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꿀 수 없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꿈꿀 수 없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 한지은 기자
  • 승인 2014.11.2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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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한지은 기자] ‘잠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는 말이 있다. 한 달 동안 밥을 먹지 않을 수는 있어도 잠을 자지 않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잠은 우리 몸의 휴식이며 우리의 생활을 돌리는 원동력이다.

무려 7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밤낮으로 활동할 수 있는 동물이 있다. 북미 지역의 철새인 흰정수리북미멧새는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북미 서부의 대륙붕 상공을 이동하는 내내, 낮엔 먹이를 찾고 밤에는 비행하면서 그야말로 ‘밤낮없이’ 일한다. 거의 초능력에 가까워 보이는 이런 능력을 인간도 지니게 된다면 어떨까.

시대는 이미 ‘잠의 종말’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4/7(Twenty-four seven)’ 체제, 즉 ‘하루 24시간, 주 7일 내내’ 돌아가는 산업과 소비의 시대가 이미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정보통신상의 극단적 테크놀로지 발달에 힘입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제약 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고,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잠과 휴식은 불필요한 것이 됐음은 물론, 체제의 안정과 영속을 좀먹는 이단적인 것으로까지 치부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책은 이처럼 잠과 꿈, 휴식이 유폐된 후기자본주의사회의 살풍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더욱 심화된 소외 현상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저자 조너선 크레리는 24/7 체제가 폐기하고 있는 ‘시간성’에 주목하며 이야기를 본격화한다. 일주일과 개별 요일들, 주말과 휴일, 혹은 계절적 휴지기 등 시간적 분절의 전통은 아직 지속되고 있지만,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소비와 유희의 일상은 이미 그런 분절적 시간의 제약을 무화했다.

더불어 잠은 24/7 체제에서 그 형태의 왜곡과 변질을 겪는다. 물론 사람들은 여전히 잠을 자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하겠지만, 잠은 더이상 과거처럼 필연적이거나 자연적인 관념에서의 잠이 아니게 된다. 그저 생리적인 필요에 의해 가변적으로 ‘관리’되는 기능에 불과한 것이다.

예를 들어 현대인에게 필요한 ‘수면제’의 경우를 봐도 이것은 진짜 잠이 아닌 잠과 유사한 상태에 이르도록 화학적으로 조절된 생리현상이다. 잠을 자다 말고 일어나 모바일 기기를 손에 쥐고 메시지와 정보를 확인하는 현대인들의 행동은 마치 ‘온?오프 모드’에 따라 완전하게 꺼진 상태가 아닌 ‘수면 모드’에 들어간 모바일 기기와 동일하게, 완전한 수면이 아닌 일종의 ‘절전 대기 상태’에 있는 것과 비슷하다.

잠은 후기자본주의의 24/7 체제 속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끝내 체제에 저항해 그 명맥을 유지할 일말의 본성은 지니고 있다. 혹 이러한 잠을 소멸시킬 수 있다면, 인간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잠을 붙잡아야 한다 생각하는가? 아니면 미래의 생산성을 위해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 24/7 잠의 종말
조너선 크레리 지음 | 김성호 옮김 | 문학동네 펴냄 | 216쪽 | 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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