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스적 예술가’에서 ‘실천적 작가’로: 『마의 산』과 『요젭과 그의 형제들』
‘나르시스적 예술가’에서 ‘실천적 작가’로: 『마의 산』과 『요젭과 그의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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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0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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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의> 여섯 번의 특강으로 살펴보는 독일문학, 그리고 우리
최근 대학의 상아탑 안에 머물던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강의하는 기관이 늘어나고 있다. 본지는 이 같은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지속시키고 인문학 열풍을 더욱 확산시키고자 유명 석학들의 강연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 편집자 註

 

[독서신문] I. 『마의 산』, 또는 반어성의 극복

▲ 『마의 산(Der Zauberberg)』 표지

초기 토마스 만 소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반어성은 1924년에 나온 그의 대표작 『마의 산(Der Zauberberg)』에서도 엿보이고 있는데, 청년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가 ‘마의 산’에서의 자신의 두 멘토라 할 수 있는 세템브리니와 나프타 중 아무 편도 들지 않고 중간자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그 징후이다.

이 청년은 ‘저 아래(dort unten)’의 시민세계로부터 ‘이 위(hier oben)’의 ‘병’과 ‘죽음’의 세계로 들어간다. ‘마의 산’이라는 제목부터가 스위스 고산지대의 소읍 다보스(Davos)에 있는 한 고급 호텔식 폐결핵요양소 ‘베르크호프’를 가리키는 은유이다. ‘이 위’의 의사들은 환자를 건강인으로 치유해 ‘저 아래’로 돌려보내는 데에 열과 성을 쏟는다기보다는 환자들을 가능한 한 오래 붙잡아두고 ‘저 아래’의 돈 많은 보호자들에게서 고액의 치료비 송금을 받는 데에 더 큰 재미를 붙이고 있다.

‘이 위’의 환자들 역시 ‘저 아래’의 현실생활과는 더 이상 아무런 유대감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거의 ‘방종’에 가까운 ‘무속박(Ungebundenheit)’의 ‘자유’를 누리게 되며, 그들의 도덕적 의식조차도 건전하다기보다는 다소 타락한 경향을 띠게 된다.

이렇게 ‘마의 산’의 일상에서는 노동과 생산은 거의 없고 음식의 소비와 육체의 탕진이 있으며, 인텔리 환자들 간에는 공허한 대화와 논쟁이 주된 생활이 된다.

이제 막 조선(造船) 기사 시험에 합격해 곧 직장에 나가기로 돼 있는 23세의 ‘한 단순한 청년’ 한스 카스토로프가 ‘저 아래’ 함부르크로부터 ‘이 위’의 다보스에 도착한다. 환자로서 입원하는 길이 아니라 이미 입원해 있는 사촌 형을 문병하기 위해 3주 예정으로 온 것이었다.

그러나 카스토르프는 ‘이 위’의 자본주의적이고 퇴폐적인 분위기에 젖어 지내는 동안 쇼샤 부인이라는 러시아 출신의 환자에게 마음이 끌려 베르크호프라는 ‘폐쇄 공간’에 더 머무르고 싶은 애착을 느끼게 된다.

이곳에 머물고 있던 이탈리아 출신 인문주의자 세템브리니는 카스토르프 청년의 이러한 경향을 진작 눈치채고 당장 ‘저 아래’ 세상으로 되돌아가기를 권하지만, 청년은 그의 충고를 듣지 않고 계속 ‘이 위’에 머문다. 그 사이 자신도 그만 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게 되고, 자본주의적 타락의 공간인 요양원에서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과 같을 수밖에 없는’ 취생몽사 상태에 빠져 7년이란 긴 세월을 보내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요양원이 폐쇄되는 순간이 돼서야 비로소 하산해 독일군으로 참전한다.

이 소설은 말하자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의 7년 동안 다보스의 한 요양원에서 한 청년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소한 사건들과 그의 두 멘토라 할 수 있는 세템브리니와 나프타 사이에 벌어지는 시대적 거대 담론들을 기록하고 있는 시대소설(Zeitroman)이다.

그러나 그 ‘폐쇄 공간’이 ‘죽음’과 직결돼 있고 주인공 대부분의 체험이 ‘죽음’ 및 ‘시간’과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시간소설(Zeitroman)이기도 하다.

II. ‘요젭소설’과 인간주의적 초월과 해학

토마스 만은 잠시 중단했던 ‘요젭소설(Joseph-Roman)’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약칭 ‘요젭소설’의 원명은 『요젭과 그의 형제들(Joseph und seine Br?der)』(1928-1943)이며, 「야콥 이야기」, 「청년 요젭」, 「이집트에서의 요젭」, 「부양자 요젭」 등 4부작으로 돼 있다. 당시 토마스 만은 「이집트에서의 요젭」의 중간에 와 있었으며, 곧 「부양자 요젭」을 쓸 단계였다.

『요젭과 그의 형제들』에서의 요젭은 처음에는 토마스 만의 모든 작품에서 흔히 발견되는 예술가 기질의 나르시스로 출발한다. 그런데 이 나르시스가 두 번이나 ‘구덩이(Grube)’에 처박히는 시련을 겪고 나서 「부양자 요젭」에 이르면, 낯선 땅 이집트에서 경세가로 성공할 뿐만 아니라 고향에서 건너온 형제들의 부양자가 된다.

그래서 요젭은 ‘위와 아래의 중재자(Mittler zwischen oben und unten)’ 또는 ‘하늘과 땅의 중개자(Mittler zwischen Himmel und Erde)’, 즉, 헤르메스 신의 면모를 띠게 된다.

요젭이 이집트에서 낳은 첫아들을 히브리어로 ‘하느님께서 나로 하여금 내 모든 인연들과 내 고향 집을 잊게 하셨도다’라는 의미인 ‘마나세(Manasse)’라 이름 짓고, 둘째 아들을 ‘하느님께서 유형의 나라에서 나를 크게 만드셨도다’라는 의미인 ‘에프라임(Ephraim)’이라 이름 지었다. 이는 고향을 떠나 이집트에서 크게 된 요젭의 삶의 과정을 요약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국을 떠나 망명지 미국에서 큰 인정을 받고 수많은 강연을 통해 ‘독일과 독일인의 선한 진면목’을 알리는 토마스 만 자신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 정리=한지은 기자

*본고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인문강좌’(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김경현 고려대 교수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기독교’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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