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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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신문
  • 승인 2015.02.0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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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해설'

                                         허수경

 

신혼이라 첫날 밤에도
내줄 방이 없어
어머니는 모른 척 밤마실 가고

붉은 살집 아들과 속살 고분 며느리가
살 섞다 살 섞다
굽이 굽이야 눈물 거느릴 때

한 짐 무거운 짐
벗은 듯 하냥 없다는 듯
어머니는 밤별무리 속을 걸어

신혼부부 꿈길
알토란 같은 손자 되어 돌아올거나
곱다란 회장 저고리 손녀 되어
풀각시 꽃각시 매끄러진 댕기 달고
신혼 며느리보다
살갑게 돌아올거나

 

[이해와 감상]

삶의 고통과 진실의 의미 추구

 

허수경의 「단칸방」에서는 삶의 냄새가 물씬하게 난다. 어째서 이런 찌들 대로 찌든 가난 속에서 인간다운 존재의 흔적이 진하디 진하게 배어나오는 것일까. 한 입으로 말해 여기에는 ‘가난’ 그 이외에 꾸며대는 ‘거짓’이 없기 때문이다. 여하간에 가난은 삶의 멍에일 따름, 죄가 아니다. 그러나 퍽이나 괴롭고 늘 불편하여 세상에서 늘 몸부림치게 만든다.

서글프기 만한 어머니는 ‘신혼이라 첫날 밤에도/ 내줄 방이 없어/ 어머니는 모른 척 밤마실 가고’야 말았다.(제1연) 이른바 가난한 달동네 혹은 외떨어진 동리에서 비록 가진 것은 없으나 그래도 넉넉한 인심 덕분에 어머니는 밤 마을을 누비지만, 만약에 부자 동네 쯤에서라면 어머니는 어디 한 뺨을 비벼대고 낑길 틈조차 없어 가로등 그늘에 서서 뜬눈으로 기나긴 밤을 지새야만 했을 것이 아닐까.

신혼의 한 쌍이 ‘살 섞다 살 섞다/ 굽이 굽이야 눈물 거느릴 때’(제2연), ‘어머니는 밤 별무리 속을 걸어’(제3연) 마을을 돌고, ‘알토란 같은 손자 되어 돌아올’(제4연) 그 큰 기대에, 또는 ‘곱다란 회장 저고리 손녀 되어’ 나타날 그 재미만 생각하며 군침을 삼킨다는 시의 콘텐츠가 이 짤막한 시 속에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여기서는 가난이고 고통이고 삶의 시련 따위는 아들이며 며느리거나 어머니 그 어느 쪽이고 간에 벌써 꿈같이 까맣게 잊은 지 오래다.

‘붉은 살집’은 ‘불그레한 창살이 달린 집’이며, ‘속살 고분’(제2연)은 방언으로 ‘마음씨 고운’이다. ‘알토란’은 너저분한 털을 깐 둥근 ‘토란(土卵) 알’이다. 토란은 추석 때 맑은 장국 속에 무와 함께 넣어서 끓여 먹는다. ‘회장 저고리’(제4연)는 한복 저고리의 깃과 끝동 및 겨드랑이에 어여쁜 색깔의 장식용 헝겊을 댄 것을 가리킨다.

/ 홍윤기 국제뇌교육대학원 국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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