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정년'
'마음의 정년'
  • 독서신문
  • 승인 2015.03.16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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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에세이'
▲ 이하빈 작가

[독서신문] 얼마 전 휴일 저녁. 나도 모르게 몇 시간 동안이나 TV에 빠졌던 적이 있다. 용어 자체가 낯선 '마음의 정년'과 관련된 주말 특집 방송이었다.

'침체됐던 일본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했다고 떠드는 마당에 웬 마음의 정년이지'라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채널을 고정시켰는데, 제법 흥미진진해서 한참이나 넋을 빼앗기고 말았다.

30대, 40대, 50대, 심지어는 20대에도 찾아온다는 '마음의 정년'. 일종의 몸과 마음의 부조화 상태라고나 할까. '마음의 정년'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일본의 명문 국립대학인 교토대학 출신으로, 현재 작가로서 활발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는 구스노키 씨이다.

60대의 구스노키 씨는 대학 졸업 후 간사이 지방의 중견기업에 취직해 빠른 승진으로 주위로부터 큰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한신 대지진이 일어나 여러 사람들의 죽음을 직간접적으로 접하면서 삶의 본질을 생각하게 됐고, 급기야 우울증 진단까지 받았다. 그는 퇴사 뒤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을 쓰고, 강연을 하면서 '마음의 정년' 치유사가 되었다.

구스노키 씨는 이날 방송에 출연해 '새로운 자신 만들기', 아니 '진정한 자기 발견'을 강조했다. 회사에서 버티느냐 떠나느냐의 선택지를 놓고 고민이 들 때는 잠들어 있는 또 다른 자신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릴 때 놀던 고향, 학창시절의 앨범 등을 뒤지다 보면 원점에서 자신을 찾을 수 있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보이기 시작한다는 얘기다.

이날 방송에 소개된 인물들 중 인상적이었던 2명의 예를 보면 이렇다.

먼저 시청 공무원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귀이개 장인이 된 사람. 시청에서 근무하면서 늘 주어진 일만 하다 보니 자신의 의견이 점점 사라지고 불안감만 커졌다. 과장으로 진급한 뒤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렇다고 40대의 이직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어릴 때부터 공작에 소질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집에서 대나무를 깎아 귀이개를 만들기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에 수공품 대회에 자신의 귀이개를 출품해 최우수상을 받은 게 결정적 터닝 포인트였다. 그는 과감히 시청 과장직을 박차고 귀이개 장인의 길로 들어섰다. 전국의 유명 백화점에서 이벤트에 초청 상품으로 잇따라 전시될 만큼 그의 귀이개는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는 양복 대신 작업복을 입은 채 집 한 구석의 작업실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또 다른 한 명은 만담가로 변신한 전 신용금고 지점장. 출세 길을 달리던 그는 언제부터인가 중소기업의 융자 신청 자료에 대한 자신의 평가에 따라 그 기업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에 대해 심한 중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직장 야유회에서 사회를 보면서 유머감각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남들에게 웃음을 주는 만담가로의 변신을 생각했다. 지금은 매니저인 아내와 함께 병원, 양로원, 지역 문화센터 등을 다니면서 웃음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다. 수입은 훨씬 줄었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지옥 같은 출근길이 아니라, 왠지 즐거운 일이 있을 것 같은 행복한 예감이 든다고 한다.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내 자리'를 찾아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이들의 함박웃음이 방송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 도쿄(일본)=이하빈(르포 작가, 동경싱싱아카데미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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