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결한 가치 '투명성'을 비판하다… '피로사회' 후속작 '투명사회'
고결한 가치 '투명성'을 비판하다… '피로사회' 후속작 '투명사회'
  • 윤빛나 기자
  • 승인 2014.03.2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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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윤빛나 기자] 『피로사회』의 저자 베를린 예술대학 한병철 교수의 신작이 출간됐다. '투명성'에 대한 독일 사회의 주류 담론을 정면으로 거스른 『투명사회 Transparenzgesellschaft』와 디지털 문명에 대한 진단을 제시한 『무리 속에서ㅡ디지털의 풍경들 Im Schwarmㅡ Ansichten des Digitalen』을 김태환 번역가가 번역해 한 권으로 묶은 책 『투명사회』다.

한병철은 『피로사회』 때부터 독일의 주요 미디어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논란'만 놓고 보자면 투명사회가 훨씬 떠들썩했다고 한다. 투명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독일 사회에서 불투명성에 대한 한병철의 옹호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독일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삶의 여러 부분에서 투명성이 강조된다. 사람들은 투명성이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정보의 자유, 더 높은 효율성을 가져다 주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저자는 '긍정적인 가치'로 간주돼 온 투명성 개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무제한의 자유와 무제한의 커뮤니케이션은 전면적 통제와 감시로 돌변한다. 소셜미디어 또한 점점 더 사회적인 삶을 감시하고 이용해먹는 디지털 파놉티콘에 가까워진다. -본문 7쪽 중-

이렇듯 그는 투명사회가 신뢰사회가 아닌 새로운 통제사회라고 말한다. 투명사회는 우리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감시 상태인 '디지털 파놉티콘'으로 몰아넣는다는 말이다. '과도한 커뮤니케이션'이 투명성을 보장하는데, 투명성은 모든 것을 '정보'로 바꿔버림으로써 우리를 모든 것이 완전히 털리고 발가벗겨진 '유리 인간'의 상태로 만든다는 주장이다.

감시와 통제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적 요소에 속한다. 디지털 파놉티콘의 독특한 점은 빅브라더와 수감자 사이의 구별이 점점 더 불분명해진다는 데 있다. 여기서는 모두가 모두를 관찰하고 감시한다. 국가의 첩보 기관만 우리를 엿보는 것이 아니다.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은 기업도 마치 첩보 기관처럼 작동한다. 이들 기업은 우리의 삶을 훤히 비추어 거기서 캐낸 정보로 수익을 올린다. 회사는 직원들을 염탐한다. 은행은 잠재적인 대출 고객들을 들여다본다. -본문 212~213쪽-

또한 저자는 투명성이란 모든 사회적 과정을 장악해 근원적인 변화의 물결 속에 끌어들이는 시스템적 강제력이라고 말한다. 투명사회에서는 점차 타자가 소멸되고, 나르시시즘의 경향이 강화된다. 모든 것이 '겉'이 돼가는 사회, 사람들이 오직 자신에게 익숙하게 길들여진 것만 상대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된 나르시시즘적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밀의 영역이 사라지면서 모든 것이 공개되는 포르노적 사회, 모든 의미가 사라지고 보이는 것에만 가치가 부여되는 전시사회도 성립한다.

이 책은 왜 연말정산 기간이 되면 소비 기록을 국가에 제출해야 하는지, 디지털 문명과 SNS 등이 왜 새로운 형태의 직접 민주주의를 낳지 못하는지, 왜 소통의 자유가 연대로 이어지지 못하는지 등에 대해 비판적으로 숙고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생각의 범위를 보다 폭넓게 해 주는 매개체가 될 것 같다.

■ 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펴냄 | 235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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