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소설의 여왕, 가명으로 책 낸 이유?
추리 소설의 여왕, 가명으로 책 낸 이유?
  • 윤빛나 기자
  • 승인 2014.02.0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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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윤빛나 기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오리엔트 특급살인』 등을 펴내며 명실공히 '추리소설의 여왕'으로 등극한 애거서 크리스티. 그녀는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을 발표한 직후 어머니의 죽음과 남편의 외도에 충격을 받고 스스로 실종사건을 일으키는 등 혼란의 시간을 보내지만, 이내 당시의 사유를 바탕으로 장편소설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1930년부터 1956년까지 인간, 특히 여성의 삶을 주제로 여섯 편의 소설을 썼다. 추리작가로 명망 높았던 그녀는 독자들의 혼동을 우려해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해당 소설들을 출판했고, 이는 그녀의 뜻에 따라 오십 년 가까이 비밀에 부쳐졌다.

소설 『봄에 나는 없었다』는 그 여섯 편의 소설 중 하나로, 1944년 발표된 심리 서스펜스다. 영국의 작은 타운에서 안락한 삶을 살던 여인이 낯선 여행지에서 지금까지의 삶이 자기기만으로 쌓은 신기루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너져내리는 과정을 그렸다.

활기 넘치는 주부 '조앤 스쿠다모어'는 유능한 변호사 남편, 반듯하게 자란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그녀는 딸의 병간호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여고 동창 '블란치'를 만난다. 학창 시절 친구들의 우상이었던 블란치는 천박하고 추레한 중년으로 변해 있었고, 조앤은 속으로 그녀와 자신을 비교하며 우쭐댄다.

하지만 블란치는 조앤의 가족에 대해 언뜻언뜻 이해 못할 이야기를 던져 심기를 건드린다. 이후 폭우로 교통이 끊기며 사막의 기차역 숙소에서 발이 묶인 조앤은 문득문득 블란치의 말들이 떠오르며 과거 일들이 머릿속에 하나씩 점화되기 시작한다. 날카로운 기억의 조각들은 그녀에게 비아냥거린다. "넌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자신 있어하더니 왜 그렇게 지쳤지?"

사랑한다는 이유로 가족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은 죄, 다른 사람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고 멋대로 동정하고 깔봤던 죄, 진실을 목격하고도 못 본 척 자신을 기만한 죄, 이기심과 허영으로 타인의 진정성을 짓밟은 죄…. 조앤은 이런 불편한 진실을 모조리 외면하면서, 행복이라는 가짜 이름이 붙은 허깨비 상자 속에서 살아 온 자신을 확인한다.

친구가 던진 말에서 상상이 불붙고, 의심과 불안이 야기되고, 충격과 공포와 몰락으로 전개되는 클라이맥스는 강렬하고 압도적인 스릴과 긴장감을 자아낸다. 특히 조앤이 과거에 일어난 일을 되새길수록 그것이 두려울 만큼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는 점은 퍼즐을 맞춰가는 추리소설의 서술트릭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

하지만 그녀가 의심했거나 확신했던 것들이 모두 사실이긴 할까? 기억은 언제나 온전하지 않은 것이고, 언제나 진실로부터 도망가려 하지 않는가.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조앤이 집으로 돌아간 이후의 이야기에서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남편의 시점으로 쓰인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드러나는 진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뼈아픈 선고 같다.

■ 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 공경희 옮김 | 포레 펴냄 | 268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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