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울타리에서 한 걸음 내딛다
사회의 울타리에서 한 걸음 내딛다
  • 한지은 기자
  • 승인 2014.10.1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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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한지은 기자] 매일 아침 꽉꽉 들어찬 지하철. 모르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다닥다닥 틈도 없이 직장으로 실려간다. 잠이 덜 깬 사람,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사람, 멍 때리는 사람 등 각자 다른 행동을 하고 있지만 그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하나의 공통점 ‘굳은 표정’이다. 그들의 머릿속엔 비슷한 생각이 박여있을지도 모른다. ‘부디 오늘도 무사히 버틸 수 있기를’.

왜 우리는 값진 시간 ‘현재(present)'를 ‘버티면서’ 살아야 하나.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 노래가사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듯 모두에게 당연시 여겨지지만 묵인되고 있는 사실이다. ‘어쩔 수 없다, 다 그렇게 사는 거다, 먹고살려면 버텨야 한다.’ 힘들지 않은 일이야 없다지만 왜 모두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하루하루를 연명해야 할까. 즐겁게, 자신이 원하는 일을 맘껏 하면서 산다는 것은 마치 저 너머의 꿈이거나 몽상가들의 상상 속에나 있는 파라다이스다. 우리 사회는 이미 손쓸 수 없는 무기력의 틀에 갇혀 버렸다.

이반 일리치는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이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랄한 반론을 제기하며 인간이 지닌 자발적 행동 능력에 대한 강력한 변론을 내놓는다. ‘20세기의 가장 탁월한 사상가’로서 여러 학문을 넘나들며 현대의 상식과 진보에 근원적 도전을 던진 그는 인간 위에 제도가 군림하는 현대 사회를 전방위에서 공략하고 그 근본 전제를 허물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를 쓸모없게 만드는 이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수행하는 숨은 역할이 무엇인지 밝혀내면서 지금껏 누구도 제기하지 못한 ‘시장 의존사회’의 근본 문제를 지적한다.

우리에게는 모두가 알지만 입 밖에 꺼낼 수 없는 말이 있다. 취업은 점점 불가능해질 것이며 설사 취업이 된다 해도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편에서는 모두가 직장을 구하는 게 꿈이지만, 한편에서는 모두가 직장을 그만두는 게 꿈이다.

현대인은 감옥에 갇혔다. 꼬박꼬박 끼니가 제공되는 안락한 감옥문을 여는 순간 플러그처럼 꽂혀 평생을 그 안에서 맴돌아야 한다. 그 결과 우리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가 됐다.

이 사회는 ‘언제든 내 일을 할 수 있는 극소수’와 ‘어디서도 내 일을 할 수 없는 대다수’로 양극화됐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내게 용기가 없어서도, 여유가 없어서도 아니다. ‘생산에 필요한 도구가 직장에서만 얻도록 사회의 기반시설이 조직’됐기 때문이다.

현재는 모두가 입을 모아 위기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반 일리치에게 위기는 다른 의미다. 원래 그리스어로 전환점을 의미했던 위기(crisis)는 우리에게 선택의 순간일 수 있다고 넌지시 희망을 던진다. 우리에게 진정한 위기란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스스로 만든 새장에 갇혀 살았다는 걸 깨닫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기적의 순간이다. 이 책은 이 거대한 새장의 구조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동시에 우리에게 삶의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그렇게 계속 군중 속의 익명으로 살 것인가?”

■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이반 일리치 지음 | 허택 옮김 | 느린걸음 펴냄 | 145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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