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노도’의 문학과 청년 괴테 - 『젊은 베르터의 고뇌』
‘질풍노도’의 문학과 청년 괴테 - 『젊은 베르터의 고뇌』
  • 독서신문
  • 승인 2015.02.1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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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의> 여섯 번의 특강으로 살펴보는 독일문학, 그리고 우리
최근 대학의 상아탑 안에 머물던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강의하는 기관이 늘어나고 있다. 본지는 이같은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지속시키고 인문학 열풍을 더욱 확산시키고자 유명 석학들의 강연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 편집자 註

[독서신문] I. ‘질풍노도’의 문학

『젊은 베르터의 고뇌』(1774)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의 젊은 날의 작품으로서 ‘질풍노도의 문학’을 이끈 대표작이다. 이 문학사조는 1740년경부터 1785년경까지 약 40년 동안 지속된 독일 ‘계몽주의(Aufklaerung)’란 큰 사조 안에 끼어있다. 태생적으로 독일 계몽주의란 철학적 기반 위에서 태어났으면서도 계몽주의 문학의 경직된 형식과 당대 사회의 여러 인습과 질곡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일련의 독일 시민계급 출신의 청년들에 의해 주도됐다.

이 운동은 대국적으로 볼 때는 프랑스의 계몽사상가들, 그중에서도 특히 “자연으로 돌아가라!”를 외친 장 자크 루소의 자연법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독일 내에서 ‘질풍노도’의 담론을 처음 일으킨 사람은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였다. 그는 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형식을 외우고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민요, 전설 등에 담겨있는 자연스러운 민중 감정을 현재의 삶에서도 가슴으로 느끼고 체험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1770년 여행 중 잠시 슈트라스부르크에 머물게 된 헤르더가 당시 슈트라스부르크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하던 청년 괴테를 만나 자신의 이와 같은 문학적 담론을 털어놓은 것은 괴테의 초기 서정시와 앞으로 쓰이게 될 편지소설 『젊은 베르터의 고뇌』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 초판(1774)

괴테는 1749년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괴테는 프랑스대혁명(1789)이 일어나기 40년 전, 18세기 중엽 독일의 절대주의 군주사회에 태어났지만, 군주와 귀족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황제 직속의 자유시 프랑크푸르트 출신이다.

괴테의 태생은 시민계급이었지만 프랑크푸르트에서만은 실은 귀족이나 거의 다름이 없었다. 아들을 법학도로 키워 장차 독일 상류사회의 일원으로 편입시키려는 아버지의 소망에 따라 슈트라스부르크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기는 했으나, 당시 그는 법학 공부보다는 천사처럼 홀연히 나타난 목사의 딸 프리데리케 브리온에 마음을 빼앗겨 후일 『제젠하임의 노래들』로 문학사에 남게 된 아름다운 서정시들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차 크게 될 야심을 품은 청년 괴테에게 시골 교회 목사의 딸 프리데리케는 짧은 열애의 대상일 수는 있었지만 일생의 반려자는 될 수 없었다. 마침 법학 공부를 마친 괴테는 프리데리케와 슈트라스부르크를 떠나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게 되고, 곧이어 야심가였던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당시 제국재판소가 있었던 베츨라로 가서 법률가 시보(試補) 수업을 하게 된다.

II. 자연과 자연법

베츨라에서도 괴테는 고리타분한 법률가들의 법리와 인습의 세계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도시 주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취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거나 농부 아낙들과 시골 아이들을 가까이하면서 자유분방한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무도회에서 청순한 처녀 로테를 알게 되고 깊은 애정관계에 빠진다.

그러나 괴테는 로테가 이미 약혼자가 있음을 알게 된다. 로테에 대한 자신의 애정이 이뤄 질 수 없는 관계임을 인식하고 젊은 자신에게 또다시 들이닥친 위기를 이성적으로 잘 극복한 후 고향인 프랑크푸르트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그 귀가 길에서도 괴테는 잠시 들린 소피에 드 라 로쉬 부인의 댁에서 그녀의 딸 막시밀리아네의 새카만 눈에 반해 일시적으로 강렬한 연정을 느끼게 된다.

프랑크푸르트에 돌아온 괴테는 베츨라에서 함께 알고 지내던 친구 예루살렘이 유부녀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해 자살했다는 신문기사를 읽게 되는데, 이에 충격과 영감을 받은 괴테는 로테와 막시밀리아네에 대한 자신의 이루지 못한 사랑과 친구 예루살렘의 비극을 한데 뒤섞어 불과 4주 만에 한 편의 편지소설을 완성했다. 이것이 바로 『젊은 베르터의 고뇌』(1774)이다.

