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과 죽음이 알려주는 것은…
늙음과 죽음이 알려주는 것은…
  • 한지은 기자
  • 승인 2014.12.12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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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한지은 기자]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언제나 대가 없이 헌신적이었던 부모님. 언젠가는 우리가 그들의 희생을 갚아야 할 날이 온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처음 사랑했고 늘 내 옆에 버팀목으로 있어줄 것 같았던 그들을 먼저 보내야 할 순간 또한 올 것이다.

이 책은 어느 날 갑자기 아프기 시작해 급격히 허물어진 아버지로 인해 죽어가는 인간의 시간을 적나라하게 경험한 아들의 기록이다. 현대사회의 인간군상을 예리하게 묘사하는 작품을 주로 써왔던 저자 이상운은 아버지의 마지막 여정에 기꺼이 안내자로 나서 그간의 모든 감정과 사회적 문제점들을 이야기한다.

갑작스레 건강이 악화된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저자와 가족들은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을 찾지만, 병원에 대한 믿음으로 마음을 놓는 것도 잠시, 죽어가는 인간을 ‘관리하고 길들여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의료환경 속에 아버지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종합병원’이라는 이름을 달고서는 정작 육체와 정신이 동시에 무너져가는 노인을 종합적으로 진단하지 못하는 실상에 허탈함과 좌절감을 느낀 그는 불편한 병원 침대 위가 아닌 ‘당신 집의 당신 이부자리’에서 익숙한 ‘삶의 터전과 감정적 유대’ 속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직접 아버지를 돌보기로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대부분의 경우 노인이 병들어 스스로 유지하는 게 어려워지면 즉각 요양병원으로 보내버린다. 가족은 그곳 시스템에 모든 것을 일임해버리고 관심을 떼버린다. 그러나 그처럼 삶의 마지막에 이르러 죽음을 앞둔 병든 노인에게서 그의 오래된 감정적 유대를 단번에 절단해버리는 방식은 참으로 만족스럽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잔인한 짓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어서, 다들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해서, 그러한 방식이 가지고 있는 잔인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본문 127쪽

그는 이 특별한 3년 반의 여정을 통해 노화, 질병, 죽음의 고통으로 무너져가는 인간의 애처로운 모습과 그 속에서 발하는 아버지와의 애잔한 교감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더불어 죽어가는 자의 곁을 지키는 일의 육체적 정신적 괴로움을 비롯해 사회적 제도적 열악함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우리 모두에게 언젠가는 닥칠 그 죽음의 과정에 대비해 무엇을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지 현실적이고도 날카로운 사유를 보여준다. 이와 비교해 빈집을 가정집으로 개조한 공간에서 노인들을 돌보는 일본의 간병 시스템을 소개하면서, 인간적으로 늙고 죽는 일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제도적 뒷받침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무너져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며, 과연 인간이 존엄을 지키면서 죽을 수 있는가 하는 고민에 빠진다. 죽음이 결코 순간의 일이 아님을 일깨우며 늙고 죽어갈 자신의 모습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둘 것을 권면한다. 우리 사회 전체가 늙고 죽어가는 인간의 존엄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고 성찰해야 할 시기가 왔음은 자명하다. 아버지와의 마지막 3년 반을 통해 배운 인간의 늙음과 죽음에 대한 가르침은 도통 말이 없던 아버지가 그에게 남긴 최고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
이상운 지음 | 문학동네 펴냄 | 256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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