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여자도 암컷이 되라고 부추기는 한국문화
몽골 여자도 암컷이 되라고 부추기는 한국문화
  • 독서신문
  • 승인 2015.06.0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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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빛' 몽골 이야기 _ <5>
 

[독서신문] 몽골인들 모면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도 서구화의 물결은 덮쳐오고, 그 물결에 휩쓸려 휘청거린다. 한국을 거쳐서, 한국이 흠씬 배어서 들어오는 이 물을 그냥 서구적이라고만 할 수도 없고….

학자들이 뭔가 용어 하나를 만들어내야 할 것 같다. 이곳의 냉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배꼽을 드러내는 여자들이 늘어간다. 아스팔트가 잘된 한국이나 미국도 아닌데. 개들이 싸대는 똥오줌과 쓰레기가 흩어진 울퉁불퉁한 길을 높은 신을 신고 기우뚱기우뚱 위태롭게 걸어가는 여자들, 질질 끌리는 큰 바지로 그 더러운 흙바닥을 쓸면서 걷는 판자촌 젊은이들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무허가 판자촌이 갈수록 늘어가는 울란바토르 중심의 큰 거리들은 한국의 옷과 장신구, 화장품을 파는 가게와 미용실, 디스코와 가라오케로 메워져 간다.

그런 거리마다 외국노래들이 볼륨을 점점 높여가고 있다. 거의가 영어 노래나 한국의 최신 유행가들이다. 한국인인 나도 가사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들이 몽골 젊은이들의 가슴을 파고 흔드는 것이다. 노래의 대부분은 얼핏 들으면 암컷이나 수컷들이 욕구불만으로 끙끙거리고, 신음하고, 울먹거리며, 화가 나서 함부로 질러대는 소리들처럼 들린다. 듣는 사람도 그런 욕구와 분노를 느끼도록 자극하고 충동질하는 소리들이다.

'몽골마돈나'네 하는 섹시싱어들이 생겨났고 이런저런 서양 이름의 음악패들이 만들어져서 어슷비슷한 노래를 몽골어로 열심히 부르지만, 젊은이들은 가사도 모르는 한국 노래나 영어 노래를 더 좋아한다. 아마 노래에 실린 욕구와 분노, 자극의 정도가 서양과 한국의 노래를 능가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 노래만 전문으로 내보내는 FM의 고정프로들이 있을 정도이다. 학생들의 공책에 한국의 가수나 탤런트의 사진이 인쇄된 것이 제일 잘 팔린다.

TV에서 몽골어로 더빙된 한국의 연속극과 뮤직쇼가 방영된다. 일본 연속극 <오싱>이 방영될 때는 시큰둥했던 몽골인들이 한국 드라마는 거르지 않고 본다. 도시의 몽골 사람들은 <가을동화>네 <겨울연가>네 하고 끊임 없이 이어지는 한국인의 사랑놀이에 중독들이 되가고 있다. 중독현상은 남자보다는 감수성이 발달한 여자들이 더 심하다. 드라마의 주인공이나 인기가수들처럼 머리에 물도 들이고 옷도 비슷하게 입으려고 애들을 쓴다.

▲ 몽골 여인의 내음이 물씬 풍겨나는 필자 김선정 교수(가운데)

여성에게는 암컷 같은 성품도 있고 어머니 같은 성품도 있는데, 동물로 치자면 수컷을 끌어당겨 교미하고 번식하는 청년기에는 암컷의 성품이 도드라졌다가 마침내 짝을 찾아서 자식을 하나 둘 낳아 키우다보면, 암컷의 성품은 사라지고 어머니의 성품이 커지는데, 늙어서도 암컷의 성품을 버리지 못하는 여자도 있고 어린 처녀라도 암컷이 아닌 어머니의 성품이 두드러진 여자들도 있다. 그런데 여기 몽골까지 흘러들어오는 한국의 대중문화나 인터넷에 들어섰다 하면 시선을 잡아끄는 온갖 광고와 사건의 제목들을 보면 여자들을 온통 암컷으로 몰아가는 것만 같다. 한국에 살면서 그 충동질과 최면에 휘둘리지 않고 정신을 차리기란 쉽지가 않을 것 같다.