주인공 베르터를 절망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물론 이루지 못할 사랑 때문이었다. 그러나 로테에 대한 베르터의 사랑은 단순한 연애 이상의 그 어떤 절대적 가치를 포함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는데, 그 가치를 찾아보기 위해 베르터가 로테를 처음 만나고 또 사랑하게 되는 장면들과 계기들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베르터가 로테를 처음 보게 되는 것은 로테가 어린 동생들에게 빵을 나눠 주는 유명한 장면이다. 두 해 전에 어머니를 여의고 홀아버지 슬하에서 여덟 명의 어린 동생들을 돌보고 있는 로테의 모습은 베르터에게는 그야말로 순진무구한 처녀성과 희생적 모성의 전형으로 보였다. 귀엽고 활달한 아이들, 그녀의 여덟 남매들과 함께 있는 로테를 보는 것은 베르터의 순수한 영혼을 사로잡은 크나큰 환희 그 자체였다.

우리는 독일문학사에서 ‘질풍노도의 시대’(1767-1785)가 ‘계몽주의 시대’(1740-1785) 후반의 일부라는 사실, 즉, 계몽주의와 시대적으로 일부 중복되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질풍노도’는 합리주의적 계몽주의 정신과 출발을 같이 하고 있지만, 그 합리주의의 경직성에서 다시 감상주의적 방향으로 급선회한 매우 ‘인간적’인 운동이다.

따라서, 젊은 베르터와 로테가 처음 서로 만났을 때, 로테에게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 사이에 일어나는 친근감이나 사랑과 같은 감정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며, 인습과 도덕의 잣대로 함부로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이 당시 괴테의 생각이라고 볼 수 있다.

III. 시민계급의 탈출구 없는 정치적 상황을 대변

베르터도 사회규범과 습속을 완전히 무시하고 로테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무조건 관철시키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열병에 걸린 것과도 같은 자신의 사랑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로테가 있는 곳을 잠시 떠나 다른 곳에서 직장을 얻기도 했다.

베르터의 고백에서 우리는 단지 연애에서 좌절한 한 청년의 ‘슬픔’만이 아닌, 프랑스혁명을 15년 앞둔 시점(1774)에 한 독일 시민계급의 청년이 고루한 신분사회의 관행과 인습 하에서 겪는, 탈출구 없는 ‘괴로움’과 ‘고뇌’를 읽을 수 있다. 베르터의 이 ‘고뇌’는 동시에 청년 괴테의 동시대인들, 그 중에서도 특히 시민계급 출신의 청년들이 겪고 있던 ‘고뇌’이기도 했다.

소설 『젊은 베르터의 고뇌』가 독일 뿐만 아니라, 당시 전 유럽의 독자들에게 전에 없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푸른 연미복에 노란 조끼, 가죽 반바지, 목이 밖으로 젖혀지는 장화, 회색의 둥근 펠트 모자 등 이른바 ‘베르터식 복장’이 대유행을 하고, 수많은 유럽 시민들에게 모방 자살의 충동을 불러일으킨 것은 이런 점에서 전혀 우연이 아니다.

IV. 시인 괴테의 새로운 무대

괴테는 이 작품을 씀으로써 자신의 청년기에 들이닥친 인간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후일 괴테는 자신의 자서전 격인 『시와 진실(Dichtung und Wahrheit)』에서 이 소설의 창작을 통해 자신은 청년기의 위기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었으며, “마치 총고해(總告解) 성사라도 치른 뒤처럼 다시 즐겁고 자유롭게 된 느낌이 들었고, 새로운 삶을 살 권리가 생긴 것처럼 느꼈다”고 고백했다.

괴테는 이 소설을 통해 일약 범유럽적 시인이 됐다. 그 결과, 그는 1775년 그해 18세의 바이마르공국 군주 카를 아우구스트 공(Herzog Karl August, 1757-1828)의 초청을 받아 바이마르로 가게 되고, 7년 후인 1782년에는 귀족 칭호를 받기까지에 이른다.

/ 정리 = 한지은 기자

*본고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인문강좌’(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안삼환 서울대 명예교수가 ‘여섯 번의 특강으로 살펴보는 독일문학, 그리고 우리’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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