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와 다산 정약용(사의론과 사실론)
추사 김정희와 다산 정약용(사의론과 사실론)
  • 독서신문
  • 승인 2014.01.2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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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의> 감성과 오성 사이 - 한국 미술사의 라이벌

최근 대학의 상아탑 안에 머물던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강의하는 기관이 늘어나고 있다. 본지는 이같은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지속시키고 인문학 열풍을 더욱 확산시키고자 유명 석학들의 강연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 편집자 註

[독서신문] 조선후기 회화의 변모

조선후기에 인구가 증가하고 경제력이 향상되면서 문화 향유층이 넓어지고,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두드러지게 문화 의식이 고양됐다. 특별히 ‘여항문학’이라 지칭하듯이 서울의 도회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중인과 서민 계층이 문예활동을 선도한 것이다. 또 서화·골동의 완상과 수집 풍조가 중인층까지 확대됐다. 이는 분명 구태와 다른 문화지형의 새로운 변화를 시사한다.
이 시기 예술은 인간의 감정이나 욕망을 억압하기보다는 가식 없이 표출하는 데 무게를 두게 된다. 문인들은 성리학 시대인 송나라의 산문적인 시보다 감성과 개성을 중시한 당나라의 시풍을 선호했다. 또 민간의 음악과 놀이가 다채롭게 발전하면서 음역의 폭이 커지고, 심상을 시원스레 표출할 수 있는 장단과 동작이 늘어났다. 이는 전근대에서 ‘근대인’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으며, 자연히 당대의 현실정서와 삶을 진솔하게 담고자 하는 ‘사실정신’이 문화예술 전반에 고루 투영됐다.

 

▲ 정약용의 산수도 : 원인필의 (元人筆意)

18세기 조선화와 다산의 사실주의론

조선후기, 특히 18세기 영조·정조 시기 실학과 회화의 관계는 ‘새로운’ 혹은 ‘역동적’인 전환기라고 일컬어지는 사회의 횡적인 산물이다. 사상계에서 실학이 그러했듯이, 겸재 정선(1676~1759)과 단원 김홍도(1745~?) 등의 진경산수화나 풍속화같은 새로운 회화사조가 현실변화와 사회변동의 양상을 적절히 대변해 냈기 때문이다. 또 이들은 당대의 문예를 대표한다고 여겨질 정도로, 18세기 전반 영조 시절에서 후반 정조 시절로 이행하는 사회상과 그에 상응하는 실학사상의 변모까지 시각적으로 확인시켜 준다.
정약용은 무엇보다 회화의 사실성을 중시했다. 손수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정약용의 회화는 여기적(餘技的) 수준의 남종화풍에 머물렀다. 반면에 사실주의에 대한 주장은 확고했다. 이런 다산의 사실주의 정신과 예술론은 그의 외증조 할아버지인 공재 윤두서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다. 윤두서는 ‘실득’을 내세워 대상을 정밀하고 정확하게 그리는 그림을 최선으로 삼았는데, 윤두서의 ‘자화상’이나 말 그림들이 윤두서가 지향하는 예술세계를 잘 보여준다. 특히 정약용은 이 윤두서의 ‘자화상’을 보고 자신이 외탁을 했다고 피력했을 정도이다.
비록 정약용의 사실주의 회화관은 사회 여건상 당대 화단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그 비판의식은 서권기, 문자향이 풍미하던 시절 박규수 등 개화파 문인들의 예술론으로 계승됐다. 이처럼 실학파에서 개화파로 사실주의론이 이어졌음은 18세기 회화의 근대지향적 성향을 재검토할 필요성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이들이 19세기 화단에 미친 실질적 영향력은 너무 미미했다. 이는 식민지로 전락하고 마는 조선말기의 역사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19세기 사실정신의 퇴조와 추사의 문자향·서권기

