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궁 홍씨의 그림자가 살아 움직이는 곳"
"혜경궁 홍씨의 그림자가 살아 움직이는 곳"
  • 독서신문
  • 승인 2014.12.3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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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기행 '자유행복학교' _ <39> 경기도 화성 융릉-건릉 그리고 용주사
▲ 연무정 사대에 서서 적중(的中)을 노리고 있는 '자유행복학교' 회원들

[독서신문] 모든 것이 썰렁했다. '비어있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하지만 텅 비어 퀭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에 있는 융릉과 건릉은 그 아픈 역사만큼 허했다. 세상이 두려워서도 아니고 게으름을 피워서도 아니건만 이곳의 역사는 이제 막 내리는 눈에 발이 묶인 듯했다.

세상에 움직일 수 없는 것은 없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모두가 움직일 수 있는 법이거늘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은 거기서 그대로 붙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바로 곁에 있는 용주사도 정조의 '빽'을 배경으로 보경 스님이 진두지휘 7개월 만에 완공하고 사도세자의 혼을 달랬다는 전설에 못박혀 있었다.

혜경궁 홍씨는 자서전 마니아였다. 『한중록』은 사도세자의 참변을 중심으로 한 파란만장한 인생을 회고하고 있는데 혜경궁의 탄생 과정부터, 친정에서 자라나 궁궐로 들어오던 일, 궁중 풍속, 부친 홍봉한의 실각과 친정에 대한 누명의 억울함, 정조와 같이 융릉에 간 이야기, 친정 조카에 대한 기대와 경계 등을 하나하나 그리고 있다.

▲ 용주사 대웅전. 누군가가 "여의주를 빼앗고 싶다"고 했다.

『한중록』은 사실적인 입장에서 친정과 궁중에 대해 담담하게 가식 없이 쓴 수필체의 자서전이며, 극적이고 입체적이어서 소설과 같은 흥미를 일으킨다. 또 인생사의 무상함을 보여주며 권력을 덧없음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글이다.

혜경궁 홍씨가 사도세자와 함께 묻힌 융릉은 소나무와 참나무가 울창했다. 매표소에서 좀 걸어가다 보면 이정표가 보이는 갈라진 거리가 나타나는데 왼쪽이 건릉이고, 오른쪽이 융릉이다.

특이하게도 융릉의 혼유석(魂遊石, 혼령이 나와 쉴 수 있도록 능상 앞에 설치하는 직사각형의 돌) 전면에는 방위를 나타내는 '계좌(癸坐)'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보통 조선 왕릉에는 없는 형태라고 한다. 이곳의 파격은 곤신지에서도 나타난다, 홍살문에 들어서기 전, 왼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동그런 형태의 아름다운 연못으로 왕릉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물다. 이 역시 병풍석과 봉분 인석 위 연꽃봉우리 등과 함께 정조의 지극정성이 배어난다.

백천선생은 융릉 가까이 가다 금천교와 신도, 어도 성도 등에 대해 이리저리 설명해주신다. 그의 해박한 역사적 지식에 새삼 혀를 내두른다.

홍살문 앞 수라간과 수복방은 뭔가 허전한 한기를 몰고 왔다. 정자각 아래에 까치 한 마리가 놀고 있었는데 사도세자의 혼인가 싶다. 엄마 품에 안긴 것처럼 둥두럿하게 조성된 누런 능은 푸르른 하늘을 뒤로 안고 참배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 융릉. 홍살문 앞 수라간과 수복방은 뭔가 허전한 한기를 몰고 왔다.

융릉과 건릉의 테마는 '효심'이다. 정조가 아버지 장조(사도세자)와 현경왕후(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은 곳이 융릉이고, 정조와 왕비 효의왕후가 묻힌 곳이 건릉이기 때문이다. 살아서는 아버지의 무덤을 만들고 죽어서도 아버지 곁에 묻히고자 한 정조의 효심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무릇 효는 덕의 근본이라 하였으니 실로 효는 인을 이루는 기초이며 자비와 박애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또한 효는 충을 이루는 기초가 된다. 때문에 효는 덕도로 행하여야 하는 것이며, 부모와 자식 간에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 즉 천은(天恩)이 있는 것이므로 인륜의 근본을 이루고 있다.

활 한바탕 상거한 곳에 용주사가 있다. 여기도 정조의 효심을 잘 보여주듯 효행교육원이니 효행문화원, 호성전 등의 건물과 부모응중경판같은 것들이 있다. 이것은 부모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높은가를, 그 은혜를 어떻게 갚을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설한 불교경전이다. 부모의 은혜를 열 가지로 제시하고, 보은의 어려움을 여덟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이곳엔 본디 신라 문성왕 16년(854)에 염거화상이 창건한 갈양사(葛陽寺)가 있었으나 호란(胡亂)으로 소실됐다가 정조가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크게 다시 짓고 원찰로 삼은 곳이다. 용주사 대웅보전으로 오르는 계단의 소맷돌에는 구름무늬와 삼태극, 모란무늬가 새겨져 있다. 융릉의 정자각 계단의 소맷돌 무늬와 같다. 이는 용주사가 사도세자의 원찰임을 말해주는 증거가 된다. 보통 사찰의 계단 소맷돌에는 연화문이나 당초문이 새겨져 있다. 절을 들어가는 길 양쪽엔 이름 모를 돌판들이 서 있는데 각기 문장들을 가슴에 안고 있으며 행랑채 왼쪽 옆으로는 정조가 심었다는 회양나무가 아직도 은은하다.

잘 아시다시피 정조는 신필 김홍도와 친했다. 김홍도는 정조의 배려로 이곳에 머물면서 정조가 하사한 '부모은중경'을 그림으로 그렸으며, 이를 목판에 새겼다. 이게 용주사의 보물이다. 또 김홍도의 진두지휘 아래 조성된 대웅전 후불탱화는 '입신의 경지에 든 듯 묘(妙)하다'는 평을 듣고 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탱화에 서양화의 음영기법(태서법)을 도입한 것이라 한다. 대웅전 뒤 시방칠등각 내벽에 있는 3폭의 불화 중 가운데 것도 김홍도의 친필로 전해지고 있다.

용주사 앞 음식점인 '한국인의 밥상'은 수라상 받는 기분을 준다. 그러나 찬수에 비해 양이 너무 적어(5인상에 깻잎 4장) 아쉬움을 줬다. 지설표 양갱은 모두에게 예술혼을 불어넣어 줬다. 이날도 영소선생님은 가방 가득 일용할 양식을 싸가지고 오셔서 우리를 즐겁게 해주셨다. 미파선생님은 오랜만에 '동숙의 노래'를 부르셨는데 모두가 비극적 사랑의 결말에 비감해 하기는 커녕 파안대소했다. 연무정에서의 활쏘기는 정조를 생각나게 했는데 누군가가 활 부위를 가리키는 '고자'라는 말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바람에 킥킥대다 필자는 화살을 제대로 날리지 못했다.

녹수선생님은 이날 헌정시를 받으셨다. 늘 부족한 시를 기쁘게 받아주신 '자유행복학교' 여러분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눈부시게 화려했던 가을 단풍도 어느새 다 사라지고 겨울이 한복판에 왔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또 한 해가 가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불어난 나이만큼 더 현명해졌을까? 노인의 지혜가 남긴 물음이다.

/ 글=만청 주장환, 사진=은봉 최병학, 지설 고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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