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_ (36) 조선 선비, 계란 카스텔라 맛에 취하다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_ (36) 조선 선비, 계란 카스텔라 맛에 취하다
  • 이보미 기자
  • 승인 2015.04.20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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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제 칼럼니스트
한국 사람이 처음으로 카스텔라를 접한 것은 조선 중기로 추정된다. 기록이 『일암연기』에 나와 있다. 일암은 숙종 때 선비인 이기지의 호다. 이기지는 진사 시험에 수석을 한 뒤 문과 준비 중 베이징에 다녀왔다.

1720년 그는 아버지 이이명이 숙종의 승하를 알리기 위한 고부사로 청나라에 갈 때 자제군관으로 수행했다. 이때의 기록인 『일암연기』에는 선교사로부터 접대 받은 서양 빵 카스텔라의 맛을 설명한 게 있다. 

서양 떡 30개를 내왔다. 모양이 햇가지와 비슷했다. 입안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았다. 매우 부드럽고 감미로웠다. 참으로 기이한 맛이다. 재료는 사탕과 계란, 밀가루 등이다. 선왕인 숙종이 말년에 음식에 물려 색다른 맛을 찾은 적이 있다. 이 때 어의 이시필이 계란 떡을 생각했다. 그는 예전에 베이징에 갔을 때 심양장군의 병을 치료한 뒤 계란 떡 접대를 받았다. 그때의 맛이 지극히 부드럽고 기발하였다. 중국에서도 진귀한 음식으로 여긴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돌아와 계란 떡을 만들었는데 좋은 맛이 나지 않았다. 내가 한 조각을 먹자 선교사들은 곧바로 차를 내왔다. 빵을 먹은 뒤 차를 마시면 소화가 잘되어 체하지 않기 때문이다. 뱃속이 매우 편안했다. 배가 부르지는 않았지만 시장기를 잊었다.

이기지는 선교사로부터 서양식 계란 떡을 접대 받았다. 서양식 계란 떡은 카스텔라 빵이다. 카스텔라는 무역을 한 포르투갈 사람들이 대만 중국 일본에 전했다. 선교사들은 무역상들과 함께 동아시아에 왔다.

이기지는 베이징에 머문 프랑스와 포르투갈 출신 예수회 신부들의 호의로 카스텔라 맛을 본 것이다. 카스텔라의 주재료는 계란, 설탕, 꿀, 밀가루다. 반죽을 거품이 나게 한 뒤 오븐에 굽는다. 다시 철판으로 압력을 가한 뒤 고온에 한 시간 정도 가열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기지가 맛본 카스텔라는 오븐 대신 벽돌 난로에 구웠고, 중국식으로 기름에 튀긴 것으로 추측된다.

이기지의 '연행록'에 나오는 이시필은 숙종의 주치의다. 그는 베이징 방문 때 청나라 장군인 송주를 치료했다. 그는 카스텔라를 조선에서 다시 만들려고 했으나 실패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당시 한반도에서 생산되는 밀에 글루텐 성분이 적어 반죽이 잘 부풀지 않은 까닭이다. 실험정신이 강한 이시필은 『소문사설』에 음식 조리법, 질병 치료법 등을 남겼다.

그러나 카스텔라에 대한 기록은 없다. 실험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기이한 음식이나 치료약으로 설명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계란전, 계단탕, 계란병, 건수란과 같은 음식은 소개했다. 이중에 계단탕(鷄蛋湯)이 이시필이 맛본 카스텔라와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의 계단탕은 뜨거운 기름에 계란을 넣어서 익힌다.

 
계란으로 만든 서양 빵 접대를 받은 이기지는 필담으로 선교사와 천문 지리 음식 등 여러 대화를 나눴다. 그들의 과학문물을 조선에 수입할 방법을 생각한다. 그의 열린 사고는 북학파인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 등에게 영향을 끼친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이기지는 식견이 탁월하여 후세 사람들로서는 따를 수 없다. 중국을 제대로 보았다. 그림과 천문 관측, 기계에 밝았다'고 기록했다. 실제로 이기지는 서구 문명에 적극적 관심을 보인 홍대용보다 더 많은 서양인과 접촉하고 폭넓은 기록을 남겼다. 이기지의 '연행록'은 홍대용의 『담헌연기』나 박지원의 『열하일기』보다 수십 년이나 앞서있다. 그는 청나라에 가기 전에 사행사로 다녀온 김창업으로부터 서양과 청나라의 과학 및 문화에 대한 기초자료를 수집했다. 서양의 선교사와 만나기 전에 이미 천문 역학 등에 기초지식을 가진 셈이다.

그는 아버지를 수행해 간 사행에서 서양인 신부 쾨글러(독일), 사우레스(포르투갈) 등을 만나 천주교와 천문, 역산에 관한 서적을 얻어왔다.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그는 정사로서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아버지를 대신해 서양인들을 찾아가 교류했다. 당시 북경의 천주당은 네 곳 있었다. 이곳엔 교황청에서 파견한 선교사가 상주하면서 서구의 과학 문명 및 종교를 전파했다.

신지식에 목말라하던 18세기 조선의 사신도 으레 이곳에 들렀다. 하지만 대부분은 네 곳 중 남당만 방문했다. 1765년에 사행한 홍대용만 유일하게 남당과 함께 동당을 방문했다. 그런데 이기지는 1720년에 남당 동당 서당의 세 곳 천주당을 여러 차례 찾아 선교사들로부터 천문 역법 등의 신지식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55일간 베이징에 머물면서 20여 차례 서양인들과 대화를 나눈 그는 천문도서, 서양서, 서양화, 향수, 고약, 자명종, 잠열 등을 얻어왔다. 필담으로 동서양 역법의 차이, 일식과 월식의 원리 하늘의 방위 등에 대해 토론을 했다.

북학파에 앞서 서양 문물에 강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한 실학을 찾았던 이기지는 귀국 이듬해인 1721년 발생한 신임옥사로 인해 32세에 옥중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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