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준이 '인생은 나그네 길'이란 노래를 부른 이유
최희준이 '인생은 나그네 길'이란 노래를 부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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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4.2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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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 익는 마을

[독서신문]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자재천상왈 서자여사부 불사주야)’   -「子罕(자한)」편
공자가 냇가에 있으면서 말씀하셨다. 떠나가는 것은 이와 같도다! 밤낮으로 머물지 않는구나.

천지의 조화가 이와 같다. 가는 것은 지나가고 오는 것은 이어진다. 한 순간도 그침이 없다. 시간도 흐르고 인걸도 흐른다. 자연과 풍류를 말씀하신 것인가?

공자께서 간단 없이 흘러가는 냇물을 보면서 서(逝: 往, 行, 通, 死)의 모습에서, 타임 궤적의 밤낮의 운행질서에서 인간도 쉼 없는 노력을 해야 함을 당부하신 것이다.

아마 내면에 귀를 기울이셨다면 쉼 없이 뛰고 있는 자신의 심장과 맥박 속에서도 쉼 없이 움직이는 운동성을 발견하셨을 것이다. 여기서는 그 운동성 만을 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완성을 한탄하신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저 강물처럼 간단 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내가 내면적으로 이룬 것과 대외적으로 이룬 것이 무엇이냐’는 영탄이 깔려 있다고 느껴진다. 그렇다고 허무적인 감상이 아니라 더 분발을 요한다는 반의적인 역설법이다.

몇 년 전 유럽을 다녀올 때의 일이다. 비행기가 네팔을 거쳐 산맥만이 즐비한 험한 지형으로 들어설 때쯤 기장의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폭풍우가 거세 비행기가 출렁거릴 것이므로 안전띠를 다시 매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하늘 저쪽으로 먹구름이 일고 빗방울이 동체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기를 한 10여분 지났을까. 언제 그랬느냐 싶게 찬란한 햇살이 보이고 푸르고 푸른 하늘이 끝없이 펼쳐졌다. 그러나 아직 지상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하늘로 솟아 오른 덕분에 나는 비구름 위에서 멋진 파노라마를 구경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상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과 비행기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말하자면 지상에서의 생각이란 비구름 아래에서 보는 동굴 속 생각이라는 깨우침을 얻은 것이었다. 그랬다. 난 대롱 속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나의 좁은 소견으로 세상을 봐왔다는 말에 다름 아니었다. 그보다 더 넓고 웅숭한 계곡이 있음을 모르고 맨 첫 계곡 밑에서 꼭대기만 쳐다본 것이다.

이 일은 ‘인생은 모두가 허무하다’는 그간의 인생관이 조금씩 무너지는 계기가 됐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공(空)=허무’가 아니란 걸 알아차리게 됐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오온개공(五蘊皆空/몸과 마음은 모두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일정한 본체가 없어 무아(無我)인 것을 말함)’을 ‘허무’라고 해석(이른바 요소설)해 왔다.

성경 시편 144편 3절에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라고 했다. 이 말은 ‘인생은 무엇입니까?’하고 되묻는 것 아닌가? 39편 11절에는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입니다’라고 했다. 나도 어린시절부터 이런저런 영향을 받아 ‘인생은 나그네 길’이니 ‘허무한 것이 인생’이니 하는 생각을 달고 살았다.

그런데 ‘오온이 끊임 없이 변한다’는 우주의 근본 원리를 다시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도 갈파(‘만물은 불에서 나와 불로 돌아간다’)했지만 세상은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인간은 흙과 물에서 비롯된 생명체를 먹은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난다. 그리곤 자라나면서 그 생명체를 먹고 삶을 영위해 나간다. 그리곤 죽어서 다시 흙이 되어 또 다른 어머니의 생명체(먹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죽게 되면 모든 것이 소멸하는가? 그래서 허무한가? 아닌 것이다. 내가 죽어도 사실은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다. 생명체의 자식이 거기에 있고 정신세계에서의 업적이 또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논어익는 마을>을 통한 논어의 정신을 오늘에 맞게 고쳐서 후세에게 전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 누구도 범접할수 없는 역사의 축적된 지혜와 진리가 담겨져 있다.

가수 서유석은 ‘가는 세월 그 누구가 막을 수야 있겠소’하며 이마의 주름을 더 깊게 했고, 최희준은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며 긴 여운을 남겼다. 누군가는 ‘인간세상의 희, 로, 애, 락이라는 것도 똑바로 보면 봄의 들녘에 일렁이는 아지랑이 같고, 풀잎에 반짝이는 아침 이슬 같은 것이며, 꿈결 속에 노니는 것이나 무엇이 다르냐’고 했다.

장자의 ‘호접몽’은 그래서 하루하루가 아쉬운 우리에게 초월의 경지를 열어준다. 인생이 나그네 길이든 방랑의 길이든, 죽음을 막을 수 있든 없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뜨리면(오온개공의 뜻을 정확히 깨우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을 굳이 한탄할 이유가 없다.

그저 무엇인가 자신의 마음에 차는 것을 이룩해나가며 또다른 흔적을 지상에 남겨두는 것이다. 그리하면 또 다른 나, 제2의 나(clone)가 지상에 남아 있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물론 자식들도 있지만 <논어익는 마을>은 나의 핵 세포 속에 또 다른 핵세포를 넣는 것과 같은 진짜 복제품이 될 터이다. / 윤진평 <논어 익는 마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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