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영 수
문어벌 갈래길 앞에서
색각에 잠겨 잠시 눈감은 겨울나무
바람 부는 대로 몸마저
소용돌아에 휘말리지 않기
눈 주는 대로 마음 뺏겨
올라가는 길 놓지지 않기
잠시잠깐 사이 지나가는 파노라마
짧고도 긴 호흡 사이
사랑하는 이들의
기뻐하는 눈길 흘리지 않기
허름한 겨울 담장 넘어
봄햇살 미소 머금고 기다리고 있네
[이해와 감상]
겨울 눈속 시련 극복과 희망 메시지
추영수 시인은 1960년대 초에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한국문단에 데뷔한 시인으로서 오늘도 그의 탁월한 서정미 천착의 시세계 속에서 작품활동을 잇고 있다.
인간의 삶과 진실속에서 값진 작업과 거룩한 신의 가호를 기원하고 있는 시인 추영수. 그는 이 겨울눈 속에서 ‘바람 부는 대로 몸마저/ 소용돌아에 휘말리지 않기// 눈 주는 대로 마음 뺏겨/ 올라가는 길 놓지지 않기// 잠시잠깐 사이 지나가는 파노라마/ 짧고도 긴 호흡 사이// 사랑하는 이들의/ 기뻐하는 눈길 흘리지 않기’를 근엄하게 기원한다.
필자는 「겨울나기」를 통독하며 시 ‘겨울나기’의 모티프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를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다. 문득 떠오른 것이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1871~1945)의 명언이었다. “시에서 첫행은 신(神)이 써주고 둘 째 행부터는 시인 스스로가 쓴다는 말.” 그러면서 떠오른 것은 [겨울나기] 5연의 ‘사랑하는 이들의’는 곧 신이 써주신 시의 첫행이고 이어서 추영수 시인이 쓴 것은 ‘기뻐하는 눈길 흘리지 않기’라는 제2행이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추영수는 ‘허름한 겨울 담장 넘어/ 봄햇살 미소 머금고 기다리고 있네’라고 귀결지었다. 시인의 안온한 겨울나기를 기원하며.
/ 홍윤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