실사구시를 현실에 대응하는 실질과 훈고로 대별해 보자면, 대체로 18세기 성호 이익의 학풍이나 연암 박지원의 북학파는 전자쪽이고, 19세기의 추사 김정희와 그 일파는 후자에 가깝다. 이는 18세기에 확립된 조선풍의 사실주의 회화가 19세기에 급격히 퇴조하는 양상과 맞물려 있기도 하다. 법고창신의 ‘창신’보다 ‘법고’를 강조한 탓이고, 또 법고의 전범을 조선의 처지나 전통을 무시한 채 중국의 고전에서만 찾은 데 원인이 있다고 여겨진다.
이 또한 조선 말 봉건사회 해체기의 시대상과 연관된다. 17~18세기 경제력 성장에 따라 부흥했던 문화가 19세기의 생산성 후퇴와 행보를 같이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18세기 회화의 중세적 성격을 읽을 수 있다. 18세기 회화에서 봉오리를 틔운 근대지향적 꽃은 19세기 후반 조선사회의 붕괴와 운명을 같이 하면서 시들고 만 것이다.
19세기에는 겸재나 단원 화풍의 명맥이 유지되는 가운데, 18세기 신경향의 회화 자리에 서권기, 문자향을 강조한 남종화 이념과 형식이 들어섰다. 이는 회화에 대한 가치 기준이 달라졌음을 말한다. 그 중심에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존재가 우뚝했다. 잘 알다시피 김정희는 조선 후기 실사구시설의 장본인기도 하며, 실질의 강조와 훈고의 실사구시 중에서 김정희는 후자에 속한다. 청조의 금석학, 즉 고증학을 토대로 했기에 김정희의 실사구시는 법고창신론으로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
김정희는 법고창신에 따라 중국의 금석학을 탐구해 예서체를 기저로 한 개성적인 ‘추사체’를 완성했고, 신라 진흥왕순수비 등 우리의 옛 비문을 고증하면서 실사구시의 학문적 성과를 이룩했다. 또한 19세기 중엽 ‘세한도’나 ‘불이선란도’를 통해 자신이 주장한 남종문인화풍의 전형을 창출했고, 19세기 화단의 총수로 군림했다. 김정희의 서화와 예술론은 성령론의 ‘괴’를 강조하는 개성주의를 내세운 것이다. 이 점이 고증학의 실증주의와 더불어 근대지향적인 김정희의 실학정신이라 꼽을 수 있겠다.

 

▲ 김정희의 묵란도 (1850년 경) : 불이선란 (不二禪蘭)

19세기 문예에 미친 추사바람

이런 김정희의 서화와 예술품이 19세기 문예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완당 바람’은 18세기 회화의 신경향에 대해 반작용을 일으켰다. 그는 18세기 서예계에 조선풍을 일으킨 원교 이광사(1705~1777)의 서풍과 진경산수화를 완성한 정선 같은 화가의 그림을 낮춰 보았고, 제자들에게 아예 배워서는 안 된다고 못 박을 정도였다.
그 바람은 우봉 조희룡, 소치 허련, 고람 전기, 혜산 유숙, 소당 이재관 등 문인화가는 물론 화원이나 중서층 서화가들까지 김정희 식 서권기, 문자향에 경도되게 했다. 마른 붓질로 소략하게 선묘한 허련의 ‘방완당의’, ‘산수도’가 그런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들의 남종화풍은 간결하고 감각적인 필치와 수묵 처리로 회화성을 구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에는 북산 김수철(19세기), 석창 홍세섭(1832~1884) 등 ‘기괴’론에 어울리는 독특한 개성주의 작가들이 부상하기도 했다. 결국 ‘완당바람’은 19세기에 사실주의 회화를 퇴조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19세기 후반에는 화원인 오원 장승업(1843~1897)이 등장해 수묵화의 전통을 근대로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장승업은 중국적인 고사인물도나 기명절지, 화조, 영모화 등을 즐겨 그려 그 주제가 시대정신이나 18세기 조선풍의 회화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필묵을 다루는 데 있어 수준급 기량을 발휘하였음은 잘 아는 사실이다. 장승업이 쌓은 필묵 운용의 역량은 제자인 심전 안중식(1861~1919)과 소림 조석진(1853~1920)에게 전수돼 20세기 전통회화의 기반이 됐다. 미흡하나마 이들의 산수화와 함께 이도영의 시사만화와 채용신의 초상화가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근대성을 담보해냈다. / 정리 = 윤빛나 기자

*본고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인문강좌’(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이태호 명지대 교수가 ‘감성과 오성 사이 - 한국 미술사의 라이벌’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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