남성에게도 수컷의 성품과 아버지의 성품이 있지만 몽골민족은 아버지의 성품보다는 어머니의 성품을 더욱 찬미하고 우대한다. 몽골은 남성적인 나라, 용사의 나라로 알았는데 와서 살아보니 몽골인들의 어머니 숭배는 대단하다. 우선 승속을 망라해서 몽골인들이 가장 많이 신앙해온 보살이 '노공다리/녹색타라'라는 어머니 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이 흘린 눈물에서 피어났다는 이 보살은 아이를 낳고 어머니가 된 보살로 몽골불교의 여러 보살과 부처들 중에서 으뜸 가는 인기를 누린다.

우리나라의 갓바위처럼 소원을 잘 들어줘서 공산시절에도 숭배돼 온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를 '에지하뜨/어머니바위'라고 부른다. 몽골 사람들은 모였다 하면 '아이릭/ 마유주'를 마시면서, 소리를 모아 노래 부르기를 매우 좋아한다. 이럴 때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는 어머니를 찬미하는 노래들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을수록 눈물들이 글썽해져서 어머니에 관련된 노래들을 부르고 또 부르고 한다.

이렇게 어머니를 찬미하는 문화의 영향인지 몽골의 젊은 여성들은 한국 여성들에 비해 대단히 모성적이다. 과거에 한국이나 일본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굴종적이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몽골 여성들은 인내심이 매우 강하고 억척스러워서 안팎의 일을 잘한다. 대법원 판사, 통계부장, 국회의원 등 요직을 맡은 여자들이 가정부 없이 안팎일을 모두 한다. 남녀가 동등하게 일을 해야만 했던 공산주의를 거쳐서 갑자기 자본주의가 된 지난 10년의 혼란기를 거치고 나서 아내가 남편보다 직업도 우월하고 수입도 많은 부부들이 흔하다.

남녀관계가 아니라도 약자를 가엾어 하고 보살피는 것이 몽골여성들은 거의 본능적이다. 필자가 몽골에 와서 여자들에게 제일 많이 들은 말은 "저런 안됐어라. 가엾어라!"라는 뜻의 "에~ 후우르히 후우르히~" 하는 감탄사다. 한국처럼 좋은 나라에 살던 사람이 춥고 거친 나라에 와서 사는 것을 "안됐어" 하는 것이다.

이 감탄사를 남자들에게 들어본 적은 거의 없다. 나보다 연상인 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가친척들과 학교에서 함께 일하는 젊은 여성들 중에도 모성의 따스함을 느끼게 해주는 여성들이 많다. 한국이라면 함께 일하는 또래의 젊은 여성들간에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시기나 질투에 의한 불화가 거의 없다.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필자가 경험한 서양 여자들이나 한국 여자들에 비하면 몽골의 여자들은 대체적으로 점잖은 여자들이며 강하고 너그러운 여자들이다. 이것은 몽골사회가 여성이 지닌 어머니의 성품을 찬미해온 문화를 아직도 지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여직원들이나 시누이, 동서, 조카딸들이 심취하는 TV 속의 한국 가수나 탤런트들을 보면,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이나 흐뭇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슬그머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들이 표현하는 젊은 여성의 이미지는 너무나 유약하고 믿을 데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얼굴은 동지나 동업자가 될 수 있는 신뢰는 고사하고 얄팍한 우정조차도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얼굴의 남녀가 잘할 수 있는 것은 사랑 말고는 별달리 없을 것 같다.

부유함이라는 온실 속에서만 가능한 사랑, 갑자기 가난해져서 옷이나 화장품이라도 못 사게 되면 그냥 무너져버릴 것 같은, 인내심이 없는 얼굴. 만토해에 심취했던 몽골의 여성들이 저런 문화에 중독되고 휘둘려서, 야성조차 상실한 가련하고 유약한 암컷들로 퇴화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아이릭과 함께하는 어머니의 노래가 이 초원에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는데….

/ 김선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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