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철학의 중간에 서서 평범한 이들에게 귀 기울이다
삶과 철학의 중간에 서서 평범한 이들에게 귀 기울이다
  • 한지은 기자
  • 승인 2015.03.2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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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많은 이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을 힘겨워한다. 세상만사 마음대로 되는 경우가 없다고 말한다. 늘 상처 입히는 수많은 크고 작은 번민들이 어김 없이 우리 앞길을 가로막아 힘들다고 말한다. 비단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 뿐일까. '세상천지 고통 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처럼 이런 번민은 많이 가진 자나 적게 가진 자나, 많이 배운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모두에게 공통된 현상인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단순할지 모른다. 세상의 규칙에 막무가내로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시선을 다잡아가는 것이다. 돛을 단단히 세운 배는 풍랑에 휩쓸리지 않는 것처럼 세상을 향한 시선을 정립한 사람은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찾게 마련이다.

저자 하진규(河振奎)는 스리랑카 빠알리(Pali) 불교대학에서 불교사회철학을 전공했다. 의약품 영업과 건축사 사무실을 거쳐 박물관 유물 연출에 따른 마케팅 및 도서관시설콘텐츠에 관한 일들을 했으며, 현재 거시적 한국음악 노하우 편을 작사·작곡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독특한 이력을 바탕으로 복잡다단한 세상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방대한 시편들 속에서 충분하게 풀어내고 있다. 부유하지 않아도, 명예롭지 않아도,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과 다름 없고, 똑똑하고 지적인 것이 아무리 좋다 한들 가까운 사람을 이해하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공감하고 나누는 것만큼 훌륭한 것은 없다고 저자는 전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산문집은 살면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보루는 세상을 바라보는 각자의 진실된 시선, 그리고 그것을 공감하는 자세에 있다고 말한다.

하진규의 이 시·산문집은 결국 '진실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련이 있다. 그는 원칙을 중요시하되 원칙에 함몰되지 않고 삶의 균형을 잡는 법을 다양한 시편을 통해 노래한다. 크지 않은 목소리로, 그러나 절절하게 노래하는 그의 육성은 시인 동시에 강인한 산문을 닮아 있기도 한데, 이런 형식은 결국 '시적 진실'은 추상적 관념이 아닌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삶에 있음을 말하는 듯하다.

이 책의 구성 또한 눈에 띈다. 총 8장으로 구성된 이 시·산문집은 1장은 정치학, 2장은 예술학, 3장은 인류학, 4장은 경제학, 5장은 국문학, 6장은 지리학, 7장은 국제학, 8장은 역사학으로 편성돼 있다. 다소 무거워 보이는 주제지만 각 장마다 주제에 걸맞은 필자의 관심사가 방대하면서도 흥미롭게 펼쳐진다. 특히 이 시·산문집의 대미를 '해인사'라는 '종시'로 장식한 것은 파격적이고, 신선하다. 한국 시사(詩史)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최초의 시도로, 그동안 '서시(序詩)'는 있었지만 '종시(終詩)'는 유례가 없다.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이들의 슬프고 아련한 이야기, 눈을 뜨면 마주치는 시대의 부조리와 그것을 논하는 시선, 동시에 아름답고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꾸준한 노력 등 이 책의 골격을 형성하고 있는 주요 시편들은 세상과 시대에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나 읽어볼 만하다고 권하고 싶다.

■ 모습없는 존재
하진규 지음 | 모아북스 펴냄 | 248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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