살려내기 위해서 성성하게 살아나야 한다. 나가가 성성해질수록 사람을 비롯한 지구의 모든 생명이 고통에서 더 많이 벗어날 수가 있다.

/ 김선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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