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지식인 파우스트의 득죄와 영원한 여성성의 은총
『파우스트』, 지식인 파우스트의 득죄와 영원한 여성성의 은총
  • 독서신문
  • 승인 2015.04.0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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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의> 여섯 번의 특강으로 살펴보는 독일문학, 그리고 우리
최근 대학의 상아탑 안에 머물던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강의하는 기관이 늘어나고 있다. 본지는 이같은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지속시키고 인문학 열풍을 더욱 확산시키고자 유명 석학들의 강연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 편집자 註

[독서신문] I. 『파우스트』-어떤 작품인가?

괴테의 『파우스트』라는 작품에 관해 한 번쯤은 들어봤을 테지만 막상 이 작품을 끝까지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다. 설령 한번 읽기로 큰 결심을 하고 책을 손에 집어 들었다 해도 끝까지 읽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파우스트』가 진정 세계명작이라면 왜 이렇게 독자에게 친화성이 떨어지는 것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이 작품이 인류의 모든 체험과 인생의 모든 문제점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와 위안을 얻기 위한 문학작품으로서 이 작품은 일단 너무 무겁다. 현대의 어떤 독자가 철학, 법학, 의학에다 신학까지 공부한 파우스트의 처지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작품으로 괴테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 전체를 형상화해 놓았다. 이를 읽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인류가 이룩해 놓은 모든 정신적 업적과 마주하게 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고, 만약 책 한 권만 갖고 다른 별로 갈 수 있다면 어떤 책을 갖고 피난을 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단연 괴테의 『파우스트』를 갖고 가겠다고 말한 학자도 있다. 설령 이 세상에서 문학이 모두 멸실된다 해도 괴테의 이 한 작품으로써 지금까지 지구 상에 존재해 왔던 세계의 모든 문학을 어느 정도 재구성해 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문학의 모든 형식들, 즉, 온갖 형식의 시, 희극, 비극, 익살극, 환상극, 그리스 합창극 등이 이 한 작품 안에 총망라돼 있고, 욥기에서 셰익스피어까지의 인류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직·간접으로 내포돼 있다. 또한 청년, 장년, 노년에서의 괴테의 체험이 모두 배어들어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서 18세기 및 19세기 초 유럽인들의 집단체험과 문화기억이 종합적으로 용해돼 있다.

요컨대, 『파우스트』는 독일인들의 일상생활 속에 용해돼 현재까지도 작용하고 있는 작품이며, 우리 인간에게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불후의 고전이다.

II. 『파우스트』의 큰 구조

『파우스트』는 제1부와 제2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는 ▲학자 비극, ▲그레첸 비극, 제2부는 ▲헬레나 비극, ▲행위자 비극으로 크게 나뉘는데, 이중 특히 비극 제1부에는 청년 괴테의 삶이 직·간접으로 담겨 있다.

비극에 들어가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파우스트』라는 작품이 ‘신과 악마의 내기’라는 큰 틀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파우스트는 자신이 우주의 철리(哲理)를 탐구하는 데에 실패했음을 자인하고 자살을 하려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나 이른바 ‘악마와의 계약’을 맺게 된다. 악마는 파우스트를 위해 봉사하되, 파우스트가 어느 순간 “멈추어라, 아름답구나!”라고 만족감을 표하면 파우스트의 영혼을 가져가도 된다는 것이 계약의 주된 내용이다.

▲ 『파우스트』 내용 이미지

⑴ 그레첸 비극과 구원의 모티프(제1부)

제1부의 내용은 실은 아주 진부하고도 단순한 내용이다. 한 노학자가 자신의 연구가 인생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무력감에 절망해 자살하려다 마침 자신을 찾아온 악마와 계약을 맺고 자기 영혼을 담보로 젊음을 되찾는다. 그가 젊은이로서 처음 만나게 되는 처녀가 바로 그레첸이다.

양민의 딸로서 소박하고 청순한 그레첸은 귀공자같이 보이던 늠름한 청년 파우스트에게 호기심을 지니지 않을 수 없었다. 파우스트를 몇 번 만나면서 그레첸은 마음의 평정을 잃고 혼란스러워하다 자신도 모르게 파우스트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사랑에 빠진 그레첸은 욕망에 사로잡힌 파우스트의 권유로 수면제라면서 주는 약을 어머니에게 먹여 본의 아니게 어머니를 독살하고 파우스트의 아기를 갖게 된다.

