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아닌, '책 내고픈 꿈'으로 돈 버는 출판사 이야기
책이 아닌, '책 내고픈 꿈'으로 돈 버는 출판사 이야기
  • 윤빛나 기자
  • 승인 2014.03.20 1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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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윤빛나 기자] 소설 『꿈을 파는 남자』의 제목은 낭만적이고 서정적이다. 내용 역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파는 출판사 이야기를 그린다고 하니 마냥 따뜻한 이야기일 것만 같다. 독자들에게 열심히 살아갈 용기를 북돋아 주는 책을 만들어 내는 회사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출판사, 꿈을 파는 대상이 독자가 아닌 '저자'다. 게다가 '판다'는 의미는 '사기를 치다'에 가깝다. 이쯤 되면 얼핏 소설의 배경이 되는 출판사가 어떤 곳일지 감이 잡힌다.

『꿈을 파는 남자』는 출판 비지니스의 냉혹한 현실 한복판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출판사 '마루에사' 편집부장인 우시가와라는 출판을 소망하는 인간들을 찾아내 책을 만들게 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우시가와라가 찾는 사람은 자신들의 빛나는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믿는, 야망 넘치는 사람일수록 좋다.

출판사는 보통 책을 만들고 그 책을 독자들에게 팔아서 수익을 내지만, 마루에사의 수익은 저자들이 책을 만들어야 발생한다. 이들은 일명 '조인트 프레스'라 불리는, 저자와 출판사가 공동으로 자금을 부담하는 공동 출판 형식을 이용한다.

우시가와라는 예비 작가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오는 재주가 아주 탁월하다.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인쇄비, 교정비, 디자인비 등의 명목으로 몇백만 엔 가까이를 받아낸다. 실제 책을 내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몇십만 엔밖에 들지 않는다. 예비 저자들은 현실을 모른 채 그저 '지적 허영'을 완성하기 위해 자신들의 돈을 아낌 없이 마루에사에 투자한다.

이렇게 번 돈은 예비 저자들의 눈에 마루에사를 그럴싸한 꿈의 공장으로 포장하기 위해 쓰인다. 회사 빌딩과 사무실은 점점 더 으리으리해지고, 직원들의 뛰어난 영업 수완을 위한 기획과 투자 그리고 월급이 지출된다.

아라키는 의자에서 일어나 우시가와라가 던진 봉투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선 채로 원고를 꺼내 몇 매를 휘리릭 훑었다. 그리고 감동했다는 듯이 말했다.
“이거 정말 굉장한데요!”
“그렇지.”
“그야말로 천재적이군요.” 아라키가 웃으면서 원고를 봉투에 집어넣으려는데, 몇 장이 그만 속에서 빠져나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이, 조심해야지, 그 원고, 2백만 엔짜리란 말이야.”
“죄송합니다.” 아라키는 조심조심 원고지를 집어 책상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이 쓰레기 같은 원고로 2백만 엔이나 받으니 꽤 쏠쏠한 장사입니다.
-본문 22페이지 중-

책을 통해 독자들의 꿈을 키우는 대신, 마루에사는 책을 내고 싶다는 예비 저자들의 1차원적인 꿈을 키워(?) 준다. 그리고 이 전략은 마루에사를 성공의 길로 이끈다.

우시가와라는 분명 속물이지만, 그의 입을 통해 짚어보는 출판 시장과 문학의 현주소는 뼈있는 충고처럼 들린다. 책이라는 매체가 가진 본연의 의미인 '읽기'가 거세돼 버렸고, 출판사와 저자의 관계가 자본주의 사회의 먹이사슬 같은 모습은 분명 일본의 출판계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닌 듯하다.

■ 꿈을 파는 남자
햐쿠타 나오키 지음 | 김난주 옮김 | 펭귄카페 펴냄 | 312쪽 | 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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