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날린 여간수 이르마 그레제
악명 날린 여간수 이르마 그레제
  • 신금자
  • 승인 2007.10.22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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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속의 여인들④
▲ 신금자[수필가 · 독서신문 편집위원]     ©독서신문
  긴 침묵으로 버티던 그녀가 오랜 회한의 시간을 더듬어간다. 그 운명적인 일이 주어지던 아주 오래전으로 서서히 눈빛이 흐려졌다. 사랑하는 딸을 위해 아버지가 그토록 말리던 여간수직을 고집했던 순간이 짠하고 황량하다. 이 존재의 가벼움, 어디서부터 틀어진 것인지 가늠조차 쉽지 않아 바루기도 황망하다.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또 과거에서 대과거를 들추어봐도 자신에 대한 어떤 이해보다 깊은 혼란과 좌절뿐이었으리라. 어쩌자고 강제 수용된 너무나 작고 가난한 영혼들 앞에서 발길질 자랑을 했더란 말인가.

 이르마 그레제(1923.10.7-1945.12.13), 그녀의 내면은 불안하고 불행하다.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게조차 낯선 존재가 되었다. 그녀는 나치 친위대의 요양소에서 보조간호사로 근무하다가 1942년에 레벤스브룩 강제수용소에서의 근무를 지원했다. 그 곳에서 1943년 3월에 신참 여간수교육을 마친 이르마는 유대인 대학살수용소로 잘 알려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배치되었다. 이르마는 갓 스물 어린 나이에도 억류자들에 대한 심한 발길질과 채찍질 등으로 악명을 떨쳐 그 해에 이미 3만 명에 이르는 유태인 여성 억류자들을 담당하는 최고위급 여간수가 되었다. 그녀는 늘 채찍과 권총 그리고 사나운 개까지 데리고 다니며 수용자들을 몸서리치게 했다. 그리고 많은 남성 억류자들에게 가학적인 성적학대를 한 것도 모자라 애인도 여럿 두었다. 애인의 면면도 그녀 못지않은 악명 높은 남자들이다. 그 중에는 조셉 멩겔레 박사와 비르케나우(제2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소장 조셉 크레머도 있었다.
 조셉 멩겔레, 나치스에 소속된 의사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행한 각종 끔찍한 행위들 때문에 ‘죽음의 천사’ 라는 별명이 더 어울린다. 과연 나치스의 의학박사답게 그는 가스실로 보내지게 될 희생자들 중에서 개인적 권한으로 40만 명을 선발 자신의 생체실험에 이용했다. 종전 후 브라질로 도망가는 데 성공, 이스라엘 정보국의 추적까지 따돌리고 1977년에 여생을 끝냈다. 소설같은 영화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의 소재 겸 주인공이 된 인물이지만, 기실 이르마에게는 ' 얼핏 스쳐간 얼간이' 일뿐 살풍경한 곳에서 어찌 의리를 바랐겠는가. 그녀는 한 가닥 희망으로 조셉 크레머가 소장으로 있는 베르겐-벨젠 수용소로 갔다. 그녀도 조셉 크레머도 똑같이 바람 앞에 등불이었던 처지로 독일의 패전으로 그들의 악령을 거두어갈 사형선고만 남은 셈이었다. 종전과 함께 영국군에 체포되어 크레머는 1945년 12월 12일, 이르마는 13일 오전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녀는 집행관이 얼굴을 덮어씌우려하자 번거로운 절차를 거절하며 내지른 마지막 말이 “빨리 끝내줘요”였다고 한다. 악몽에서 깨나듯, 조금이라도 빨리 헤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베르겐 벨젠수용소는 안네 프랑코가 사망한 곳이기도 하다. 한창 여릴 나이의 안네와 이르마, 두 사람은 아주 다른 길을 걸었다. 한사람은 나치스 정권하의 친위대에 자원하여 유대인의 처형이 극에 달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악명을 날리며 호의호식했다. 반면, 안네는 나치스 비밀경찰에게 체포되기까지 8명의 가족이 다락방의 책장 뒤에 2년 동안 숨어 지내야했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겪은 악몽의 순간들을 매일 기록한 <안네의 일기>가 종전 후 세상에 나오자 그 파급력이 대단했다. 그만큼 유대인들의 이승은 저승이나 다름없었다.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은 어디서 오는가?
우리는 보편적으로 자기가 기르던 병아리나 강아지가 죽는 것이 잘 모르는 사람의 사망 기사를 접할 때보다 훨씬 더 슬프다. 문득, 잊혀지지 않는 어떤 영상이 스친다. 역시 살인광시대의 아우슈비츠! 그 곳 여감수가 독가스실로 보내는 수용자들을 실은 트럭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있었다. 무감각한 듯, 태연하게 팔짱을 끼고 감독을 하던 이 여감수 앞을 트럭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잇달아 지나갔다. 그 먼지 사이로 갑자기 강아지 한 마리가 튀어 나왔다. 
       "안 돼!” 
 비명소리가 들렸다. 앳된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그 여감수였다. 즉시 모든 차량을 정지시키더니 한달음에 강아지한테 달려가 애틋하게 보듬어 안았다. 
      “에구, 불쌍한 것 하마터면......”
 그러고는 안심시키듯 강아지를 토닥이며 볼을 비벼댔다.

