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기억 간직하고 있는 '한민족 삶의 근거지'
선사시대 기억 간직하고 있는 '한민족 삶의 근거지'
  • 독서신문
  • 승인 2014.09.23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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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기행 '자유행복학교' _ <35> 안양천변
▲ 철새보호구역에서는 이스터섬의 석상들처럼 하늘 바라기를 하고 있는 철새들을 볼 수 있다.

[독서신문] 양화교 밑을 지나 영등포 쪽으로 걷는다. 이 길을 쭉 가면 광명과 안양이 나온다. 조금 걷자 나그네의 발소리를 들은 맹꽁이들이 더욱 요란하게 울어대는데, 그 소리에 외로이 서 있던 노란 들꽃이 놀란 듯 고개를 숙인다.

양화교는 안양천 입장에서 보면 매우 의미 있는 다리이다. 합수부로 가는 마지막 다리이기 때문이다. 합수부는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철관포(鐵串浦)'라고 불린 곳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서울에서 부평이나 인천, 그리고 강화로 가는 큰 길 옆 나루터였다. 이 지역은 일대가 매사냥터로 유명하여 세종대왕도 가끔 이곳을 찾았다고 『조선왕조실록』은 전하고 있다.

'(김포 통진에서 매사냥을 하고 귀성길에) 낮참으로 철관포에 머물렀는데, 술자리를 베풀고 효령대군 이보 등이 입시하였다. 그 길로 낙천정에 돌아왔다. 날씨는 춥고 길은 험하여 시위하던 군사 중에 미처 따라 오지 못한 자가 많았다.'

또한 세종대왕의 형이었으나 세자 자리를 세종에게 넘겨주었던 양녕대군도 태종 임금이 한 눈을 파는 사이에 세자전을 빠져나와 '절친'들과 이곳에서 매사냥을 즐기기도 했다고 한다.

6·25 때는 양화교 인근 안양천 제방을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삼각지 인근에 주둔하다 퇴각한 수도사단 제18연대, 일명 백골부대 제3중대가 1주일간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하여 반격의 시간을 벌게 해준 기념비적인 곳이기도 하다.

 

우리 국토 어디에든 우리 선조들의 삶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곳이 있겠느냐마는, 안양천 역시 선사시대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풍부한 물이다. 세계 4대문명 발상지가 모두 강변에 위치하고 있듯 우리 한강도 그렇고 안양천도 그러하다. 물이 있으면 논과 밭의 경작이 가능하고 과수나무나 가축을 키우기에도 좋았다. 그리하여 안양천은 풍족한 먹을거리로 우리 한민족 삶의 근거지 역할을 해왔다.

안양천은 의왕, 군포, 안양, 광명, 그리고 서울의 금천구, 구로구, 영등포구, 양천구 등을 두루 지난 뒤 성산대교 서쪽 염창교 부근에서 한강과 합류하기 때문에 한강 서남부 지역을 아우르고 있다. 삼성산에서 발원하는 하천과 백운산에서 흘러나온 학의천과 군포시를 흐르는 산본천 등의 지류가 안양시 석수동에서 합류해 북쪽으로 흐르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유역은 다양한 경관을 가지고 있다. 유역은 빗물이 모여 작은 실개천을 이루고 하천으로 강으로 점차 커져가면서 생긴 물길들이 모여드는 전체 범위를 말하는데 산과 강을 경계로 하는 자연의 행정구역이다. 안양천은 학의천, 삼성천, 수암천, 삼막천, 오전천, 산본천 등 크고 작은 지천을 가지고 있다. 또 다양한 석기와 청동기 시대 유적인 평촌동의 지석묘, 관양동의 주거 유적지 등도 이 지역의 발자취를 더듬게 해준다.

조금 걸어 올라가면, 아이들을 위한 교통 교육장이 보이고 야구장으로 주로 사용하는 넓은 운동장이 조성돼 있다. 한 1km를 포플러며 버드나무 그늘을 따라 가다 보면, 양평교가 보이고 이대목동병원으로 가는 다리가 나타난다. 강 중앙에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다리 중간쯤에 서서 양안을 감상하거나 흐느적거리는 수초 사이로 헤엄치고 있는 고기들을 바로 눈앞에서 보면서 마음 닦기도 겸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산악지형이 발달되어 세계의 하천들에 비해 유역면적이 좁은 편이라고 한다. 남한에서는 한강이 가장 유역면적이 넓고, 세계적으로는 아마존강이 가장 넓다. 유역면적이 넓으면, 하천에 흐르는 물의 양이 연중 고르고 유역에 삼림이 발달하여 가뭄과 홍수의 피해가 적다는 것이 정설이다.

 

안양천은 큰물만 만나면 피해를 크게 입는 곳이었다. 1970년대는 산업화, 도시화에 따라 물이 풍부한 안양천변에 대규모 공단이 조성됐고, 안양천으로 유입된 공장 폐수와 생활하수로 인해 생명이 사라진 하천이 됐다. 그러던 안양천이 아직은 만족할 만큼은 아니지만 많이 변했다. 1999년 안양천 유역 21개 민간단체가 모여 '안양천 살리기 네트워크'를 만들어 시민운동을 확산시킨데다 안양천 유역 13개 기초자치단체장으로 구성된 수질개선대책협의회가 힘을 보탠 덕분이다.

마치 나무에 나이테가 쌓이는 것처럼, 세월의 족적은 증거를 남긴다. 안양천은 오래된 여정 속에 그 피곤함을 풀어놓는 듯 힘들어 보였다. 아직도 시커멓게 내려오는 하수며 각종 오염 물질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러나 고단함은 안양천만이 아닐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다 그러할 것이다.

철새보호구역에서는, 그런 고단함이 묻어있는 흰뺨 검둥오리로 추정되는 한 무리의 새들을 볼 수 있었다. 하천 한가운데 모래무더기가 쌓인 곳에 앉아서 주변의 작은 소란에 전혀 요동도 하지 않고 먼 하늘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이스터섬의 석상들 같았다.

둑방에 조성된 꽃길은 안양천을 걷는 재미를 만끽하게 해준다. 신정1교 인근 넓은 공터에서 조성해놓은 자연학습장에서는 노랑줄무늬 비비추, 하늘매 발톱, 왕애주기, 하늘 용담, 후룩스매혹, 야스타 춘추, 매직 카펫, 노랑 숙근 코스모스처럼 이름도 진귀한 꽃들을 마음껏 만날 수 있다.

신정 1교에서 바로 가면 목감천 시점인 구일역이 나오고 이곳을 지나면 금천 벚꽃길과 나란히 둔치길이 이어진다. 기아대교를 지나 직진하면, 안양천과 학의천이 만나는 합수부가 나온다. 합수부에서 직진하면 안양천, 왼쪽으로 꺾으면 백운호수로 이어진 학의천 길이다. 안양천은 삼천리 자전거와 대나무 숲, 의왕시청 부근을 지나 의왕소방서 앞 고천 제3교로 이어진다.

/ 글 = 주장환 작가, 사진 = 은봉 최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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