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 일탈을 품다
평범한 일상, 일탈을 품다
  • 한지은 기자
  • 승인 2014.12.1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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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한지은 기자] 자신은 평범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자부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인생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법. 평범하고 소소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미래에 어떤 어마어마한 사건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상은 마치 핀 뽑힌 수류탄이 터지길 기다리는 시간이다.

흘러가는 일상을 재조명하는 농밀한 심리묘사의 대가 가쿠다 미쓰요는 범죄와 일탈에 빠져들어 가는 평범한 주부의 어두운 내면을 집요하게 추적한 서스펜스를 탄생시켰다. 숨 막힐 듯 팽팽한 묘사와 전개로 일상의 균열이 어떻게 범죄로 치닫게 하는지 대담하게 포착해내며 범죄라는 환부를 통해 일상의 섬뜩한 현실을 들여다보게 한다.

소설은 고객의 돈을 조금씩 착복하다 급기야 거액의 횡령으로 이어져 해외로 도주하게 된 41세 주부이자 은행 계약직 여성 우메자와 리카의 회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그녀를 기억하는 주변인물 3인, 여고시절 동창생 오카자키 유코, 요리교실 친구 주조 아키, 옛날 애인 야마다 가즈키의 시점에서 리카에 대한 각자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리카는 왜 범죄를 저질러야 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각각의 인물들은 자신의 삶도 불만족스럽다는 사실을 환기하게 된다.

순수한 정의감을 갖고 자라온 우메지와 리카는 회사원인 남편과 무미건조한 삶을 이어가다 친구의 권유로 은행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색하기로 유명한 노인의 손자 히라바야시 고타를 만나면서 그녀의 삶이 급변한다. 리카는 가난한 고학생 고타를 동정한 나머지 자신이 관리하던 고객들의 돈에 손을 대기 시작하고 순진한 마음에 시작된 저축상품 위조는 걷잡을 수 없이 계속된다. 자신이 어디에 어떻게 돈을 쓰는지, 돈을 쓰는 게 좋은지조차 무감각해진 순간, 리카는 더 이상 자신이 있을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저자는 자기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리카의 심리와 함께 리카 주변 3인의 일상에도 드리워진 자기혐오의 감정을 교차 대비시키면서 시종일관 초조한 불안의 정서가 소설 전체를 지배하도록 이끈다.

80년대 말부터 일본 경기의 흐름을 따라 이동하는 스토리는 버블 경제의 막바지, 부동산 가격이 마지막으로 치솟을 무렵에 벌어지는 갈등을 리카의 은행 업무를 통해 투영한다. 점점 쇠락해가는 경기 속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청년들, 사소한 빈부의 격차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여성들의 심리적 갈등이 마치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듯 선연하게 드러나는 소설이다.

■ 종이달
가쿠다 미쓰요 지음 | 권남희 옮김 | 예담 펴냄 | 356쪽 | 1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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