한편, 파우스트는 악마의 도움으로 그레첸의 어머니를 독살하고 결투를 통해 그레첸의 오빠를 살해했으며, 그레첸을 욕망의 대상으로서 농락했고 악마에 의해 마녀들의 세계로 인도돼 온갖 음행(淫行)에 몰두했다. 그때 목에 빨간 끈을 걸고 있는(교수형에 처할 사형수임을 암시) 그레첸의 환영을 보게 되고, 자신의 진정한 사랑과 동경의 대상은 그녀임을 깨달아 옥에 갇혀 있는 그레첸을 구하러 간다. 하지만 그레첸은 옥을 함께 빠져나가자는 파우스트의 제안을 거절하고 자신의 죄를 달게 받겠다고 고집한다. 이에 파우스트는 할 수 없이 먼동이 트기 전에 악마를 따라 옥을 빠져나가는데 그 순간 천상에서 “구원됐노라”라는 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제1부가 끝난다.

여기서 ‘구원됐다’는 것은 그레첸을 두고 하는 말로서 그레첸의 인간적 과오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순정한 사랑이 하느님에 의해 용서받고 구원됐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파우스트』 제1부의 줄거리다. 여기서 확연히 드러나는 것은 청년 괴테의 사랑 체험과 그곳에서 연유하는 죄책감이 작품의 주요 모티프가 돼 있다는 사실이다.

⑵ 괴테의 인간적 성숙에 따른 2부의 필요성(제2부)

원래 『파우스트』는 1부로 끝나게 돼 있었다. 청년 괴테가 바이마르에서 장년 및 노년의 괴테로 성숙해 갔듯 『파우스트』도 시인의 연륜과 함께 성장해 제2부를 추가하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파우스트』 제2부는 일단 헬레나 비극과 행위자 비극으로 대별된다. 제2부의 제1막 제1장에서는 산상(山上)의 고지에서 오랜 망각의 잠으로부터 깨어나는 파우스트가 그려지고 있다. 그레첸과의 쓰라린 헤어짐과 자신의 크나큰 죄업에도 불구하고 파우스트가 다시 활동을 개시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죄업과 새로운 행위 사이에 망각의 잠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시인 괴테의 형식 논리이다.

파우스트는 이제 고전미의 상징인 헬레나를 현세로 불러내는 모험을 감행한다. 트로야로부터의 귀환길에 헬레나를 설득해 그녀를 중세 게르만의 성주 파우스트에게로 인도한다. 여기서 북방 게르만의 낭만주의와 남방 그리스의 고전주의 사이의 결합이 이뤄지고, 그 열매로 아들 에우포리온이 탄생한다. 그러나 에우포리온은 지상에 안주하지 못하고 위험천만한 공중비행을 계속하다가 공중곡예를 하던 중 추락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지상에 추락한 아들의 처참한 주검을 본 헬레나가 홀연히 사라지자, 파우스트는 헬레나와의 사랑도 덧없음을 통감한다.

아름다움의 추구로부터도 환멸과 회한밖에 얻지 못한 파우스트는 황제의 전쟁을 도와준 대가로 해안의 습지를 봉토로 받게 되는데, 그는 이로 인해 위대한 실천행위에 돌입해야 하겠다는 강한 욕구를 느끼게 되고 해안 습지의 간척사업을 시작한다.

이 사업의 과정에서 오두막과 교회, 보리수, 심지어 선량한 주민이던 노부부까지 불길에 타죽는다. 노부부가 타죽은 현장을 바라보며 파우스트는 후회하게 되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을 찾아온 ‘근심의 여인’에 의해 눈이 멀게 되고, 어느 날 “멈춰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는 말을 외친다.

파우스트가 죽은 후 그의 영혼이 넘어가려는 순간, 천사의 무리가 내려와 그의 영혼을 구제한다.

III. 영원한 여성성의 은총과 구원의 모티프

이 작품의 끝은 뜻밖에도 그레첸과 성모의 대화 장면으로 이어진다. 노래하는 천사들에 의해 높이 올라오고 있는 파우스트를 인도해 주고 싶어 하는 그레첸의 소망과 달리 영광의 성모는 그레첸을 데리고 한층 더 높은 영역으로 올라가 버린다.

여기서 인식해야 할 것은 그레첸과 성모가 다 여성이며, 그것도 온갖 고통을 다 겪은 끝에 마지막에 가서야 영광을 얻은 여성이라는 점이다. 이는 인내심이 없고 속도감을 갈구하는 자신들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온갖 죄를 저지르며 살기 마련인 남성들에게 적정(寂靜)의 영원성과 끝없는 용서, 사랑이 담긴 은총을 선사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여성성이라는 것이라는 기본적 해석이다.

이 작품은 한 마디로 괴테 자신의 삶과 그 속에서 자신이 불가피하게 저지르게 된 여러 죄업에 대한 참회의 책이라 할 수 있다. 괴테는 자기 인생에서 이룩한 모든 화려한 업적들에 늘 붙어 다녔던 이 부득이하게 얻게 된 죄업에 대해 속죄를 하고 이에 대한 은총과 구원을 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정리=한지은 기자

*본고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인문강좌’(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안삼환 서울대 명예교수가 ‘여섯 번의 특강으로 살펴보는 독일문학, 그리고 우리’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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