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고기의 핏물에 분노하는 몽골의 '나가'는 어떤 존재인가?
날고기의 핏물에 분노하는 몽골의 '나가'는 어떤 존재인가?
  • 독서신문
  • 승인 2015.04.2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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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빛' 몽골 이야기 _ <4> 나가
 

[독서신문] 그때는 나까지도 비이성적으로 유스팅에 정말로 존재하는 나가와 신령한 물에 날고기를 담근 남자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먹을 것이 모두 떠내려가고 텐트조차 강풍에 찢겨서 날아가버린 우울한 그 남자를 아무도, 단 한마디도 책망하지 않았다.

몽골식 대형 텐트에 함께 자도록 해주고 먹을 것도 나누어주며 다들 따뜻하게 대했다. 어려운 상황에 대처하는 몽골 사람들의 그런 넉넉한 품성이 참으로 좋았다. 노상 비가 오고 강풍이 불어대니 온천물에 들어가는 거 말고는 할 것이 없었다. 훈훈한 난로 가에 둘러앉아 그 온천에 여러 해를 다닌 노스님들과 노인들로부터 유스팅과 나가에 얽힌 여러 가지 재미있고 신비한 이야기를 들었다.

▲ 몽골 불화의 나가와 용. 물 위로 보이는 보석들은 물 속에 깃들어있는 나가들을 상징한다. 나가들은 물과 땅 속에 있는 보석과 귀금속의 주인들이다.

몽골 불교도상학에 의하면 나가는 하반신은 뱀이고, 상반신은 사람처럼 생겼다. 8세 아이의 모습으로 살결이 희고 통통하며 얼굴이 아름답다. 가늘고 고운 머릿결에 검푸른 눈이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뺨은 분홍빛을 띤다. 얇고 큰 귀도 분홍색이다. 두 손에는 귀한 보배를 보듬고 다닌다.

나가국(國)을 다스리는 왕을 뤼왕겔포라고 한다. 신분이 높은 나가일수록 아름다운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작은 나가들을 거느리고 다닌다. 신분이 낮은 나가들은 치장도 단순하고 뱀을 몇 마리 거느리는 정도이다. 치장도 없이 혼자 다니는 나가들도 있다. 강, 바다, 폭포, 호수, 시내, 샘터 어디든지 맑고 신령한 물속에는 나가가 깃들어 살고 있지만 보통사람의 눈에 보이는 일은 거의 없다.

이 나가가 성이 나면 정말 무시무시하다. 눈이 빨갛게 확대되고 얼굴은 검푸르게 변하면서 몸이 10배에서 100배까지 부풀고 입에서는 온갖 불행과 질병을 품은 검은 안개와 바람을 내뿜고 천둥번개를 치면서 폭우를 쏟는다. 열 손가락 끝에서는 독사들이 솟구쳐 나오고 항문과 성기로는 붉은 안개와 독두꺼비, 지네, 거머리 등 더럽고 흉한 독충들이 쏟아져 나온다.

몽골의 유목민들은 물을 더럽히거나 자연을 훼손하면 나가의 분노를 사서 질병이 돌고 재앙이 닥친다고 믿었다. 강물이나 호수에 나가가 특별히 싫어하는 피는 물론이고 배설물 등 더러운 것을 절대 넣지 않는다. 빨래도 강이나 냇물에 직접 담가서 빨지 않는다. 흐르는 물이지만 반드시 떠내서 최소한의 물로 빨고 그릇 등을 씻는다.

노인들은 여름날 시내나 호수에서 물놀이를 하는 개구쟁이들이 물고기를 잡거나 놀라게 하지 않도록 조심시키고 단속한다. 물고기를 함부로 잡으면 나가의 분노를 사서 가축에 눈병이 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서양문물이 많이 들어오기 전에 몽골의 물고기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물에 손을 넣어 등을 쓰다듬어 줄 수 있었는데 몽골인들이 나가의 권속인 물고기들을 잡아먹거나 괴롭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범패 음악을 연주하며 강으로 가서 나가에게 만다라 모래를 공양하는 몽골의 라마(승려)들

호수나 강을 비롯한 큰물가나 샘터에는 나가를 모시는 하얀 탑이나 작은 신당 혹은 돌무더기의 표시들이 있다. 몽골에서는 흙 한 삽을 뜨고 나무 한 그루를 자를 때조차도 나가와 지신(地神)의 허락을 구하는 기도를 한다.

몽골의 스님들은 자연현상을 지배하며 유목민의 삶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가들을 어르고 구슬르는 여러 의식을 행한다. 모래 만다라를 지었던 오색의 모래가루를 강이나 호수로 가지고 가서 나가들에게 뿌려주는 불교 의식이 있다. 나가들도 어쩌다 병이 드는데 만다라의 모래가 나가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약이기 때문이다. 나가들에게 이 만다라의 모래 한 알은 인간들의 황금 천 냥만큼이나 값진 것이라고 한다.

유스팅의 온천에도 나가를 모신 작은 오두막이 있었다. 나가들이 좋아하는 만다라 모래는 없었지만 우유기름으로 등잔을 밝히고, 몽골식 가루 향을 사루고, 푸른 카닥(비단수건)과 말린 치즈를 올렸다.

불경을 염송하는 스님들과 기도를 하고 나면 '식량이 떨어지고 나서도 비바람 때문에 헬기가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안정이 되었다. 물론 그 젊은 남자도 진지하게 함께 참석했다. 나가들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준 것인지 우연인지, 이틀이 지난 후에 푸르게 열리기 시작하는 하늘 저편에서 반가운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왔고 마침내 모두 안전하게 울란바토르로 돌아올 수 있었다.

/ 김선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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