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세계 축소판이었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생존자의 증언
인간 세계 축소판이었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생존자의 증언
  • 이승옥 기자
  • 승인 2014.05.19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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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이승옥 기자]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이자, 『이것이 인간인가』로 잘 알려진 프리모 레비의 생애 마지막 작품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1986)가 국내에 첫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은 저자가 수용소에서 풀려난 지 40년만에 쓴 책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한 해 전에 썼다는 점에서 그에게는 유서와도 같다. 아우슈비츠 경험을 바탕으로 나치의 폭력성과 수용소 현상을 분석했다. 강제수용소 안에서 벌어진 현상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를 가로지는 기억과 고통, 권력 관계의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쳤다.

독일은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조직적으로 유대인, 집시, 장애인, 성적 소수자, 정치적 반대파 등을 대학살로 몰아넣었다. 규모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인류사에 유례없는 사건이다. 저자는 비록 이 사건의 피해자이지만, 철저한 자기성찰과 비판정신을 통해 왜곡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자신을 포함한 생존자에게도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저자는 아우슈비츠 경험에서 나치에 한정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위기를 봤다고 말한다. 수용소 세계는 인간 세계의 축소판이다. 그 안의 포로들은 권력을 위해, 또 자신보다 낮은 계층을 만들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폭력의 체제에 노출된 인간이 어떻게 그 체제와 닮아 가는지 수용소라는 실험실을 통해 생생히 드러난다.

특히 2부 '회색지대'에는 수용소의 포로들이 자신보다 약한 희생자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한 분석이 담겨 있다. 가스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또는 죽 한 그릇을 더 먹기 위해 당국에 협력함으로써 크고 작은 권력을 손에 쥔 '특권층 포로'는 수용소 전체 인구 중에서 소수였지만, 생존자들 가운데서는 압도적인 다수였다.

하지만 저자의 관심은 거대한 억압기구의 각 층위에서 어쩔 수 없이 죄에 가담한 한 사람 한 사람을 단죄하는 일이나 용서하는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체제 자체의 범죄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선악의 이분법으로 갈라낼 수 없는 보통 사람들이 억압기구의 범죄에 의해 가담자나 공범자가 돼버리는 메커니즘에 주의를 기울였다.

더불어 나치가 포로들에게 잔혹행위를 벌인 기저에는 죽이는 자의 죄책감을 덜려는 목적도 있었음을 분명히 한다. 죽이는 자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게, 희생자는 인간 이하로 비하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책의 제목은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뽑아 왔다. '가라앉은 자'는 수용소의 전멸 체제에 휩쓸려버린 사람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 즉 구조된 자들은 '완전한 증인'인 그들 대신 증언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인생 마지막 대목에서 아우슈비츠 사건이 역사의 일반적인 잔혹한 사건 중 하나도 잊혀질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아우슈비츠란 무엇이었까, 그 사건은 과연 종결된 것일까?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것으로부터 얼마나 안전할까? 국내 독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고민을 안겨 주는 책이다.

■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프리모 레비 지음 | 이소영 옮김 | 돌베개 펴냄 | 280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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