 아리따운 이르마의 모습이 여기서 겹쳐진다. 무엇이 그녀의 순수하고 따뜻한 열망을 앗아갔을까.
우리는 때때로 심장이 고장이 나나보다. 혹자는 무의식중에 마녀가 벽장 속을 뚫고 나와 끔찍한 사고를 쳤다고 할 수밖에 없다. 눈을 감는다. 그래도 생각이 미치지 않는다. 하긴 맑스주의는 인간 본연의 마음은 선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나 실제 인간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인간 본연의 마음은 선하나 순수함이 마음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르마도 히틀러 나치당의 순기능과는 별개로 관념조작에 동원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불 지피기 쉽고 타오르기 쉬운 도구 ‘민족’ 과 ‘나라’ 다. ‘이민족’을 아니, 좀 더 체계적으로 배타적인 종교를 만들기 위한 장치다.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마법이라고나 할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을 설치하는 엄청난 마법. 개미도 못 죽일 것 같은 어린 나이에 이르마도 끔찍한 마녀가 되었다. 처음에는 거저 나치스에 입당해서 충성을 다하고자 했을 테지만 그것이 불행의 씨앗이었다. 나치당 자체가 히틀러의 스탈린을 재고한 민족주의였다. 히틀러가 독학으로 쌓은 허약한 개념적 기반 위에 세운 거대한 야망을 쫓아서 그런 야수가 내면에 들어 왔고 지도자를 꿈꾸었다. 아주 냉정한, 인간적 감성을 잃고 자기도 모르는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데도 말이다. 의외의 그 매몰찬 태도와 표정과 걸음걸이가 마치 대단한 혁명인양 착각한 셈이다. 그러니 야수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나치 친위대가 그토록 많은 유대인을 천천히 혹은 빠르게 하나씩, 둘씩, 돌연 무더기로 죽이다 생체실험 가스실까지 만든 것은 히틀러의 이념에서 나온 기괴한 도덕적 명령의 결과가 아닌가. 그들은 잠시 작고 힘없는 사람들을 누르긴 했으나 행복하진 못했다. 끝내 닿을 수 없는 이상과 그로 인한 전쟁, 전쟁으로 인한 인간성의 파괴밖에 더 얻은 게 무엇인가.

 어느 역사를 보아도 절대 권력자는 자신이 만든 공포체제의 희생자가 됐다. 스스로 올무를 만드는 미련한 사람들 때문에 인류는 영원한 전쟁상태에 있다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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