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인간 세상, 그 멀고도 가까운 인연
천국과 인간 세상, 그 멀고도 가까운 인연
  • 한지은 기자
  • 승인 2014.12.2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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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한지은 기자] 신을 믿든 믿지 않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후, ‘천국’이라는 이상향을 꿈꿀 것이다. 인간은 절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천국에도 돌아가는 ‘시스템’ 정도는 구축돼 있지 않을까?

‘30세 이하 30인’에 연속 두 차례 오를 만큼 재기를 발산하고 있는 미국의 신세대 유머 작가 사이먼 리치는 기발한 설정, 넘치는 유머, 뭉클한 감동과 유머리스트 특유의 대담하고 발칙한 상상력으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 천상의 세계를 끌어내려 거룩함 대신 지극히 인간적인 설정을 채워 재구성한다.

천국 주식회사 최고 경영자는 하느님, 직원은 천사들이다. 거기에도 지상의 회사를 방불케 하는 조직이 있고, 일 중독 천사들의 야근이 있고, 무사태평한 CEO, 즉 하느님이 있다. CEO는 요즘 인간 세계의 관리라는 핵심 사업은 안중에 없고 말도 안 되는 신사업 구상에 정신이 팔려 있다.

주인공 천사 크레이그와 일라이자는 천국 주식회사의 기적부 산하 종합 웰빙과 직원들이다. 소소한 기적들을 생산해 인간 세계의 수많은 문제들을 땜질하려 애쓰고 있지만 늘 역부족이다.

최근 기도 수취부에서 기적부로 승진해 온 의욕 충만한 여자 천사 일라이자는 산더미 같은 인간의 기도문을 방치한 채 딴짓만 하고 있는 하느님에게 직언을 날리고 만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녀의 쓴소리에 오히려 엉뚱한 결단을 내린다. 안 그래도 골치만 아프고 소득은 별로 없었던 인류 사업을 접기로 결정한 것이다. 결국, 지구 종말 30일 전이 선포되고, 이를 만류하기 위한 천사들의 눈물겨운 분투가 시작된다.

저자는 작품 전편에서 번뜩이는 위트를 선보인다. 거룩함을 벗어던진 천국 주식회사의 내부는 더 희극적이다. 작품의 주 무대인 ‘기적부’를 중심으로 ‘눈송이 디자인부’나 ‘공작새 생산부’, ‘화산 분출 억제부’처럼 기상천외한 업무 부서들이 등장한다.

또, 책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어딘지 조금씩 모자란 듯한, 그래서 하나같이 애정이 가는 캐릭터들이다. 하느님도 예외는 아니다. 악의는 없지만 무신경하고, 자기 생각에 빠져 말귀를 잘못 알아듣기도 하는 등 허점투성이다. 모두 평범한 우리, 인간을 닮았다. 책의 제사로 인용하고 있는 성경 속 창세기의 한 구절 “하느님이 자기 형상 곧 하느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니”에 대한 작가의 역설적인 해석이다.

하느님은 곧, 비즈니스 매니저들이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인간에게 할애했다. 하느님은 그들의 스포츠와 전쟁, 노래, 그리고 그들의 발견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인간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마음을 쓰게 되었다. 하느님은 인간들의 행성을 유지하고 그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도록 부서 하나를 통째로 개설했다. 그리고 전에 인간이었던 존재들을 천사로 채용했다. 이들의 기억은 모두 지워졌고, 새로운 신원을 부여받아 인류를 돕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그놈의 인간들에게는 뭔가 알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그들은 하느님 자신을 연상시켰다.
                                                                                                    -본문 69쪽

이렇게 빈틈 많은 인물들이 서로 어우러져 빚어내는 소동이 단지 웃음만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빈틈 많은 존재들이 서로 껴안으며 만들어 내는 화음이 이 작품의 메시지다. 그 화음은 바로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그 무엇” 바로 사랑이다.

『천국 주식회사』는 하느님과 천사들이 전면에 등장하지만 전혀 종교적인 소설은 아니다. 종교 비판보다는 인간 세상의 풍자를 겨냥하고 있어, 우상 파괴는 있을지언정 신성 모독은 느껴지지 않는다. 희화화된 하느님도 매력이 넘친다.

신의 영역으로 돌려놓았던 지상의 불가사의한 일들에 대한 흥미로운 해명들을 듣는 것도 책을 읽는 재미의 하나다. 분명 넌센스인데도 절묘하게 앞뒤가 맞아떨어지는 해석이 제대로 시선을 끈다. 천국에 가기 위한 조건, 지구를 만든 목적을 작품 속에서 하느님에게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도 더해진다.

주거니 받거니 맞물리는 대화의 동선에 인물들의 개성이 선명하게 그려지며, 기존의 소설과는 다른, 재미있지만 가볍지 않게 또 다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작품이다.

■ 천국 주식회사
사이먼 리치 지음 |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펴냄 | 320쪽 | 1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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