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라
가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설움과 고통의 땅
훨훨 지나서
물 고이면
꽃을 피우는
뿌리 깊은 들판까지
가보는 거야
두 팔로 막아서면
외로운 악사의
피리소리가 되어서라도
물 고이면
꽃을 피우는
뿌리 깊은 들판까지
가보는 거야.
[이해와 감상]
심성속에 부각되는 삶의 존재감 추구
이 작품은 로맨틱한 서정의 음률속에서 뜨거운 인간 심성의 정서적 존재감을 독자에게 실감시키는 보기드문 가품이다. 인간 최고의 존재감은 하늘과 땅사이에서 타인인 서로가 사랑하며 살고 죽어간다는 것 같다.
여기서 독자에게 떠오른는 것은 이 세상 지구인 최초의 고대 시작품이다. 지금부터 3천 수백년 전(BC 16~13C 경)에 ‘바빌로니아’ 언어로 점토판에 새겨진 인간 최초의 서사시 [신들의 전쟁]의 ‘제1서판’에는 “하늘이라고 이름 불러지는 것의 위에 없을 때/ 또한 땅이라 이름 불러지는 것의 아래에 없을 때”라고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과연 무슨 소린가. 하늘도 땅도 없었던 아득한 원초(原初)의 세계에는 단지 남녀 한쌍만이 세상을 지배했다는 뜻이다. 이런 인간계 최초의 시는 인간의 논리가 아닌 인간의 감각이라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시에서 찾고 있는 것은 거기 쓰여진 것의 설명으로서의 미닝즈(의미)가 아니고 거기 담겨져 있는 순수한 존재 감각의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
쉽게 말하자면 최유라 시인의 ‘강물’은 화자가 시를 논리적 설명으로서 풀려하지 않고, 이 시를 음미하면서 마음속에 떠오르는 존재감 만을 꾸밈없이 수용하면 그것이 가장 성공적인 접근이라는 고차원의 세계를 강물에 잔뜩 섞고 있다. 시는 결코 산문적 논리가 아닌 감수성의 운문적 존재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홍윤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