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험한 온천 '유스팅'에서 경험한 나가(龍)의 분노
영험한 온천 '유스팅'에서 경험한 나가(龍)의 분노
  • 독서신문
  • 승인 2015.04.0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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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빛' 몽골이야기 _ <3> 유스팅
 

[독서신문] 남편은 잘 낫지 않는 나의 위장병을 고치려면 영험한 온천 '유스팅'에 가야 한다고 했다. 청년처럼 날렵하고 건강한 시아버님도 30대에 폐병으로 죽게 되어 짐처럼 말에 실려서 갔는데 살아서 돌아왔다는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렸다는 유스팅 영험담은 수도 없이 많지만 온천은 광대한 무인지대인 헨티산의 깊은 협곡에 묻혀 있어서 쉽게 갈 수가 없는 곳이다. 헬리콥터를 타고 가는 특별한 방법이 아니면 차로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마을에서 말을 빌려 타고 사흘을 들어가야 한다.

▲ 유스팅으로 가는 길에

남편은 헬기를 타고 가겠다는 13명의 일행을 모았다. 우리 부부처럼 초행인 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유스팅을 다닌 경험이 있는 간단사의 노스님들과 노인들이 주를 이루었다. 지난 1996년 6월 마침내 유스팅으로 가는 헬기에 올랐다. 골동품처럼 낡은 러시아 군용 헬기가 정말로 떠올라서 움직이는 것이 신기했다.

눈과 얼음이 보이는 침엽수림을 지루하게 내려다보며 2시간 이상 날아가니 짙은 녹색 침엽수림 사이로 부드러운 연두색 초지가 보였다. 헬기는 헨티산의 속살 같은 초지를 암청색으로 가늘게 깨트리고 흐르는 시냇가의 작은 녹지에 내려앉았다.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가 꺼지자 반짝이며 흐르는 시냇물이 부드럽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묘한 물비린내도 났다.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무인지대라는 신비한 느낌에 가슴이 설레었다. 시냇물 옆으로 낡은 러시아식 통나무 오두막 몇 채가 온천이었다.

우리를 내려준 헬기가 떠나고 온천 옆의 시냇가에 그룹별로 텐트를 세우면서 1주일을 지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땔나무를 자르던 이시쟘초 노스님이 도끼날에 손을 베었다.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바로 옆에 흐르는 시냇물에 씻으면 될 텐데 손가락을 부여잡고 나를 불렀다. 시냇물을 한 컵만 떠가지고 당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피가 한 방울이라도 시냇물에 떨어질까 봐 극도로 조심하며 시내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더니 컵의 물을 입으로 머금어 조금씩 뿜어내면서 피를 닦았다.

스님은 맑고 성스러운 물속에만 깃들어 사는 나가(龍)들은 피 냄새를 제일 싫어한다고 하셨다. "이 성스러운 물에다 핏방울을 떨어뜨렸다간 나가들이 화가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몰라. 너를 잡아가버릴 수도 있다"고 하시며 장난스럽게 웃으셨다.

▲ 유스팅이 위치한 헨티산의 협곡

바로 그날 밤 유스팅의 나가를 아주 혹독하게 체험했다. 화창한 날씨는 찬란한 별밤으로 이어졌고, 모두들 편안히 잠자리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한밤중에 벼락 치는 소리에 놀라서 깊은 잠을 깼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폭포처럼 쏟아지는 빗물이 텐트 안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바람은 텐트를 송두리째 뽑아서 내 몸뚱이와 함께 날려버릴 기세였다. 고막을 때리며 연달아 터지는 천둥의 폭발음과 눈부신 번갯불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모두들 비에 젖어 추위와 공포에 떨며 날이 밝도록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빗줄기와 천둥이 잦아들자 유스팅의 나가들이 그렇게 분노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일행 중에 도시에서 온 뚱뚱한 젊은 남자가 비닐에 싼 날고기와 식료품들을 차가운 시냇물 속에 담가서 보관했다는 것이었다. 그가 담가둔 고기와 식료품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이 담가서 보관한 우유통까지 모두 싹 떠내려갔다.

"피 냄새가 나는 날고기를 담그다니…. 나가가 화가 난 거라고!" 고기는 길게 잘라서 텐트 안에 주렁주렁 널어두면 난로 연기에 저절로 그을려지고 건조시키며 맛나게 오래 먹을 수가 있는데 찬물에 담가 보관한다는 그 젊은 남자의 몽골인 답지 않은 발상에 충격을 받은 노인들은 공산 시절에 러시아에서 살다 온 젊은 남자들이 헬기를 타고 몰려와서 나가를 분노케 했던 사건을 서로 이야기했다.

지금은 모두 없어졌지만 온천물에는 작고 예쁜 빨간색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다. 환자의 피부를 뜯어 먹듯이 톡톡 건드려서 병을 고쳐주는 신기한 물고기들이었다. 어느날 술에 취한 남자들은 러시아에서 본 수족관을 만들겠다고 예쁜 물고기를 모두 붙잡았다. 분노한 나가들이 그날 밤부터 한 달 동안 끊임없이 비와 눈을 퍼부어서 1주일 후에 그들을 데리러 다시 오기로 한 헬기가 올 수 없었다. 공포에 질린 그 남자들은 식량이 떨어져서 거의 굶어서 죽을 뻔했다.

이번에도 나가가 화가 났는 지 온천욕을 하는 1주일 내내 비가 내렸다. 헬기가 우리를 데리러 오기로 한 날엔 비와 더불어 바람까지 심해지니 헬기가 오지 못했다. 다음날도 하루 종일 비가 오고 헬기는 오지 않았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식량이 떨어지기 전에 헬기가 와야만 했다. 무인지대의 신비감은 헬기가 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공포감으로 바뀌었다. 

/ 김선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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